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삶을 원한다면, 말도 안 되는 노력을 해라."
어제 SNS에서 지인이 올린 글을 보며 잠시 마음이 멈춰 섰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살기 위해 그래야만 했고, 현재는 '말도 안 되는 삶'을 꿈꾸기에 멈출 수 없습니다. 내 삶 자체가 이미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려왔기에, 나는 또다시 말도 안 되는 내일을 꿈꿉니다.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모든 것은 나를 만들어온 역사이자 힘입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도 안 되는 노력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재작년, 저는 또 다른 욕심으로 웹 에이전시에서 SI(시스템 통합)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매출은 올랐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가진 현금 자산을 모두 들이부었고, 인생에서 다 끝난 줄 알았던 부채가 다시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즈니스에 공격적인 성향인 저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뒷감당이었습니다.
결국 과감하게 SI 사업을 접고, 사무실을 절반 크기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밀린 임대료와 직원들의 퇴직금, 정리를 위한 부대비용들이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힘들어하던 저에게 그때 우리 회사 영업팀장이 말했습니다.
“대표님, 우리 예전처럼 다시 어깨 부딪히면서 일해봐요.”
저는 늘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직원들 역시 함께 헤쳐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밀어내는 대신 위로했고, 스스로도 굳건하게 이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이 말이 저에게는 큰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후퇴가 아니고 어깨 부딪히며 함께 일하고 싶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사무실 규모를 줄이는 것이 마치 인생에서 후퇴하는 것만 같아 슬프고 아팠지만, 사실 아파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도 비용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내가 손을 놓을 수 없게 도와주는 귀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재창업 때처럼, 다시 기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송도에서 같은 업을 하는 라온비엔피 대표님은 평소 절친한 사이입니다. 그는 억 단위의 돈을 아무 조건 없이 선뜻 빌려주었습니다. 나라는 사람 하나 믿고 내어준 그 마음을 평생 보답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사를 가려는데 보증금이 부족했습니다. 지식산업센터 임대 영업을 하시는 이승준 부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하자, 처음 보는 분인데도 “굳이 임대 회사에 한 달 뒤에 준다고 아쉬운소리 하지 말고 내가 빌려주겠다”며,
2천만 원을 내놓으셨습니다.
새 사무실 인테리어도 문제였습니다. 직원들을 위한 칸막이와 탕비실은 꼭 필요했기에 인테리어 대표님께 카드 결제가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처음 뵙는 그 대표님은 “사실 그작년에 일을 많이해서, 여유가 좀 있는 편이라 대표님만 괜찮다면 그냥 해줄 테니 나중에 여유 되면 갚으라”며, 오히려 저를 배려하는 말씀과 해결의 메시지까지 주시며, 이사인테리러 비용이 없어 고민하며 미루고 미루던 저에게 이사가기 일주일전 처음만나 인테리어를 일주일 만에 끝내주셨습니다.
이 과정들이 한달동안 이루어진 일들인데..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인들에게 이야기해도, 다들 정말? 하고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이런 기적같은일들을 만들어주신, 라온비엔피 대표님, 임대 영업 이승준 부장님, 그리고 인테리어 대표님, 그리고 우리 직원들...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쳤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저는 내려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 안에 에너지가 남아 있었기에 애절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가장 걱정하는 건, 오직 하나 ‘내가 지쳐버리는 것’ 뿐입니다.
문득 한 인물이 떠올랐습니다.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전 직원 658명을 잃고 홀로 살아남았던 캔터 피츠제럴드의 하워드 러트닉 대표입니다.
그는 아이의 유치원 입학 첫날이라 등원을 도와주느라 운 좋게 화를 피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는 전 직원을 잃은 지옥 같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때 그가 선택한 것은 절망이 아닌 '재건'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직원들의 유가족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폐허 위에서 회사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그에게 회사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지켜내야만 하는 생명줄'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나를 믿고 거액을 선뜻 내준 사람들, "다시 어깨 부딪히며 일하자"던 우리 직원들. 나를 바라보며 용기를 주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가족들...
그들의 믿음이 내 등에 업혀 있는 한, 저는 함부로 지칠 권리조차 없습니다.
내가 지치는 순간, 나를 지탱해 준 그 수많은 사람의 믿음도 함께 무너질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도 안 되는 노력을 멈출 수 없습니다. 나는 지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주변에서 힘내라고 해주시는데, 제가 지치면 안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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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재창업을 시작했다.
재창업이 아니면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나는 자존심이 강했다.
누구에게 손을 벌리거나 도움을 받는 것도 싫었지만, 그럴 만한 어른도 곁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미 어리지 않았다. 스물다섯이었다.
이번 창업은 조심스러웠다.
직원을 채용하는 일조차 그랬다.
이미 한 번 크게 말아먹었다. 지금도 상환 중인 빚이 있었고, 또다시 무너질 순 없었다.
내 손에 남아 있던 여유자금은 고작 100만 원.
사무실을 얻을 형편은 아니었다.
일단 원룸에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인천이 아니라 서울에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포부는 컷다. 비지니스는 돈 많이 쓰는 지역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사람들은 다 부자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20대)
그래서 강남을 가고 싶었지만(계속 철없다. 이와중에 강남이라니..), 수중에 자본이 없어 회기동 쪽으로 방을 알아봤다.
보증금은 없고, 월세만 낼 수 있는 상태였다.
그마저도 내게 남은 전부는 월세 두 달치. 알바해서 모은 돈이었다.
(그때 월세는 한 달 30만 원 정도였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벼룩시장을 뒤졌다.
그렇게 찾은 첫 번째 집.
그 집 주인 어르신은,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귀인이었다.
“저… 보증금이 없는데요. 다음 달에 제가 벌어서 갚아드리면 안 될까요?”
나는 ‘홈페이지가 어쩌고’ 하며 내가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갚아나갈 건지...준비해 둔 설명을 길게 늘어놓으려 했다.
그런데 어르신은 그냥,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내 변명 같은 설명은 필요 없어졌다.
너무 감사해서 그 자리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르신은 “언제 들어올 거냐, 짐은 많으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라” 하셨다.
경희대 근처라 자취생을 많이 보셨을 테고, 그렇게 학생들에게 종종 마음을 내어주시는 분이셨는지도 모른다. 짐은 많지 않았다.
PC 한 대, 캐리어 하나. 벼룩시장에서 냉장고를 하나 사고, 슈퍼에서 버너 하나를 샀다.
인터넷도 신청했다. 이불은 없어서 그냥 수건을 덮고 잤다.
그리고 나는 그 차갑고 작은 방에서, 나는 다시 창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