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옵니다 또는 눈이 웁니다
친구가 준 새 구두를 신었다.
학기 중 구두를 신는 날은 특강일.
지난달 작가 특강 때는 초록 구두를, 오늘은 빨간 체크 구두를.
준비 사항은 구두뿐만이 아니었다.
한 달 이전부터 스카이라운지 식당을 예약해 놓고, 풀코스 메뉴를 물어서 정해놓았다.
학생들에게는 강사님 책을 읽고 질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하여 강의 며칠 전에 질문지를 취합해서 보내드렸다. 먼 길 오시는 분에 대한 성의와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또 미리 알고 있어야 그만큼 많이 얻기 때문이다.
평생 한 번 혹은 살면서 몇 번 없을 기회를 잘 잡으라는 뜻이다.
새벽에 운전해 오실 강사님을 위해 집에 있는 음식을 싹 쓸어갖고 나갔다.
미리 대전역에서 사놓은 성심당 빵도 챙겼다.
내 책은 덤이었다.
주차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 놓자 시간 맞춰 강사님이 오셨다.
배고프실까 봐 준비한 것들을 늘어놓았다.
요거트, 통밀빵, 무화과잼...
다행히 잘 드셨다.
짧은 시간에 선물을 교환했다.
작가님 사진집과 예쁜 차(tea)와 내 책들과 사진집.
서둘러 들어간 강의실에는 조신하게 앉아있는 학생들.
조명을 끄고 강의를 듣는다.
학기 초부터 학생들에게 누누이 말했다.
한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님을 섭외 중이라고,
그리고 얼마 후 섭외했다고.
세계적인 작가님이 오시니 최선을 다해 준비하라고.
강의는 사진 발명부터 코닥 광고를 거쳐
왜 사진 찍기는 쉬워졌는데 사진 찍기가 어려울까,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코드 없는 메시지
모호한 매체
사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맥락
대추리, 라쇼몽
목격자는 크든 작든 진술의 책임이 있고, 그 진술에는 결함이 있다.
진술이 진실은 아니다.
현장의 여운이 남아있을 때 엮어야 한다.
정치 사회와 순수예술의 관계
!느낌표가 감동이라면
?물음표는 의문
의문이 남기를, 불편함을 바라는 사진 작업
과거 작업 방식과 현재의 작업 동향
그리고 질문과 답변
마지막 서명
그의 책 제목 '말하는 눈'의 '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눈.
중의법과 유머
그의 사진에 글이 많이 들어가는 이유였다.
물론 사진만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쓰여있는 글을 읽고 나면 몰랐던 상황이 보이고 사진이 요구하는 눈을 갖게 된다.
특강 후
13층 레스토랑에서 풀코스 식사를 대접했다.
자주 환대에 감사하셨다.
그렇게 느끼셨다니 기뻤다.
살아있는 동안,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강사료와 식사비와 선물비로 한 과목 월급의 절반 이상을 지출했다. (그래도 감히 모시기 미안한 액수의 강사료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학생들이 평생 모르고 살거나 알아도 못 만날 분들을 모셔와 그들의 인생에 큰 만남을 경험하게 해주고, 내가 떠돌 때 날 먹여주고 돌봐준 이들처럼 나도 내 수입을 나눠 예술가들과 공유하는 삶.
이런 자발적 기쁨의 수고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모른다.
이틀 전 지난달 특강 강사님이 서울로 학생들을 초대해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인생은 예상보다 다이나믹하니까. 내가 숨이차로부터 '말하는 눈'을 선물 받고 저자를 초대한 것처럼.
나는 학생들이 단지 문화충격을 넘어 그 놀라움을 자신의 인생에 적용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두 달 넘게 준비하고 기다리던 시간을 모두 마쳤다.
"이 멀고 작은 학교에 새벽부터 기차로 운전으로 오신 특강 작가님들 고맙습니다. 우리 학생들 가슴에 작은 불씨 하나 떨어졌을 겁니다. 그 불씨가 저 들에 번지기를 오래 함께 기다려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