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듣기, 에피소드 세 가지

낯선 이 관찰하기

by 시 선

#1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길, 옆 옆 MZ로 보이는 소녀가 손에 든 핸드폰을 간간이 쳐다보면서, 또 간간이 맞장구를 치며 앉아 있다. 또래 친구로 보이는 소년이 마주 서 있었다. 사람들로 꽉꽉 찬 오후, 지하철 안은 모두 자기 핸드폰에 몰두하느라 몹시 조용한 가운데, 유달리 그 소년만 앞에 소녀를 향해 자꾸 말을 잇는다. 둘이 아는 무언가에 대해 뒷 담화 중인 것 같았다.

“좀 애매하긴 해!”


순간 그 한마디가 내 귀에 꽂히다시피 했다. 너무도 익숙한 말이기 때문이다. 말투와 억양, 속도 어딘가 꺼려지는 뉘앙스까지 똑같았다. 바로 우리 딸이 곧잘 하는 말이다. 뭐만 하면 ‘좀 애매하긴 해’하며 애매하게 상황을 넘기곤 했다. 대체 저 애매한 말투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분명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릴스 아니면 틱톡에 누군가 뱉은 말이었겠지. 그저 누군가의 (어쩌면 쓰잘머리 없는) 말버릇일 수도 있겠지.


요즘 아이들은 어딜 가나 누구나 비슷한 말투로 비슷한 말들을 한다. 그게 자기들, MZ의 특성 혹은 정체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자기가 MZ에 속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낯선 지하철 안, 어느 소년의 한마디가 익숙하여 반가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반감이 드는 건 왜일까.



#2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가는 수단은 세 가지다. 계단,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주로 노약자나 임산부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나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에 적정한 사람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자리가 빈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니었다. 마지막은 내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바로 내 옆에 섰고 다른 한 사람은 나를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 정면으로 얼굴이 보였다. 언뜻 보기에 60대 아주머니 같다. 일순 내 눈에 띈 건 아주머니 화장이 거의 신부 메이크업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어딘가 중요한 자리에 다녀오는 길인가 싶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아주머니가 참 곱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목구비가 굉장히 뚜렷했다. 젊었을 땐 꽤 미인이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저 진하고 두꺼운 화장이 그 미모를 가리는 건 아닐까. 공연한 참견을 한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지 씨가 나보고 연두색으로 하라고 하더라고, 그게 잘 받는다고. 근데 너무 튀지 않을까 싶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돌연 두 사람의 대화에 흥미가 일었다. 일부러 걸음을 천천히 해 그들과 나란히 걸었다.

“연두색은 너무 튀지, 혼주가 그렇게 튀면 되나. 신부가 튀어야지, 그날은 신부가 주인공인데 혼주가 튀면 되겠어?”

옆에 아주머니 일행분이 서슴없이 말했다.

“그치? 연두색은 너무 튀지?”

아주머니는 약간 아쉬운 말투였다. 어쩌면 연두색이 그녀의 최애 컬러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언니는 이뻐 가지고 연두색으로 해 입고, 신부보다 튀면 사람들이 다 언니만 쳐다볼 거 아니야, 신부를 봐야 하는데. 그날은 신부가 주인공인데. 내 생각엔 그래.

내 생각은 그렇다며 일행분은 아주머니를 기분 좋게 구슬렸다. 그분은 상대를 조련할 줄 알았다.

이제 아주머니는 완전히 넘어간 듯했다. 연두색은 절대 안 될 거였다. 자기의 미모가 신부보다 돋보이면 큰일일 거였다.


우리(?)는 한 번 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번엔 코 앞에 일행분 얼굴이 보였다. 연두색은 아니라던 일행분은 쌩얼에 마스크를 끼고 형광 연두색 집업을 입고 있었다. 왠지 나는 살짝 의아했다.

“응, 아무래도 연두색은 안 되겠어!”

아주머니가 결심이 선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지상 출구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내려 멀찍이 두 사람을 바라봤다. 굿바이 인사라도 전해야 할까. 그때 아주머니의 풀 메이크업한 예쁜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일행분의 연두색 집업만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두색은 확실히 튀었다. 그야말로 자체 발광했다. 그분의 말이 옳았다.

혼주 미모가 어떠하든 간에 연두색은 아니 될 성싶다.



#3

조용하고 한적한 도서관, 여기서는 전화도 받을 수 없다. 그걸 모르고 전화를 받는 아저씨라도 있다면 어디선가 사서 선생님이 쏜살같이 나타나 동그랗고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통화는 밖에서 해주세요!”하며 친절한 단속을 당할 테다.

그런 와중에 전화 통화 소리보다 더 거슬리는 소리가 있다. 이건 단속하기도 좀 그런 것이다.

“직 직 직 직 직 직 직 직 직 직”

이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면서 그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이건 그 사람이 걸을 때 슬리퍼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다.


한 번 그쪽을 쳐다본다. 그럼 그렇지. 그 사람을 의식하게 된 건 저 슬리퍼 소리지만 솔직히 그의 외모 또한 예사롭지는 않다. 어림해서 나이는 40대 초 중반, 키는 대충 175㎝ 정도, 퉁퉁한 얼굴에 퉁퉁한 몸맨데 머리가 긴지 올백으로 넘겨 뒤통수 중간에 똥머리로 묶었다. 머리가 굉장히 오일리하다. 안경을 꼈고 얼굴은 하얗고 여드름이 많다. 떡 두꺼비 같은 인상이다. 그는 볼 때마다 같은 옷인지 다른 옷인지 모를 검은색 츄리닝으로 상하를 맞춰 입고 한 손에는 늘 핸드폰을 든 채 그 핸드폰 화면만을 응시하면서 이동한다. 걸을 때마다 나는 저 소리가 유난스럽고 시끄럽기만 한데, 정작 본인 귀에는 안 들리는지 자기 걸음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지금, 이상하리만치 그의 행색을 꿰뚫고 있는 내가 상당히 당황스럽기도 한데…!)


그는 딱 봐도 게으르고 지저분한 냄새가 풍길 것만 같다. 언젠가 도서관 오픈 시간 전에 온 적이 있는데 그는 도서관 입구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제일 먼저 입장했더랬다. 게으른 건 아닌가 보다 했다. 문득 그는 여기 도서관에 일하러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매일 9시 도서관에 출근하여 2층 열람실 맨 구석에 가장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고 자기 노트북을 켠다. 혹시 웹툰 작가나 웹 소설가는 아닐까? 뭔가 은밀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펼칠 것 같다. 아주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닐 것이다. 못해도 생계유지는 하겠지….

그렇다면, 컨디션이 나보다 나은 사람인데!

어쩌면 나의 ‘워너비’일지도!

갑자기 나는 그가 부러워진다.

분위기상 결혼도 못한 싱글일 것 같지만, 또 모르지…. 집에 토끼 같은 처자식을 먹여 살릴지, 그건 아무도 모르지.

나는 그저 저 슬리퍼 끄는 소리만 좀, 조심해 달라고 청하고 싶을 뿐.




수요일 연재
이전 11화점점 모르게 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