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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20. 2024

동거 열엿샛날

콩이 쾌유 일지-어느새 기차


며칠간 비몽사몽

자는 듯 마는 듯

쓰다 눕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오늘 아침 9시 15분과 30분 즈음에 대본을 송고했다.


때문에 콩이 늦은 산책과 소변.

콩이는 이제 내가 푸르스름한 셔츠를 걸치면 나가는 줄 알고 앞발을 들고 버둥거린다.

남색 모자에 푸르스름한 셔츠에 갈색 바지. 그게 내 산책복장이다.

멀리서 보면 귀농인 같다.

땅바닥에 길게 늘어져 핀 개망초 몇 가닥을 꺾어 왔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어차피 밟힐 위치였다.

10:30 콩이 물과 사료와 약까지 다 먹이고......


11시 더빙 시작했겠지.


한소끔 잔 듯 덜 잔 듯

또다시 1학기 학교 보고서 작성을 한다.


원고를 보내고도 말끔하지 않은 기분이다. 장장 일 년 반 동안 4년의 역사를, 구성 또 구성하던 다큐멘터리 제작의 마지막 단계가 아직 아니기 때문일까? 작가야 대본 작성까지가 끝이지만, 납품을 하기 전까지는 수정 또 수정. 얼마나 많은 손이 가는지 모른다. 요 며칠 함께 종편 하듯 컷컷마다 전화로 의논하던 AD의 휴대폰 컬러링이 라이너스의 담요-어느새였다. 영상과 글을 맞춰보느라 음악을 못 듣던 며칠 중 유일한 음악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참 멀리에 있네

어리석게 사랑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어느새

우리는 서로 안고 있네...'


아직 멍하다.

어제가 돼서야 닷새 전 학교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 캐시카드를 두고 왔음을 알았다.

지난번처럼 향적산 근처에서 잃어버리고도 어디 있겠지 하다가 누군가 내 카드 사용한 걸 알지 않은 게 다행이다. 1100원이었다. 5월 8일에 분실한 카드에서 14일 결제가 된 액수는. 그때 그 카드가 어디에서 사용됐는지 알았지만 찾으러 가지 않았다. 내 카드를 쓴 사람을 굳이 찾아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일주일여 동안 캐시카드가 없는데도 분실신고도 하지 않고 어디서 나오겠지 했던 거였다. 누군가 내 카드를 쓰고 그걸 우연히 잔액 체크하다 알게 돼 카드 분실을 알았던 그때 나는 앞으로 자신을 믿기로 했었다.

얼마 후 그런 식으로 편의점에서 분실 카드를 써서 주인을 찾아준 고등학생 뉴스를 보고 혹시 그 사람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찾아가 보았지만 아니었다. 대신 나는 멀쩡하게 생긴 중년 남성이 남의 카드를 조마조마하면서 쓰는 모습을 CCTV에서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그게 싫어서 보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그날 집에 돌아와서 콩이 사고가 났다. 그러니까 분실 20여일 만에 카드의 행방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혼미하다.


어제 갔던 기차역에 다시 갔다.

어제는 마중, 오늘은 배웅.

어제 일 때문에 맥주 한 잔도 못 마셨다. 콩이랑 사람이랑 셋이니 창문을 열고 잘 수도 있을 만큼 무섭지 않아 좋았다. 대본으로 정신없는 때가 아니었으면 한 끼라도 더 맛있는 걸 먹여 보냈을 텐데....... 철책 밖에서 내가 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역으로 진입하는 기차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은 증발 혹은 사라짐.


떠남은 슬프다. 남겨짐은 더 슬프다.

내가 원해서 떠나왔으면서도 그렇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면

사랑 따위가 내 알 바 아니지

이름 한 자도 모르는 사람을

왜 그렇게도 그리워했는지


천박해지지 않을 수 있으면

돌아오는

여름에는

어느새

우리는 참 멀리에 있네

어리석게 사랑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


매일 몇 번씩 무너져 내리는

세상 따위가 내 알 바 아니지

더 천박해지지 않을 수 있으면

돌아오는

여름에는

어느새

우리는 참 멀리에 있네

어리석게 사랑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어느새

우리는 서로 안고 있네

어리석게도 다신 만나 지지 않을 이들처럼

어느새

어리석게'


https://youtu.be/Glqup-PidIA?feature=shared

라이너스의 담요-어느새


19:00 즈음 일찌감치 콩이 산책 겸 용변을 보게 하고 자려고 나갔다.

요 며칠 비닐하우스에서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아주머니가 서 계셨다.

인사를 하니,

"남의 개 산책 시키다 웬 고생 개고생이야~

팔자소관이야~."

하신다.

내 팔자가 그런 팔자라면, 그러니까 남 좋은 일 하며 고생하다가 내가 갖지는 못하는.

그렇다면 이삭을 생각해 본다.


이삭은 우물을 파는 족족 물이 나왔지만 그때마다 동네 깡패 같은 것들이 나타나 뺏어갔다.

이삭은 싸우지 않고 주고 떠났다.  

이삭은 아름다운 아내 리브가를 만나 사랑하며 살았고 쌍둥이 아들도 둘 있었다.

나중에 아내가 작은 아들을 편애해서 늙은 자신을 속였지만 딴 남자를 만난 것도 아니고 자식 일이니 뭐 어쩌겠나.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산 채 번제로 죽여 바치려 할 때도 묵묵히 모리아 산까지 자기를 태울 나무를 지고 사흘이나 동행했고 순순히 묶였다. 사리분별하고 힘도 있을 나이였다. 하지만 이삭은 순응했다. 그리하여 따른 복이 부와 사랑이었다.

이삭처럼 우물 파서 달라면 주고 떠나고, 또 파서 주고 떠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착해서 안정되게 살겠지. 남 좋은 일도 자꾸 하면 내게 돌아올 것이다. 아까 40년 지기 친구가 전화해서 내 상황이 잘 풀리는 게 다 내 덕이라고 말해준 것처럼.


콩이도 완전히 건강해질 때까지만 동거다.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 사료와 약

드디어 2주 간의 약을 다 먹였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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