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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Nov 03. 2024

백과 흑

백묘와 흑묘 


어제

모처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잤다. 

그렇게 아프던 몸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 

이름도 행복한 동네 의원 의사가 세끼 다르게 약을 처방해 주셨다. 

역시 행복한 약국에서 지어온 그 약 사흘 치를 다 먹었다. 


낮에 콩이 사료를 먹이는데 고양이 두 마리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대치하고 있었다. 

한 마리는 콩이 밥 먹일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하얀 고양이, 

다른 한 마리는 언젠가부터 우리집을 제 집인 양 드나드는 덩치 큰 얼룩 검정고양이. 

둘 다 길고양이지만 흰 고양이는 콩이 사료줄 때마다 챙기는데 이상하게 검은 고양이는 꺼려진다. 


둘이 왜 묘한 소리를 내며 서로를 탐색하고 있나 한참을 쳐다보던 중 마침내 둘이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발톱들이 공중에서 호를 그리고 흰 털이 날린다. 

그냥 봐도 흰 고양이가 열세다. 


나는 황급히 무기가 될 만한 걸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벽에 기대 놓은 커다란 삽을 발견했다. 

물론 내가 그 삽으로 검정고양이를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들기만도 무거운 그 삽을 땅에 쿡쿡 찍으며 소리를 지르면서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 하얀 고양이는 내 차 아래로 들어갔고, 검정고양이는 바퀴 옆에서 그르렁 거린다. 

나는 삽을 바닥에 찍으며 소리를 질러 검은 고양이를 내쫓았다. 

그리고는 콩이와 똑같은 사료를 타이어 앞에 살포시 부어주었다. 

하얀 고양이가 야곰야곰 먹었다. 


처량하고 슬프기론 길 고양이 신세만 한 게 없을 것이다. 

가끔 그렇게 완력으로 공격해 오는 다른 고양이를 만나기라도 하면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얼마 전부터 등에 두 군데 털이 뽑힌 흰 고양이는 아마도 오늘 그 검은 고양이에게 뜯겼을 것이다. 

콩이 밥을 얻어먹던 흰 고양이는 오늘 제 편 들어준 내 도움으로 큰 사고를 모면했다. 

이번엔 내가 도와줄 수 있었지만 앞으로 또 그 검은 고양이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사는 게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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