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모르게 되었다 (2)

사춘기 딸과 갱년기 문턱에 선 엄마

by 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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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더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딸에게 내가 여전히 닮고 배우고 싶은 사람일까? 의심하게 된다. 요즘 딸이 나를 보는 눈빛이 예전과 같지 않다. 뭔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딸은 한창 사춘기를 통과 중이다. 굳게 닫혀 잠근 문 넘어 딸이 무얼 하는지 나는 몹시 궁금하다. 딸이 좋아하는 과일을 준비해 방문을 똑똑 두드린다. 기다린다. 드디어 열린다. 아주 살짝. 빼꼼히 얼굴만 내민다. 방 안에 섬유탈취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과일을 건넨다. 그걸 받는다. “땡큐요” 한 마디는 짧고 정이 없다. 잽싸게 문이 닫히는 걸 본다. 이렇게라도 다가가려는 나를 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문 앞에 선 엄마는 초라해진다.


딸은 가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 되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혐오의 눈빛일까. 딸에게 씻고 정리하기를 강요할 때마다 그렇지 못한 나를 고발하고 싶은 걸까. 나 역시 씻고 정리하는 것은 매우 귀찮고 하기 싫은 일들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렇다고 너한테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되잖아’ ‘엄마는 네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어’ 했던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날마다 머리를 감지 않는 엄마를 보면 알 것이다. 지저분하게 찌든 때가 낀 가스레인지 주변을 보면 알 것이다. 너저분하게 어질러있는 세탁실을 보면 알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말로만 번드르르하게 자기를 가르치려고 드는지를. 딸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테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내가 작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딸이 엄마에게 배우고 닮고 싶어 한다는 부분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열심히 도서관에 다니고 아침 일찍 운동하며 틈나는 대로 영어 공부도 한다. 동생과 갈등이 일 때도 나름 공정한 편이다. 누나로서 역할과 자질 삼아 양보나 배려를 강요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엄마의 모습은 그대로다.


분명한 건 딸이 나를 좋은 눈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했을 땐 나 역시 나를 좋게 생각했다. 뒤늦게라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찾고 그것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하는 내 모습이 미더웠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로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게 그저 버겁고 힘들게 느껴진다. 도전하기 전에 품을 수 있었던 기대는 사그라지고 체념하게 되었다. 결과가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 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만이 내게 남았다. 그건 나를 무척 지치게 하고 있다. 더 이상 꾸준히 노력하는 것만으로 스스로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 내가 처한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불행히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온해 보이는 내 삶에 무언가 빠져있음을 나는 서서히 각성하기 시작했다.


변한 건 나였다.

겉이 아니라, 속이 변했다.

달라진 딸의 눈빛 또한 내가 아니라

자신의 것일 테다.

결국 나는 딸의 삐딱한 눈빛을 빌려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거다.






대체 내 삶에 빠져있는 건 무엇일까. 나는 왜 이대로 만족할 수 없는 걸까. 왜 더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결혼도 하지 말고 애도 낳지 말고 그냥

너희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전에 <결혼의 최소 조건>이란 글을 쓴 적 있다. 양귀자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에게 보내는 편지글이었다. 안진진이 두 남자를 사이에 두고 누구와 결혼할지 저울질하는 대목에서 어떤 사람이 결혼 상대자로서 마땅한지 조언을 담았다. 서른 살 아무 생각 없이 결혼했던 내가 아이를 낳고 마흔을 넘겨 그제야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삶의 많은 선택지 중 결혼을 택한 안진진을 난 응원 했다. 인생에 있어 결혼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거라며 못 박아뒀다.


작년엔 <운명 같은 아이, 선물 같은 아이>라는 제목으로 자그마치 세 편의 글을 3주간 브런치에 발행했다. 아이가 자신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로서 나를 초월하게 만들며, 아이가 아니라면 평생 그런 존재를 만나지 못할 거라고 썼다. 그러면서 결혼을 추천하기도 했다. 두 아이를 통해 겨우 자아를 찾게 된 나의 경험을 담았다. 결과적으로 두 글 모두 결혼과 출산을 장려한 에세이가 되었다. 마치 개콘의 ‘출산드라’가 되어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랬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육아하며 전업주부의 삶을 자처했다. 그걸 숙명처럼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그 당시 그 외의 다른 선택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의 폭력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두 글 모두 부정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만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소신은 확고했고, 그렇기에 쓸 수 있었다. 나의 소신은 여전하다. 변하지 않았다. 다만 현재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고 있자니, 잘 모르겠다는 거다. 점점 더 모르겠다는 거다. 이 모름은 어쩌면 나의 시야가 확장된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거북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을 영상을 통해 알게 됐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랑 닮은 구석이 참 많은, 느리고 느린 사람이었다. 한데, 명백히 나와 다른 지점이 있었다. 바로 내 삶에는 없는 것, 빠져있는 것. 그에게는 많은 이력이 있었다. 기계공학을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 독일로 유학 생활, 번역가 일, 시인에 사진작가까지. 와! 처음에 든 생각은 나처럼 저렇게 느린 사람이 어떻게 저 많은 걸 다 할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 곧이어 든 생각은 그는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매진하며 살았다는 거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다. 서희 할머니 말대로 딱 그런 사람이었다.


만약 내 인생에 결혼과 아이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한 계기가 되었다. 15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다. 글쓰기 시작한 지 2년 반이 지난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난 무엇을 했나. 그가 수많은 이력을 쌓는 동안 나는 결혼했고 살림했고 가족들과 복작거렸고 아이를 둘 낳았고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거기에 다 쏟아부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커리어를 쌓아 ‘누군가’가 되었고, 나는 경단녀 전업주부가 되었으며 남편과 아이 둘 가족이 곁에 있다. 당연히 가족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고 바꿀 수도 없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어쩔 수 없이 내 몫으로 남는가 보다. 먼 미래에 그 느림보도 아이 하나 없는 자기 삶을 돌아볼 날이 올까? 내가 보기에 그는 연인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소위 ‘잘 나가는 인생’으로 행복하기만 한데 말이다.


그러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점점 모르게 된다. 서희 할머님 말씀이 참인지, 아닌지를.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연습도 없다. 그저 자기가 택하는 인생만 살 뿐인 거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지쳐 결혼하고 아이를 먼저 위하는 이 삶이 미덥지 못할 수 있다. 작년에 그랬듯 또 언젠가는 결혼하고 아이를 둔 이 삶을 더없이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회상할지 모른다. 다만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알 수 없는 내 인생이 결국엔 ‘잘 살았다’ ‘행복한 삶이었다’ 하는 쪽으로 마무르기를!





서희 할머니는 자신의 지난 삶을 후회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나처럼 살아 보지 못한 인생에 대한 미련인 걸까. 진실로 손녀가 결혼도 출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만 위하는 삶을 선택하기를 원하는 걸까.


서희 할머니에게 물었다.

“제 딸이 뭐라고 대답하던가요?”

서희 할머니는 흡족한 듯 웃으며,

“결혼 안 한다고 하던데!”

나도 모르게 싱거운 반응을 보였다.

“딸한테 할머니가 꼭 지켜본다고 했어. 결혼하는지 안 하는지, 허허허.”


아무려나, 지켜봐야 알지. 살아봐야 알지.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는….


솔직히, 살아봐도 잘 모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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