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령 사진전,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 20241016~1021
길에 버려진 의자를 찍는 분이 계시다.
이보령 선생님.
내가 강재훈 사진학교 60기를 수료하던 2017년,
교장 선생님 시절 찍으셨던 사진으로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자란다>를 전시하셨고,
이후 함께 사숙할 때 막 의자를 찍기 시작하셨다.
그 당시 따님이 딸을 낳아 그 아기를 찍어오셔서, 설마 여느 여인네처럼 손주 사랑에 빠지시는 건 아닐까 살짝 염려했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그 아기가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선생님은 7년 동안 맹렬하게 길에 버려진 의자를 촬영하셨다.
이보령 선생님은 버려진 의자가 본인 모습 같기도 하고, 그 모습에서 지난 기억이 환시처럼 떠오를 때도 있다고 하신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주제를 놓고 7년을 찍으면 그 주제는 그 사람의 것이 된다.
'의자'는 이제 이보령 선생님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도 어디에 가든 길거리에 놓인 의자를 보면 이보령 선생님이 떠올랐다.
오늘 오프닝에서 본 사진의 느낌은 의자의 영정 사진이었다. 버려진 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찍어주신.
자, 이제 이보령 선생님이 의자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의자를 통해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재훈 선생님은 이보령 선생님의 의자 사진에서 조병화의 시 <의자>가 떠오른다고 하신다.
조병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자' 하면 이정록의 시가 떠오른다.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내게도 안식할 수 있는 좋은 의자 하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