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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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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17. 2024

동거 열사흗날

콩이 쾌유 일지-쌀과 칭찬


어제 구성 회의와 수정 구성안 작업으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

늦잠을 잤다.

새벽녘에 일어났다가 또 자고 9시가 넘어 일어났다.

매일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콩이 데리고 나갔었는데 오늘은 세수하고 하지만 똑같은 옷을 입었다.

콩이와 동거가 시작되고 늘어놓은 옷이 여러 벌 되었다.

실내복과 산책복.

콩이 안을 때 입을 작업용 앞치마가 필요한데 원도심레츠에서 얻어온 헌 셔츠로 대용한다.   

그리고 역시 원도심레츠에서 얻어온 7부 바지와 담양 글을낳는집 깜돌이가 첫날 상견례 인사로 물어뜯은 갈색 긴 바지.


09:29 오전 9시 넘어도 해가 따갑다.

금계국 없는 집 앞이 휑하다. 비어 있음은 나름 여유롭다.

콩이 소변을 보게 하고는 들어와 물과 사료를 준다.

사료를 먹지 않길래 칠면조 닭고기 반 캔을 비벼주니 잘 먹는다.

콩이는 이제 스푼 사용도 곧잘 한다.

도 딸기잼에 섞어 티스푼으로 주니 싹싹 핥아먹는다.

10시가 넘었다.


이제 나도 밥을 먹어야겠다.

전에 산 2kg 쌀을 어제 다 먹고, 5월 마지막 날 작가들이 사다 준 4kg 쌀을 통에 담았다.

누군가 뭔가를 담아 준 플라스틱 통이 어쩌다 보니 쌀통이 되었다.

꼭 맞는다.

큰 거 사려다 내가 워낙 쪼끔 먹으니 부담일 거 같아 10kg을 안았다 놨다 했다던데.......

밥을 지어보았더니 동네쌀집 쌀인데 평소 먹는 유기농 쌀보다 맛있다.  

앞으로 그 쌀을 먹는 몇 달 동안 그 작가를 떠올리며 감사하겠지.


'혼자는 곧 밥이고 국이니 잘 챙기시고~'


이래서 선물을 가려서 받는다.

물건을 보면 준 사람이 떠오르니까.


정 작가가 보내준 유기농 생표고버섯 오목한 부분에 지난주 목요일에 볶아놓은 분쇄소고기를 넣고 달걀 푼 물을 부어 전을 부쳤다. 근사한 표고전이 되었다. 일부는 썰어서 하동에서 짜온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햇볕에 널어두었다. 참 모든 재료를 써는 도마는, 도마는 내가 사랑하던 공방에서 귀걸이와 반지를 진열해 놓았던 귀한 나무다. 나는 귀걸이나 반지보다 더 귀한 먹을거리를 그 위에서 썬다. 그릇은 막내고모가 독립 기념 선물로 돈을 부쳐주셔서 내가 산 것과 숨이차가 세트로 사 준 것들이다.  

이렇게 나를 아끼고 위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먹고 산다. 그것도 아주 잘.


배부른 콩이는 현관 찬 바닥에 엎드려 잔다.

이제는 내가 왔다 갔다 해도 그때마다 깨서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나도 그동안  꼭꼭 닫아두던 안방 문도 열어두고, 더워서 그런지 온 집안 문과 창을 다 열어두었다.

그 말인 즉 콩이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음이다.


콩이는 내 모든 생활을 지켜보고 있다.

잠에서 깬 직후, 샤워하고 나오는 모습, 밥 먹고 작업하는 모습, 화장실 가는 모습, 잘 자라고 인사하고 들어가는 모습......

엎드린 채 나를 지켜보는 콩이의 눈빛이 어리지 않다.

콩이가 밖에 있어서 하루 한 번 산책할 때는 그저 어린 세 살 아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동물 등록하면서 추론해 본 결과 콩이는 일곱 살. 개의 1년은 사람의 7년이라고 하니 콩이는 마흔아홉 살. 내 또래 남자가 종일 나를 그렇게 뚫어지게 지켜본다면 정말 징그러울 것이다. 개니까 봐준다.  

여하튼 콩이는 현관에 엎드려 자고 나는 작은방에 들어와 작업하는 이 시간이...

평. 화. 롭. 다.


19:30 콩이와 저녁 산책 겸 소변

마시고 사료만 주니 안 먹어서 칠면조 닭고기 통조림 섞어 주니 잘 먹음.

도 딸기잼에 섞어주니 잘 핥아먹음.


오랜만에 큰고모와 통화.

그간에 있었던 콩이 사고와 수술 입원과 퇴원 후 지금까지 일을 이야기해 드렸다.


"그럴 때(수술비 필요할 때) 나한테 전화하지 왜 안 했어? 큰일했다. 참 잘했다. 참 잘했어요~."


어쩌다 한 일로 칭찬을 받았다.

수의사 말대로 선한 일에는 선한 일이 돌아온다.

항상 내가 굶을까 봐 걱정하시며 두유를 보내주시겠다고는 통화를 마쳤다.

콩이 사진을 보내드렸더니 문자가 왔다.


'콩이 귀엽고 선하게 생겼네~~

콩이야 빨리 회복하여 00 주인님과 행복하렴!'


행복한, 행복할 콩이는 엎드려 있고 나는 여전히 작업을 한다.

2024년 6월 17일 월요일 동거 일기 끝~~


잠시 후 시원한 다용도실로 옮겨 목줄 풀고 켄넬에 넣어주었더니 들이받고 난리를 친다.

다시 현관으로 옮겨 목줄을 하고 꺼내주니 엎드린다.

반경이 좁은 건 마찬가지인데 목줄 푼 켄넬보다 목줄 한 현관이 더 좋은가 보다.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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