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모르게 되었다 (1)

by 시 선


이른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서희 할머니였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서희는 딸의 친구다. 둘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단짝이었으니 거의 8년 지기다. 서희는 엄마가 워킹맘이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외할머니가 돌봤다. 학교 정문 앞에서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나는 서희 할머니와 자주 마주쳤다. 두 아이를 놀리느라 공원 벤치나 카페 같은 곳에 나란히 앉아 있기도 했다. 꺄아 꺄아 활기차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주로 내가 질문을 던지면 서희 할머니는 대답하는 쪽이었는데, 서희 할머니는 왠지 신나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그걸 듣는 게 싫지 않았다. 재밌기도 했다. 내가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희 할머니가 편했다. 정작 서희한테는 깐깐하고 엄한 할머니였는데 말이다. 서희 할머니는 피부가 무척 하얗고 고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늘 단정하게 차려입었고, 태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젊은 날 세상을 한 번쯤 휘어잡았을 것 같은 카리스마를 풍겼다.


“애가 방금 집 나섰어요! 저녁 먹고 가라고 했는데, 밖이 어두워져서 걱정돼서 전화했어요.”

“아, 네, 할머님, 딸은 이제 커서 밤에도 잘 다녀요.”

“그래도 계집애들이 캄캄한데, 밖에 다니는 건 위험해!”

“네, 그렇기는 하죠.”

“애들 아무 때나 놀러 오라고 했어요. 요즘 애들 돈만 쓰지, 갈 때도 없잖아.”

“맞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기 손녀 대하듯 딸을 아껴주는 서희 할머니에게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자, 현관문이 열렸다. 딸아이가 돌아왔다.




이제 와 내가 며칠 전 있었던 서희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어떤 말이 자꾸 뇌리에 맴돌기 때문인데…,


그건 서희 할머니가,

“딸이랑 서희한테 결혼 같은 건

안 해도 된다고 말했어!

너희들 엄마 사는 것 좀 봐라!

결혼도 하지 말고 애도 낳지 말고,

그냥 너희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했다는 거다.

이제 겨우 15살 된 소녀들에게…, 하긴 그럴 수 있다. 요즘 세상엔 누구나 그런 말들을 종종 하게 된다. 그 말이 그렇게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그때 난 허허 웃으며,


“어머! 참 교육!!! 할머님,

아이들한테 참교육하셨네요!”라고 했는데,


그렇다. 바로 이 말이 문제다. 내가 ‘참 교육’이라고 했던 말. 그땐 분명히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를 맞춰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름 유머러스하게! 한마디로 익살을 떨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거다.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는 거다.




‘너희 엄마들 사는 것 좀 봐라!’


특히나 이 말은 메아리처럼 되살아나 '너희 엄마들'(그러니까 서희 엄마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엄마들의 지난한 삶을 전제하는 말이었다. 엄마들의 삶은 힘든 것이어야 했다. 서희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며 남편은 같은 학교 다니는 체육 선생님으로 나이 차가 꽤 있는 걸로 안다. 외동딸인 서희는 중학교 첫 기말고사를 평균 99.3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냈고 앞으로 서울대가 목표라고 들었다. 서희 엄마도 엄마를 닮아 도자기처럼 하얗고 뽀얀 피부가 귀티가 나고 동안인 외모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매력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의 삶은 참으로 평탄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딸의 엄마 난 어떤가?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이 역시 잘 모르지만, 난 14년 차 전업주부로 5살 터울인 두 남매를 뒀다. 남편과는 동갑내기며 대학교 커플로 시작해 8년 연애 끝에 16년 차 결혼생활에 접어들었다. 남편은 경제활동을 하고 나는 집안일과 육아를 맡은 전형적인 보수적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딸은 작년에 학교에서 나눠준 설문지에 ‘배우고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아이돌도 아니고 좋아하는 유튜버도 아니고, 다름 아닌 ‘엄마’라고 적어 냈다. 이유도 분명했다. 매사에 열심히 하고 공정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걸 보자 약간은 쑥스러워져 (어쩌면 가슴이 벅찼는지도!)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딸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서 실로 눈물 나게 기뻤다. 내 삶에 자신감을 가졌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하던 일을 관두고 바로경력 단절녀가 되었어도, 나는 엄마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오랜 숙고 끝에 비로소 깨달은 건 자기 삶에 책임지고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어 주는 것이 좋은 엄마의 표상이자 내 삶의 동력이 되었다. 그때까지 만해도 난 성공했다고 믿었다. 내 삶을 자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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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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