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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Feb 17. 2023

남도 순례길 15-최종회

남도 순례길 최종회 우수영 성당과 세방낙조


☆ 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 , 하느님의 자비 주일 <우수영 성당


눈을 떠보니 창에 빛이 들어오는 게 아침이었다. 

이부자리에서 기도를 했다.

“주님, 응답해 주세요.” 

꼬르륵~ 배가 대답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먹기 싫었다. 

세수하다가 그날이 주일이고, 우수영 성당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짱 떠보자, 야곱의 씨름처럼. 

시간을 알 수 없었으나 천천히 준비했다.      


몇 벌 없는 옷 중에 제일 좋은 걸 골랐다. 검고 얇은 터틀넥 셔츠에 부암동 디자이너 작품인 감색에 검은 테두리 레이스가 박힌 긴 로브와 통인동에서 산 청바지에 검은 양말을 신었다. 언제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화장을 하려니 얼굴에 분이 먹질 않았다. 마스크를 써야 했지만 립스틱을 발라 보았는데 그 역시 입술 선이 뭉그러져 안 바르니만 못했다. 세월호 리본도 떼고 탈핵 몸자보도 떼고, 노란 리본 맨 헝겊 가방도 말고, 내 신념이 드러나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그리고 신발은……다 떨어진 등산화와 털 고무신과 노란 단화 중 구두를 신어야 했으니 단화를 신었다.      


차에 시동을 걸어보니 09:30. 보통 주일 미사 시각은 10시나 11시 혹은 10:30일 것이다. 

‘일단 가보자. 시간이 맞으면 날 위한 미사일 것이다.’


성당이 가까워질수록 불안했다. 

그래도 무슨 말씀을 해 주실지, 그 궁금증은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10시 정각, 우수영 성당에 도착했다. 

세 번째였다. 

일주일 전, 천에 싸여 가려져 있던 십자가상, 성모상, 예수님상 모두 벗겨져 있었다.      


미사 시각은 11시였다. 

마침내 미사를 시작했다. 

스쳐 가는 신부님의 뒷모습에서 권위와 위엄이 넘쳐흘렀다. 

내 몸과 마음이 엄숙하게 반응했다. 

황급히 주보를 찾아보았다.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님께서 본당에 사목방문을 하셨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나는 이 용어들이 무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대주교님이 높은 분이고 매주 이 성당에 오는 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본문은 토마스의 이야기였다. 개신교에선 도마라고 한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6~29)     


도마. 진해 주기철목사기념관에서 본 본문도 디두모라 하는 도마의 이야기였다. 

도마는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신다고 했을 때 저 혼자 나서서 “우리도 주(그)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했던 제자다. 완전 행동파였다. 가슴이 움직이면 머리로 따지기 전에 발이 먼저 나가는 나랑 똑같다. 토마스, 도마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마가 특별히 믿음이 약한 제자는 아니었다. 다른 제자들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을 만나서 손과 옆구리를 이미 보았다. 그런데 도마는 그때에 함께 있지 아니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봤으니 믿은 거였다.     


리얼리스트인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왔다. 스페인 산티아고부터 한국의 땅끝과 섬까지 만신창이가 되어서. 그런 나에게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시면서도, 내가 도마 같은 인간형임을 알게 해 주시는 말씀이었다.      


미사가 끝났다. 

대주교님은 다가서지 못하는 내게 먼저 다가오셨다. 

주변인이 빠지고 둘만의 찰나가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짧게 세 문장을 말했다. 

그런데 그분이 더 짧은 세 문장으로 말씀하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감사와 감동과 감복이 처절한 통곡으로 터져 나왔다.


도마 같은 나에게 딱 맞게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주님그날은 부활 제2주일 곧하느님의 자비 주일이었다그리고 본문의 여드레를 지나서는 ‘A week later’, 한 주 후였다그렇다면 부활절 이후 한 주바로 그날이었다

  


☆ 2022년 4월 29일 금요일 <세방낙조


4월 마지막 날을 하루 남겨두고 그 유명하다는 세방낙조를 보러 갔다. 

언제 다시 진도에 올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쪽 끝에 펼쳐진 섬들이 전설을 담은 그림 같았다. 그곳에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정경을 누군가와 함께 본다면 그 느낌이 배가 되겠지만, 전에는 ‘아~ 누구랑 같이 보고 싶다’ 했다면 이제는 그냥 ‘그래, 혼자 보는구나.’ 하고 현실을 알아차린다. 


낙조를 보러 하나둘 사람들이 전망대로 모여들기 시작하자, 홀로 스르륵 바닷가 자갈밭으로 내려갔다. 


‘하느님, 절 사랑하신다면 제게도 관지처럼 하트 모양 돌을 보여 주세요.’


그러나 하트 모양의 돌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 내가 사랑을 못 받는구나’ 실망하지 않는다. 

‘너, 여전히 유치하구나. 이제 돌 그만 주워. 짐 돼.’ 그렇게 웃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전설을 담은 세방낙조 

     

그동안 <길목인>이 발행되면 읽어줄 만한 사람들에게 내 글을 링크해서 문자로 보냈다. 하도 민망한 일이라 나중에는 답글이 오는 사람에게만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과도한 친절 내지 애걸은 없을 것이다. 2G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 일 년 반, 오는 전화의 발신자를 주로 입력해서 100명 넘지 않게 관리했었다. 그 연락처를 모두 삭제했다. 앞으로 나를 찾는 사람들로 다시 휴대전화기를 채울 것이다.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마가복음 2:22 下)     


이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새로 시작한다. 언제 다시 걸을지 모르겠다. 다시 걷는다면 그때는 더욱 분명한 대의명분이 있을 것이다. 명분이 없어도 걸을 순 있겠지만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생명과 평화가 가득하고 자유가 넘칠 것이다. 사랑은 당연하다. 나는 사랑하지 않는 그 어느 것도 사진 찍거나 쓸 수 없는 사람이니까.    

  

길을 뜬 별은 혼자 빛을 낼 수 없다. 길에 뜬 가장 큰 별, 빛 자체이신 그분의 존재 없이는.      


(지금까지 [길뜬별]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한다. 그리고 글에 사진을 편집해 완성해 주시고 시시때때로 하는 교정 요구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수정해 주신 권태훈 편집디자이너님께 고마운 진심을 전한다. 4년 9개월  간 지면을 주신 <길목인>에도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함께 걸은 이들과 내 진정 사랑하는 탈핵 벗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대들 덕분에 내 삶이 변화했고 찬란히 빛났다. 손바닥 뒤집듯 한없이 가벼운 이 세상에서 그대들을 통해 대가 없이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았고 순수한 마음에 순간순간 감동하고 많이 배웠다. ‘탈핵’을 통해 ‘벗’을 만났음에 깊이깊이 감사한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때에는 순전하고 영예롭게 서리라. 


안녕, 벗들이여. 

안녕, 여러분.      


동백의 꽃말,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글/사진 : 일곱째별



* 길목인 <길뜬별/남도 순례길 12 최종회 - 진도 팽목항과 하죽도> 뒷부분을 포함했습니다.  

http://www.gilmokin.org/board_02/1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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