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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북토크

움베르토 에코 : 세계의 도서관

by 일곱째별 Jan 10. 2025


https://youtu.be/OyEAM8OkB-w?feature=shared

[움베르토 에코: 세계의 도서관] 메인 예고편(한글): 2024.12 다큐멘터리: Umberto Eco: A Library of the World



"교수님, 저희 외국 사람이에요."


그랬다. 그런데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말을 잘했다.

말을 잘한다는 건 화법뿐만이 아니라 에티튜드의 자연스러움도 동반하는데 R은 한국말을 정말 잘했다.

약간의 억양만 빼면.


겨울 계절학기 마지막 날,

개강일에 말한 북토크를 했다.

11명 중 세 명이 책을 사서 읽었고 그 세 명과 독립영화관에 갔다.

가는 도중 자동차 안에서 완독 한 한국 학생의 소감을 들었다.

새벽마다 깊게 빠져들어 읽었다는 학생은 내 수업을 처음 듣는 데도 필사까지 했고 상세하게 기억하며 감동한 부분과 웃었던 부분을 말해주었다.


앵두나무와 해남 고양이 등


가까스로 도착해서 관람한,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이탈리아어에 한국어 자막인 영화 속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와 세계의 도서관을 볼 수 있었다.

십 년 전에 가 본 세계 3대 도서관 중 하나라는 체코 스트라호프 도서관이 떠올랐다.


영화가 끝나자 외국 학생 두 명은 거의 못 알아들었다고 했다.

중간에 움베르토 에코 교수 영어 강연만 알아들은 정도였다고.


"자막 못 읽었어?"

"너무 빨라요. 교수님. 저희 외국 사람이에요."


영화관 앞 베트남 쌀국숫집에서 식사를 했다.

어찌나들 조신하게 먹는지 씹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물어보니 두 장 읽었단다.

(겨울 계절학기인데도 과제가 많긴 많았다.)

그런데 읽은 흔적이 감동이었다.



350쪽 가까운 한국어 책을 언제 다 읽을까?

영영 다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R의 정성은 이미 감동이었다.


2년 전 황폐하고 황량한 가슴으로 그 극장에서 <나나>를 보았었다.

R의 나라 영화였다.


그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던 중이었다.

세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어찌나 하염없이 울었던지 영화가 끝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나와 민망했었다.

그날도 그렇게 겨울 계절학기를 책 읽어온 학생들과 극장에서 끝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연산에서부터 도보순례를 시작했었다.

2년 전의 종강과 오늘은 나흘 차이가 난다.

그리도 또 차이가 있었다.


로비에서 헤어지려는데 R이 나를 부르며 공손하게 엽서를 내밀었다.

이미 포스터와 브로슈어를 쥔 손에 엽서를 얹어 받았다.

자동차로 돌아와 잠시 후에 엽서를 보았다.  


영어로

"나는 당신이 우리 안에서 얼마나 많은 꿈을 불러일으켰는지 알기를 바랍니다.~~"

 

ignated


그리고 볼펜으로 그린 그림들.


점퍼 : 항상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길~!

김 나는 컵 : 맛있는 거만 드시길~!

목도리

바지

에코백, 세월호 리본이 달려있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자녀가 부모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하듯 학생도 선생의 세세한 하나하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말한 적 없지만 학생들은 보고 있었다.

내 흔적 어딘가에 있는 노란 리본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건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또 다른 그 무엇으로 가능하다.


이번 겨울 학기에 벨라루스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나라에서 온 학생을 통해서였다.

내가 본 벨라루스는 부드러운 초록색 눈동자에 따사로운 미소로 예술적이고 영민했다.

오늘은 에티오피아에서는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을 때 팔짱을 낀다는 걸 알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학생들이 팔짱을 껴야 정숙한 자세라고 배웠다고 한다.

각 나라마다 문화는 다르다. 하지만 밑바탕 마음은 통한다.

수많은 한국 사람이 있겠지만 누군가는 나를 보고 한국을 느낄 것이다.

나를 통해서 보는 한국은 아마 세심하고 엄격하며 친절하고 따뜻하겠지.


2년 전에는 나의 문제로, 지금은 나라 문제로 여전히 평화로울 수 없지만 지금 이곳에서 나를 보고 대한민국을 느끼는 이들을 보며 약간의 위안을 가져본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에 세계라는 도서관에 꽂힌 한 권의 책만큼의 분량일지도. 그 책이 양서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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