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1 목요일 공주 탄천면행정복지센터~우금티 전적지 15km
탄천면행행정복지센터 - 달산 현대오일뱅크주유소 - 달산교 (4.5km) - 이인농협주유소 (2.3km) - 태봉한식뷔페 (5.2km / 점심) - 공주 우금티전적지 (3km) 15km(누적거리 85.6km)
전날도 느꼈지만 금빛탄천면은 붉은 현수막으로 폭풍전야였다. 그 아름다운 곳에 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선다니 주민들이 반대하는 듯했다. 새, 사람행진이 아니었다면 행정복지센터 직원에게 전후 사정을 들어보고 싶었으나, 부디 철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이날은 수라의 외침 ‘흰발농게의 날’이자 이스라엘 학살로부터 팔레스타인 해방을 기원하는 파업의 날, ‘FREE PALESTAIN’. 공군 활주로를 신공항으로 속여 남의 나라에서 전쟁 준비를 하는 미국이나 인종 학살을 일삼는 이스라엘이나 이웃사촌지간이니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행진 처음 얼마간 함께 걸으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맨발 샌들과 지팡이는 일평생 겪어오신 풍찬노숙의 의연함을 보여주신다. 신부님 곁에서 카메라를 바꿔 들며 따라오는 공룡 설해는 어깨가 무너지는 무게에도 늘 웃음 짓고 뛰어다니고 있고, 덤프트럭 곁에서 행진단을 인도하는 더덕은 맨 앞에서 단단해 보인다. 행진단 총 진행을 맡은 팀장 딸기는 멈추게 하는 차량에도 깍듯하고, 말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행진단을 독려하는 완두와 김연태 단장님은 존재만으로 든든하다. 앞과 중간 뒤에서 안전을 담당하는 가지가지와 니키와 청명은 검은머리물떼새 부리 닮은 빨간 경광봉으로 행진단을 지킨다. 함께 경광봉을 들고 안전을 담당하는 토니는 틈틈이 작품사진을 찍어 올리고, 동영상을 촬영하는 오이는 있는 듯 없는 듯 평화롭고, 실시간으로 사진 업데이트하는 인디는 매일 행진 후에도 새, 사람 잡지 제작에 잠을 잊었다. 참, 큰뒷부리도요의 집사 알알이는 직사광선을 막기 위해 겨울 장갑을 낀 채로 가끔 음악에 맞춰 검은 오른손을 흔든다. 묵묵히 후미 차량을 운전하는 다운은 행진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수시로 태우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내 발걸음에 불평 한마디가 없다.
한 시간 후 다리 밑에서 첫 휴식을 하는데 왜가리 두 마리가 맞은편 높은 나뭇가지에 날아 앉았다. 새, 사람행진 가까이에는 늘 새들이 있다.
오전 열 시, 공주이인파출소에서 화장실과 정수기 사용을 했다. 서천과 부여에 이어 공주까지 오는 동안 경찰과 꽤 가까워졌다. 나는 파출소 정수기에서 나오는 얼음이 신기해서 신이 났는지 경찰에게 우리가 왜 걷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군경이 동족일지라도 수라갯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들도 경찰 이전에 시민이지 않은가. 그런 나를 딸기가 쓰윽 쳐다보고 나갔다. 노동운동을 해온 가지가지는 며칠 전 부여에서 경찰과 싸우기만 했지 수고했다고 인사 나눈 건 처음이라고 했다. 반평생 운동만 해 온 딸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족보나 노선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활동하는 나는 상식선에서 크게 적대시할 사람이 별로 없다. 새만금 신공항을 백지화하자고 하는 행진 아닌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는 게 행진단원으로서 할 일이다.
이날 새, 사람행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식뷔페에서 모두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문규현 신부님도 오셨다. 식후 재빨리 자동차를 가져다 도착지에 두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배가 든든한 행진단은 다시 걸었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는 로드킬 당한 동물들이 있었다. 전날은 파란새가 청명 손수건에 싸여, 이날은 얼룩뱀이 성미산 학교 선생님 종이에 들려 도로가 수풀로 이동되었다. 동물도 외모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마침내 8월 12일 전주에서 출발한 지 열흘 만에 동학농민운동 항전지 우금티에 다다랐다. 큰뒷부리도요를 주차장 근처에 두고 사람만 올라오라는 안내가 들렸다. 그런데 그때 집사 알알이가 오르막에서 가속을 냈다. 모터를 쓰지 않고 페달링으로 올라가기엔 가팔랐다. 그런데 큰뒷부리도요는 동학혁명군 위령탑까지 거뜬히 올라갔다. 멀리 뒤에서 그 광경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곳은 지난 2022년 1월 분연히 떨치고 다시 길을 떠났던 내가 들렀던 곳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들리는 듯했던 그 함성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1894년 11월 그날, 이인역에서 우금티를 넘으려다 일본군의 총부리에 피에 젖어 쓰러지던 동학농민군들의 함성. 그건 기개였다. 지치지 않는 기개, 멈추지 않는 의지, 죽음을 불사한 항거.
이어 두 단장님이 헌화와 절을 했고, 우리는 큰뒷부리도요와 더불어 천천히 걸어 올라오시는 문정현 신부님을 기다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생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라갯벌을 지켜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