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1 노곡항~나곡 북면성당~울진 은어다리~울진터미널 36km
9월 1일 일요일 노곡항~나곡 북면성당~울진 은어다리~울진터미널 36km(288km)
노곡항 유일한 민박에서 눈을 떴다.
빨래가 바싹 말라있었다. 산뜻했다.
전날 산 2리터짜리 생수 남은 걸 물통과 전날 펜션에서 가져와 마시고 남은 생수 두 병에 나눠 담았다.
주인 여성분은 마당에서 그물을 꿰매고 계셨다. 주업이 어업, 문어 잡이라고 하셨다. 문어는 작은 틈만 있어도 몸을 구부려 빠져나가기 때문에 그물을 촘촘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600m 오르막을 올라왔다.
큰길 건너에 백인 외국이 남녀 두 명이 오르트립 가방을 대여섯 개씩 매달고 저단으로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그 힘이 놀라워 응원 인사를 했다.
길을 건너가니 그들이 섰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하니 그들은 스위스 사람으로 자전거 세계 일주 중이었다. 여성의 짐받이에 커다란 비닐 봉투 안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많고 무거운 짐 가방을 자전거 앞 뒤로 달았으면서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주워 담아 갖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 나라의 시민의식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나딘 NADINE과 니콜라 NICOLAS. 일곱째별이라는 내 한국 이름은 그들에겐 너무 어려운 단어였다.
나는 그들에게 핵발전소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이주를 위해 자전거 순례 중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에 핵발전소가 24개라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2024년 7월 28일 기준 26기가 운전 중이었다.) 스위스에는 핵발전소가 다섯 개뿐이라며 태양광 등 대안 에너지를 쓰면 된다고 했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그들은 내 조끼를 사진 찍고 싶어 했고 나는 허락했다. 나딘은 내 SNS를 물었다. 내 소식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으니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지만 십 년 전 산티아고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처럼 이메일 연락이 오지 않으리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문자 몇 줄이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즉시 소통할 수 있는 작금의 시대에 편지 형식을 갖춰야 하는 번거로운 이메일이 웬 말인가.
호산항에는 터미널이 있었다. 토마토 주스를 사 마시고 월천으로 왔다.
가곡천 너머 가스공단이 보였다. 바닷가를 돌았다.
4년 전 울진핵발전소를 뒤에 두고 배낭 두 개를 찍었던 도화동산으로 가려면 오른쪽, 자전거 도로로 가려면 왼쪽이었다. 안전한 자전거 도로를 택했다.
나곡
고포마을 산을 넘으니 마침내 나곡항이 나타났다. 4년 전 일출을 기다려 울진핵발전소를 촬영했던 민박집이 있었다. 그곳을 찾아보았다. 핵발전소를 먼저 본 후 그 집을 찾았다. 주인을 불러보니 할아버지가 계셨다. 4년 전에 잘 묵고 가서 다시 찾아왔다고 인사를 했다. 그분께 동네에 성당이 있느냐고 여쭤보았다. 있다고 하셨다.
오전 11시가 넘어 북면성당을 찾았다. 하얀 아기 천사들로 둘러싸인,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성당이었다. 조끼와 헬멧을 벗고 조심스레 들어간 성전에서 미사는 중반을 넘어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신부님이 새로 오신 분들을 일일이 인사시키셨다. 맨 마지막이 나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고성부터 자전거 순례 중입니다.”
“며칠 걸렸어요?”
“4일이요.”
“나 아는 사람은 3일 걸렸던데.”
신도들이 웃었다. 나도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내처 쭉 내려왔다면 3일 걸렸을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못 한 봉헌을 한 후 성당을 둘러보았다. 건축 설계자가 궁금했다. 신부님께 여쭤보니 단국대학교 건축과 김정신 교수였다. 신부님 말씀이 그 성당을 지을 때 원전에서 경비를 보태주었다고 한다. 원전 관계자들이 많이 다니는 성당이었던 것이다. 그런 곳에 탈핵 자전거 순례라니, ‘이주만이 살길이다’ 조끼를 보았다면 기함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각자의 길이 달라도 제 길을 가는 건 본인 몫이다. 조끼를 입지 않은 내게 여성 신도들은 멋있다고도 하고 감사하게도 유기농 주스를 주시기도 했다. 인사를 마치고 자전거로 돌아온 나는 다시 노란 조끼를 입었다.
그곳은 부곡터미널 근처였다. 대부분의 식당이 주일이라 문을 닫아 식사할 곳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노곡항 길에서 보았던 나딘과 니콜라를 다시 만났다. 채식주의자 비건인 그들은 영문 표기가 없는 음식들에서 동물성이 없는 걸 찾고 있었다. 나는 된장찌개를 골라주었다. 그리고 나도 그걸로 선택했다.
전자레인지 역시 영문이 없어서 그들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알려주었다. 그들이 불편할까 봐 다른 테이블에서 따로 식사를 했다. 마침 그 편의점에 로드바이크 타는 여자분이 말을 걸어와 알려주었다.
“보급품은 고급으로.”
그 말에 따라 곤약 젤리를 사서 먹어보니 괜찮았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때는 씹을 기력도 없다. 지리산에서 그랬었다. 그럴 땐 씹지 않고 삼킬 수 있는 젤리류가 적합하다. 몇 개를 더 사서 스위스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As possible as see you soon.”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인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때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신한울 1, 2호기 건설소를 지났다. 비 맞고 걷던 4년 전 보았던 민트색 송전탑도 고목 1리 표지판도 그대로 있었다. 길은 내륙으로 돌아갔다. 핵발전소가 있는 곳은 해안도로를 이을 수 없으므로. 울진에는 한울핵발전소 1호기부터 6호기와 신울진 신한울핵발전소 1, 2호기까지 통 여덟 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전체 가동될 때는 전국 최다 핵발전소 보유군이다.
지루한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쯤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국립해양과학관이 나타났다.
후정 지나기 전부터 자전거 체인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하지만 챙겨 온 오일이 없었다.
죽변항 오토바이 가게에서 체인에 기름칠 좀 해 달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왔냐고 묻길래 혼자 고성에서부터 타고 왔다고 했다. 값을 치르려 했더니 다음에 다시 들르라고 한다.
바닷가에선 맞바람이 불었다.
봉평 지나 14:56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에 도착. 곧바로 울진 종합버스터미널로 향했다.
15:08 터미널 도착. 시간이 늘어진 건지 뷔나가 빠른 건지. 때론 분 단위가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번 자전거 순례는 3박 4일로 여기까지. 나를 위한 선물로 팥빙수 먹을 생각에 달려왔지만, 터미널 근처에 카페는 없고 편의점이 있어 냉동 팥빙수를 샀다. 땀 냄새 푹푹 풍기며 우등고속버스에 올랐는데 다행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15:25 버스가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서부터 러시아로 와서 배로 동해에 도착해서 우리나라 동해안을 지나 일본으로 갈 나딘과 니콜라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