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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Oct 16. 2024

길 위의 의자

이보령 사진전,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 20241016~1021


길에 버려진 의자를 찍는 분이 계시다.

이보령 선생님.

내가 강재훈 사진학교 60기를 수료하던 2017년,

교장 선생님 시절 찍으셨던 사진으로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자란다>를 전시하셨고,

이후 함께 사숙할 때 막 의자를 찍기 시작하셨다.

그 당시 따님이 딸을 낳아 그 아기를 찍어오셔서, 설마 여느 여인네처럼 손주 사랑에 빠지시는 건 아닐까 살짝 염려했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그 아기가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선생님은 7년 동안 맹렬하게 길에 버려진 의자를 촬영하셨다.

이보령 선생님은 버려진 의자가 본인 모습 같기도 하고, 그 모습에서 지난 기억이 환시처럼 떠오를 때도 있다고 하신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주제를 놓고 7년을 찍으면 그 주제는 그 사람의 것이 된다.

'의자'는 이제 이보령 선생님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도 어디에 가든 길거리에 놓인 의자를 보면 이보령 선생님이 떠올랐다.

 


오늘 오프닝에서 본 사진의 느낌은 의자의 영정 사진이었다. 버려진 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찍어주신.

자, 이제 이보령 선생님이 의자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의자를 통해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 2022-1105, 대구


시아버님, 2020-0710, 원주



오춘화 할머니 2023-1123, 2024-0615 서귀포

                                  


텃세, 2021-02165, 안양



고양이, 2019-0629, 강화



빈자리, 2021-1015, 목포



강재훈 선생님은 이보령 선생님의 의자 사진에서 조병화의 시 <의자>가 떠오른다고 하신다.   


의자


조병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내려놓음, 2021-1117, 성남


하지만 나는 '의자' 하면 이정록의 시가 떠오른다.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내게도 안식할 수 있는 좋은 의자 하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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