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아침 일찍 콩이를 산책 시킨 후, 칠면조와 생선 통조림 뚜껑을 열어 주고 칫솔 간식 한 개를 낡은 이불 위에 던져주고 "다녀올게" 인사하고 나왔다.
주말이라 좌석이 없어 ktx 입석에 올랐다. 초경량이라고 해도 천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기엔 무거운 조립식 의자를 챙겨갔는데, 다행히 빈 의자를 잘도 찾아 바닥에 앉지는 않았다.
용산역에서 지하철로 아차산역까지, 역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절 입구에 도착했다.
어머니의 따님이 절 앞에 나와 있었다.
나는 그이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이가 먼저 내 오른손을 잡았다.
나란히 들어간 절은 무척 널따랬다. 서울 한복판에 그렇게 규모가 큰 절이 있는지 몰랐다.
12시 공양시간이라 정갈한 절밥을 먹었다.
모녀가 처음 해남에 왔다 가시던 날 아침에 함께 먹었던 대흥사 앞 짱뚱어탕 정식이 생각났다. 그때 참 맛있게 드셨다.
오후 1시부터 거행된 49재.
태어나서 처음으로 49재에 참석했다.
어머니 사진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국 배우 엠마 톰슨 닮으셨다.
그 사진을 소각하는 의식이 마지막 순서였다.
한 시간 십오분쯤 진행된 예식 후 내려갈 기차표를 알아보고 있는데, 따님이 엄마한테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봤다.
일부러 한 번은 가보고 싶던 곳이라 좋다고 했다.
분당까지 동행했다.
49재도 그렇고 추모공원 방문도 그렇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가족과 친척이 아닌 사람은 내가 유일해 보였다. 초대에 감사했다.
어머니를 모신 곳 앞에서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머니께 그토록 끌렸던 이유가.
어머니 생년월 날짜가 내 엄마의 생년월과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우리 엄마와 닮은 듯도 싶다.
유쾌하시고 발랄하시고 아름다우시고 패션 감각도 좋으신, 좋으셨던 두 분.
지금 떠올려 보면 엄마의 푸념조차 아름답게 기억된다.
그 나이대 젊은 여자가 흔히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욕구마저 귀엽게 느껴진다.
어머니는 내 엄마보다 두 배 더 사셨다.
그 따님은 얼마 전까지도 엄마가 살아계셨다.
내 엄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해주자,
"지금 나도 이렇게 슬픈데......."
따님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유족의 슬픔은 정당하고 조문객의 위로는 당연하다. 그 슬픔이 어느 정도의 농도인지 미리 알기에 조문만큼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하는 나 아닌가.
유가족들의 환대와 친절 속에서 어머니와 충분한 이별을 할 수 있었다.
가고 오는 길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나는 따님에게 어머니를 위한 작곡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벌써 최근 어머니와 경기도 예쁜 카페에 갔다가 작곡한 곡이 있다고 한다.
https://youtu.be/qIc7h3_pv6k?feature=shared
알고 보니 예전에 어머니 수술 후에도 작곡한 음악이 있었다.
어머니는 딸이 작곡한 음악들을 항상 듣고 계셨다고 한다.
참으로 부러운 모녀 관계다.
https://youtu.be/T3UdaZ7oRho?feature=shared
서초동을 지나는데 올해 첫 배롱나무 분홍 꽃을 보았다.
배롱나무는 내게 사랑이다.
꽃말은 '부귀,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
귀신 쫓는 나무라 하여 남부 지방, 특히 무덤가에 배롱나무가 많은데 서울에서도 가끔 본다.
가족들의 젠틀한 배웅으로 용산역에 내렸다.
바리바리 싸준 과일과 떡이 어머니 사랑만큼 묵직했다. 집에 과일이 다 떨어진 걸 어떻게 알고 과일을 챙겨주신 어머니...... 의 딸.
콩이 간병할 12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집.
계단에 작은 상자가 놓여있었다.
이틀 전 통화하고 난 밤에 어머니가 보내주셨던 생일 선물을 기억하며 내가 주문한,
belif Aqua bomb sleeping mask 75ml
상자를 열어보니 10ml짜리 수분크림과 에센스가 덤으로 들어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샘플이었다.
마지막까지 챙겨주신 어머니 인정처럼.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가시는 길,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베풀어 주신 사랑 오래오래 기억하며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