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어머니를 기억하며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휴대폰 케이스를 열어보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두 번이나 와 있었다.
무음이라 전화가 오는 걸 몰랐다.
전화하니 두 번쯤 자기 이름을 말한다.
어머나- 반가운 이름. 내내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팽목항에서 헤어진 후 2년 3개월여 만이었다. 한참 지나 내가 먼저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받았지만, 아직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지 않은 걸로 보아 그쪽에서 나를 먼저 찾은 적은 없었다.
한참 일상적인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내게 전화 온 번호의 휴대폰이 엄마 거라고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
아... 어머니.
서울에서 해남까지 세 번이나 오셨던 분.
처음은 2021년 8월 14일 토요일, 내가 해남 백련재 문학의 집에 입주하자마자 닷새만에 따님에 이끌려 오셨던 어머니.
오시자마자 내가 인도하는 대로 대흥사에서 1km나 가파른 오르막 길을 걸어 일지암에 올라가셨던 분.
"내가 살아서 다시는 여기 못 오지. 이번이 마지막이지 싶어 끝끝내 올라왔어요."
그리곤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얼마나 좋으셨는지 어머니 상비약인 금빛 우황청심환 같은 걸 주지스님께 선물하셨다.
내려가는 길에 깜깜해져서 따님 휴대폰 불빛으로 바닥을 비추며 내려왔었다.
평소 내 무모함에 이끌린 모녀의 아찔한 등정과 하산이었다.
이후 어머니는 내게 누룽지를 만들어 보내주셨다.
추석 때쯤이었는지 나도 고마워서 아버지 드시라고 해남 해창 막걸리를 보내드린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술을 못 드시지만 해남 특산물이 막걸리라 그랬나 보다. 진작에 해남고구마를 알았더라면 어머니 드시라고 고구마를 보내 드렸다면 더 좋았을 걸.
두 번째는 같은 해 11월 11일 목요일, 백련재에서 내 작가와의 대화 때 그 따님에게 축하연주를 부탁하자 다시 함께 오셨던 어머니.
그리고 크리스마스 즈음에 해남으로 선물 상자가 도착했다.
처음 오셨던 해 늦여름, 일지암 주지스님이 내 생일을 물어보셨을 때 내가 말한 음력 생일을 곁에서 들으시곤 기억하셨다가 그 생일이 양력인 줄 알고 보내주신 거였다.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백화점에서 파는 화장품이었다.
빌리프 belif 아쿠아 밤 슬리핑 마스크
허구한 날 땡볕 아래 도보순례하는 내 피부를 걱정해 주신 유일한 분, 어머니.
자기 전에 그 마스크를 볼에 마를 때면 손가락 끝이 떨렸다. 아까워서 조금씩 발랐기 때문이었다.
다음 해 생일 선물 그림을 그렸을 때 그 크림이 있었다. (그래서 그 그림 조각을 표지로 올린다.)
그 글에는 어머니가 주신 선물 이야기는 없다.
그 당시에는 슬픔이 너무 깊어 나락으로 무너지고 있던 터라 미처 어머니께 대한 고마움을 쓸 지면이 없었다.
선물 받은 그해 연말에 서울 인사동에서 <위로> 사진전을 할 때, 나는 가보지도 못한 전시회에 어머니와 그 따님이 가보셨다. 오선생님이 두 분 사진을 찍어 보내주셔서 알았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그 위험한 시기에 어머니는 내 사진이니 보러 가셔야 한다고 불안한 발걸음을 용기 있게 내딛으셨다. 그때 전시한 사진은 어머니와 함께 갔던 일지암의 금륜이었다.
세 번째는 다음 해인 2022년 4월 16일 팽목항 기억식을 위해 다시 모였을 때였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가슴 아프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잘못이었다. 아니 제주도 잘못 때문이었다.
그리고 2024년 7월 11일, 오늘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 휴대폰에 내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단다.
그 따님이 휴대폰을 정리하기 전에 거기 저장된 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드리다가 내 번호가 있어서 했다고 한다.
기억해 보니 3년 전 해남으로 내게 누룽지를 손수 만들어 보내셨던 그 플라스틱 통이 지금 내가 4kg 쌀통으로 쓰고 있는 통이다. 어머니 덕분에 쌀 떨어지지 않고 밥 굶지 않고 살았구나 싶다.
스쳐가는 딸의 지인에게도 그렇게 온 정성을 다하시고 사랑을 베푸셨던 어머니. 내가 뵌 모든 남의 어머니 중 내게 최고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
어머니가 사서 보내주신 그 화장품은 내가 모르던 브랜드 제품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다던 belif의 뜻은 believe in truth 진실을 믿다. 어머니와도 그 따님과도 나와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어머니가 아주 먼 곳으로 가셨는데도 나는 어머니와 영영 헤어진 것 같지 않다.
의연하고 유쾌하시면서도 속정 깊으시던 그 모습 그대로 어딘가에 잘 계실 것 같다.
해남 백련재 정원일기 1과 2와 남도 순례길 13에 어머니가 등장하신다. 어머니는 내 글에서 예전 그대로 살아계신다.
"어머니,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힘든 이승 떠나 훨훨 깊고 맑은 숨 쉬시며 평안히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일곱째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