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국 다시 돌아갈래요
초등학교 5학년 3월, 영어 국제학교에 전학 가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부모님과 함께 국제학교 전학 시험을 보기 위해서 학교를 방문했다. 나는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도 썩 공부를 즐겨하거나 잘하는 편에 속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공부하라고 강요하시는 분들이 아니셨을뿐더러, 나는 학교를 마치고 미술이나 피아노학원을 마치면 바로 놀이터로 달려가서 저녁을 먹을 때까지 젖 먹던 힘까지 열심히 노는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목이 3과목이 있었는데, 미술, 음악, 그리고 영어였다. 예체능에 재능도 있었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피아노를 치거나, 수채화와 정물화를 열심히 연습했던 나였다. 열심히 놀았던 것을 후회한 적은 없고, 어려서부터 '만약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나의 자녀들은 꼭 충분히 놀게 해주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국제학교로 전학 가기 위해서 영어를 하루 6시간씩 공부를 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인이야"라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굉장히 뚜렷했나보다. 아니면 국제학교 전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니 회피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우즈베키스탄 생활 한 달 후, 나는 매일 밤을 눈물로 보냈다.
한두 달쯤 지났을까, 신기했던 건 스스로 노력도 안 해보고 국제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억울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처음에는 그저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하다 보니 오기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과외수업해주시던 과외 선생님 중에 한 분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셨다. 그래서 선생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공부 해야만 했다. 부모님이 내 성격을 아셨던 것인지, 답답한 것을 아주 싫어하는 나는 영어 실력이 계속해서 향샹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국제학교에 전학을 갈 수 있게 되었고,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