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9~30 간성터미널~봉포해변~정동진 118km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간성 터미널(북천철교까지 3km)~봉포해변 24km(74km)
친구가 갤러리에 오는 바람에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오후 3시 버스를 아슬아슬 탔다.
빈자리 없는 버스에는 군인이 가득했다.
파랗던 하늘이 오후 다섯 시 인제 지나면서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제발 그쳐라.
간성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50분.
시외버스에서 내려보니 4년 전에 걸어왔던 곳이었다.
3km 위에 있는 북천철교는 포기.
있는 힘껏 봉포해변까지 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시작 지점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었다. 대형차들이 씽씽 달리는 대로변을 ‘이주만이 살길이다’ 노란 조끼를 입고 짐가방을 초록 뷔나 앞에 달고 달렸다. 위태로웠다.
잠시 후 가진항에 다다르자 머물고 싶을 만큼 고즈넉하면서 깔끔한 바다가 펼쳐졌다.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로 공현진, 화진포 가기 전에 야영했던 곳을 지나 송지호 지나 길이 사라져 잠깐 헤매다가 삼포 지나 자작도를 지나니 문암리 유적지를 지나 백도해변이 나왔다. 얼굴이 사라지고 있는 미륵불이 서 있던 곳에 그대로 있었다. 자식을 얻으려는 이나 풍어를 기다리는 이들의 바람대로.
아야진에 당도했을 때는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켜졌다.
공사 중인 길가를 위험하게 가는데 건너편 청간정은 깜깜해서 찾아갈 수 없었고 간신히 봉포항 쪽으로 길을 들어섰다.
인증센터는 마을 끝자락에 있어 도장을 찍고 예약해 둔 숙소로 되돌아왔다. 긴장과 땀에 젖은 옷을 빨고 씻은 후 근처 문 연 식당을 찾아 나섰을 때는 밤 8시가 넘었다. 단품인 뼈 해장국을 먹고 조반 거리를 사서 숙소에 들어와 내일을 기약했다.
8월 30일 금요일 봉포해변~정동진 94km(168km)
아침 7시 반에 미역국밥과 요거트와 견과류를 먹고 9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조금 내려가니 바다정원이 보였다. 그 옆 불에 탔던 소나무는 진물 흐르던 흉터가 사라졌고, 바다 쪽으론 아기송이 가득 심겨 있었다. 날이 어두침침해서 바다도 흐렸다.
4년 전 그 바다에서 몸을 담갔었다. 실내 수영장에서 물안경 쓰고 오리발을 꼈을 때나 곧잘 하던 수영은 바다에서 맥을 못 추었었다.
오전 10시 카페 개장 시각을 기다려 캐러멜 쿠키를 한 개 샀으나 먹진 못했다.
10:14 고성군을 떠나 속초시로 들어갔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건너편 그 오르막길을 도반이 혼자 걸어 올라가고 나는 차를 몰고 갔었다. 바다정원까지.
10:30 영금정에 다다랐다. 전에는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는데 새로 지은 곳과 원래의 정자에 다 올라가 보았다. 파도가 석벽에 부딪치면 신비한 음곡이 거문고 소리처럼 들려서 영금정(靈琴亭)이라 한다는데, 가히 널찍한 암반이 동해안에선 보기 드문 지형이었다.
영금정에 오르자 어떤 남자분이 내 조끼를 보고 사진을 찍겠다고 하셨다. 관심을 가져주심이 고마웠다.
아바이 마을로 들어서는 길에 처음으로 넘어졌다. 철로 된 다리를 넘어서다 얕은 턱에서 바퀴가 올라타지 못하고 쓰러지자 기운 없는 나도 덩달아 넘어졌다. 가뜩이나 아픈 왼팔이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11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바이 마을의 유명 식당은 만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에 올라가 가로질렀다.
속초해변을 지나 대포항을 지나니 설악산 해맞이 공원이 나왔다.
물치항을 지나는데 그때 시소처럼 움직이던 의자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앉아보지 않았다.
몽돌소리길에선 쉬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서 내쳐 달렸다.
양양 후포항으로 들어가 낙산해수욕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기 전에 모닝커피를 마시던 편의점이 보였다.
긴 다리를 건너 가평리와 수산리를 지나는데 더웠다.
동호해변 인증센터가 나왔다.
12:50이었다.
동호해변에서 쉬고 싶었다. 빨강 초록 그네 둘이 그대로 있었다.
야영했던 곳을 찾으니 못 보던 카페가 생겼다. 손양면 이장협의회 하계수련회 옆 andand에 들어가 아이스 카페라테와 베이글 라페를 시켰다. 2층으로 가 앉아있으니 통창 앞으론 파란 바다가 보이는데 사방이 고요했다. 잠시 후 어린 여자아이가 있는 가족이 올라왔다. 자리를 비켜줄까 물어보고는 괜찮다는 답을 듣고 식사를 마저 했다. 비어 가는 물병에 찬물을 가득 담아 길을 나섰다. 카페는 친절했으나 기다리고 있던 바깥은 무더웠다.
하조대를 지나니 현북면 기사문리 만세고개가 나왔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38선 휴게소. 그곳에서 캔커피를 사서 마신 기억이 난다. 어쩜 4년 전인데 기억이 이렇게 선명할 수가 있을까. 나는 박제되었던 기억을 확인해 보러 이곳에 다시 온 것일까?
길고 높은 램프를 지나 내려가니 조개 굽는 마을 동산리가 나왔다. 그 앞에서 찍힌 벗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나는 갤러리 입구 모니터에서 한 달 넘게 쉬지 않고 상영되고 있는 720개 정류장을 기억하고 있던 거였다. 그래서 지나온 모든 마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애항에 독수리 5남매가 묵었던 민박 겸 가게 앞에서 자전거를 멈췄다. 주인 할머니가 그대로 계셨다. 너무나 반가워 캔커피, 포카리스웨트, 생수. 마실 수 있는 걸 다 사서 마셨다. 잔돈을 다시 드려도 4000원어치밖에 팔아 드리지 못했다. 대량으로 판매하는 편의점보다 하나둘 파는 구멍가게가 훨씬 싼 건 주인이 세상 이치에 어두워서일까, 현대 산업사회가 영악해서일까.
할머니는 연신 반복하셨다.
“혼자 다녀? 무섭지도 않아? 왜 혼자 다녀.”
그런 말씀은 이제 하도 많이 들어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게요. 같이 다닐 친구가 없네요.”
오래 긴 길을 걷고 달려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건 기암절벽도 망망대해도 아닌, 전에 뵈었던 할머니 한 분. 바로 사람이었다.
'그래도 저는 갑니다.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남애리에서 함께 걸었던 지경리, 모두 앉아 쉬고 노래 불렀던 지경리에서 점심 식사했던 주문진항.
벗들과 함께했던 추억은 지명이 나타날 때마다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그때쯤 카메라는 제멋대로 꺼지면서 작동이 되지 않았다.
이름만 들어도 예쁜 순긋해변을 지나 5:14 경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발이 땀이 젖어 왼쪽 엄지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직전이었다.
의자에 앉아 발을 말리고 바셀린을 발랐다.
송림 송정을 지나니 내륙으로 길이 났다. 산을 넘고 커다란 발전소를 지나 안인항에는 머물만한 곳이 없었다.
오후 7시가 넘어 어둠이 내리는데 그때 그곳에 다다랐다. 다리 위 자전거 쉼터. 보도블록 사이사이 잡초가 지저분하게 자란 쉼터에는 닳고 벗겨진 의자가 그대로 있었다. 정동진을 지나 걸어서 예정했던 숙소 자리를 지나 엉뚱한 그곳에서 일출을 맞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안인진에서 아침을 맞았었다.
그러나 어둠이 점점 진하게 내려오고 나는 서둘러 페달을 밟아야 했다.
깜깜한 등명락가사 주차장에서 톰의 차가 뒤에서 와서 섰다. 톰은 삼척 우체국 앞 6시 피케팅 후 나를 만나기 위해 안인항으로 가셨다가 내가 정동진까지 가겠다는 바람에 다시 내려오셨다. 나는 만나자마자 반가운 인사도 없이 정동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4.3km 남았는데 차를 타고 갈 수 없었다.
4년 전 깔깔 웃던 정동진은 어둠 속에서 휑했다.
톰은 식당을 잡고도 공원 공사 중이라 찾기 힘든 인증센터까지 갔다 오는 나 때문에 한참을 기다리셔야 했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것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좋다. 안심이 되고 즐겁다. 톰과 나는 언젠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난 게 마지막이었을 텐데 몇 달 전에 만난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편했다. 톰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대하시지만 내게 그렇게 편한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탈핵 벗이라는 공통점으로 힘들 때 짠하고 나타나는 수퍼맨처럼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된다. 단백질 보충과 함께 깨끗한 숙소를 마련해 주시고 톰은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