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는 손 큰 여자가 산다. 그 덕에 배가 부른 건 바로 옆집 여자인 나와 우리 식구들이다. 딱 먹을 만큼만 만들고, 뭔가 쟁여두는 것이 별로인 나와는 달리, 옆집에 사는 여자는 뭘 해도 손이 큰 모양이다. 음식을 해도 푸지게 해 “많아서요” 하면서 한 그릇 담아 초인종을 누르고, 코스트코 단골답게 뭘 사도 박스째 사두고는 또 "많아서요" 하면서 쓰기 좋게 소분한 것을 나눠주기도 한다.
아침 9시쯤 전화가 왔다.
“언니, 집이에요?”
“응, 이제 나가려고”
“그럼, 잠깐 냄비 들고 오세요, 지금 감자탕 끓이는데 거의 다 됐어요!”
어머! 이 시간에 감자탕을 끓이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무슨 충격적인 장면이라도 목격한 사람인 양 순간 말을 잃는 동시에, 신바람이 일었다. 얼마 전에도 옆집 여자가 감자탕을 준 적 있는데, 맵찔이 둘째 까칠이 첫째까지 우리 식구 모두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감자탕 가게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 이후 실로 오랜만에 먹어본 감자탕이었다. 감자탕이 어떤 맛인지도 잊은 참이었다. 감자탕을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결론적으로 옆집 여자가 손수 끓였다는 감자탕은 정말이지 또 먹고 싶을 정도로 최고였다. 밖에서 사 먹는 것처럼 짜거나 맵지 않고, 적당한 간에 국물 맛은 깊었으며 고기는 어찌나 부드럽던지! 보통 심심하게 집밥을 먹고사는 우리 식구들은 ‘옆집 표’ 감자탕에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나는 호들갑스럽게 “앗싸!”를 외치며 적당한 냄비를 찾아 옆집으로 건너갔다. 마침, 현관문이 열려 있다.
“나, 들어가도 되지?”
“네, 언니, 들어오세요, 정신없지만. 저희는 이러고 살아요.”
거실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을 채운 대형 텔레비전에 축구 방송을 켜 놓고 옆집 아들이 소파에 앉아 그걸 보고 있었다. 그사이 거실 한가운데는 꽃무늬 식탁보를 씌운 큰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옆집은 매달 한 번씩 집에 손님들을 불러 대접했는데, 오늘이 아마 그날이었나 보다. 오른쪽 주방으로 눈을 돌리니 옆집 여자가 한겨울에 반 팔 홈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냄비 앞에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저것이로구나! 내가 여기서 깜짝 놀라 기겁한 포인트 두 가지 중 하나는 평일 이른 아침부터 감자탕을 끓였을 이 여자와 다른 하나는 이 여자의 통만큼이나 압도적으로 큰, 시골 아궁이 위에나 얹어있을 법한 솥단지만 한 크기의 냄비 사이즈였다. 나도 모르게 그만, “헉!!!”소리가 나왔다. 별거 아니라는 듯 식탁 위에는 껍데기를 까 찐 감자가 노르스름하니 포슬포슬, 모락모락 김을 내며 산더미 쌓여 있었다.
“언니, 냄비 주세요, 많이는 못 줘요.”
하며 담아낸 나의 아담한 냄비엔 큼지막한 뼈대와 뽀얀 감자가 금방 가득 찼다.
“와! 이 정도면 우리 네 식구 충분히 먹겠다! 오예!!! 나 오늘 저녁 안 해도 된다! 잘 먹을게. 정말 고마워!”
“네, 맛있게 드세요. 언니, 잘 다녀와요.”
아침부터 이미, 끝내주는 저녁을 확보한 옆집 여자는 고이 냄비를 집에 모셔다 놓고 밖을 나섰더랬다.
모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고 보니 드는 생각은, 옆집 여자가 과연 내 이름은 알고 있을까? 내 나이는 몇 살인 줄 알고 나를 언니라고 부를까? 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누가 봐도 내가 언니라는 건 알지만 우리는 서로 나이를 튼 적이 없다. 다만 나는 이 여자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2년 전 옆집에 우리 아들과 같은 태권도장을 다니는 친구네가 이사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것을 빌미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첫인사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나는 늘 그렇듯 이름을 저장해 둔 터였다. 그러나 옆집 여자는 아마 내 이름도 모를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를 언니라고 불렀고 나는 으레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지금은 반말까지 하고 있다. 보통 내가 언니일 경우 친해지면서 먼저 ‘말 놓아도 돼요?’ 하며 예의를 차리는 편인데, 이상하리만치 이 여자에게는 무장 해제된 듯 언젠지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돼 버렸다.
더 웃긴 건 서로 나이도 모르지만, 커피 한 잔 함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사 오면서 초반에 나눴던 “다음에 커피 한 잔 해요” 하는 인사말도 이제 더는 하지 않게 됐다. 옆집이나 나나 누구 하나 먼저 적극적으로 커피 마시자고 제안하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시간을 쪼개 쓰고, 그는 그대로 직장에 다니기 바빴다. 그러다 1년 전 옆집 여자가 신장 이식술이라는 큰 수술을 하게 되면서, 커피 마시자는 구실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옆집 여자와 나 사이엔 어떤 친밀감이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제 작년 내 생일 때 옆집 여자가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주면서부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보답으로 케이크 반을 접시에 담아 옆집에 나눠줬는데, 그 접시가 쿠키와 함께 돌아왔다. 나는 다시 무언가 사 보내고 또 접시가 건너오고 그러면 빈 접시를 그냥 보내기가 서운해 또 다른 무언가를 들려 보냈다. 양이 많은 것 같으면 나눠 먹고, 살 때 하나 더 사기도 했다. 그러다 집에 맛있는 게 생기면 절로 옆집부터 생각나기에 이르렀다. 줄곧 우리는 2년을 넘게 그렇게 지내고 있다. 서로에게 일부러 시간을 낸 적은 없지만, 오가는 음식이 곧 오가는 마음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거의 잠옷 바람으로 만났다. 아이들 등굣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그랬다. 헝클어진 머리에 잠옷을 입고 초췌한 몰골을 민망해했지만, 어느샌가 그 모습을 더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금세 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의도치 않게 첫인상부터 서로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데 음식을 나눠 주고,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깍듯이 인사하는 옆집 여자가 처음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마 내 손은 옆집 여자만큼 크지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런 만큼 옆집 여자도 그러려니 하는 생각에, 나는 딱히 거부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보답하며 지냈다. 필요 이상으로 손을 건넬 때는 내 쪽에서 선을 그으며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그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덩달아 내 손도 조금은 커졌다.
옆집 여자는 평소 쾌활하고 상냥한 편이다. 말투도 그렇고 그녀의 잠옷은 언제나 명랑했다. 꼭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와 무늬가 밝은 색으로 그려진 것을 입었다.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은 애 엄마 같지 않았고, 귀여웠다. 이렇게 가까이 음식도 잘하고 명랑한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나는 마냥 좋았다.
때때로 옆집 여자는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몸이 자주 아팠다. 옆집 아들에게 물어보면 엄마는 잔다고 말할 때가 많았다. 큰 수술을 겪은 뒤 몸이 약해진 탓에, 퇴근 후 잠을 자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것 같았다. 우리는 마주 보고 커피 한 잔 안 했지만 연락은 종종 했다. 옆집 사이인 데다 두 아들이 잘 어울려 자연히 연락할 일이 생겼다. 어쩌다 전화 통화가 길어지기도 하는데, “언니, 얜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며 주로 육아 고민을 나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가슴 한구석에 있는 아직 아물지 않은 오래된 상처를 꺼내보이기도 했다. “언니, 얘도 저처럼 될까 봐 걱정이에요. 저는 제가 너무 싫어요!” 그렇게 말할 때면 너무 안쓰러워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곤 했다.
나는 점점 옆집 여자를 신경 쓰게 되었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고 안부를 물었다. 조금이라도 지쳐 보이면 위로해주고 싶었다. “언니처럼 친한 이웃은 난생처음이에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나는 그보다 더 다정한 언니가 되지 못해서 안달했다. 그녀가 건네는 호의에 뜨거운 반응을 하고 나눠 먹자며 건너온 음식은 바로 사진을 찍고 이모티콘을 달아 칭찬 카톡을 날리고, 그녀가 걱정과 고민을 터놓을 때면 언제든지 경청하고 공감하고 또 응원하려 애썼다. 그녀에게 힘을 불어 주고 싶었다. 내가 긍정 에너지를 전하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마음이 갔다.
늦은 오후, 집에 들어가려는 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낯선 여자들과 맞닥뜨렸다. 키 크고 날씬한 세련된 차림의 젊은 엄마들이었다. 그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우리 옆집에 사는 손 큰 여자였다. 그런데 그 여자이기도 한데, 아니기도 했다. 이제껏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 달라 보였다. 함께 있는 그 여자들처럼 젊고 멋스러우며 여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순 당황한 나머지 나는 이 여자가 건네는 인사말에 어영부영 손을 흔들고는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문밖에선 옆집 여자의 상냥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그 순간, 어째선지 나는 그 낯선 얼굴에 마음을 놓았다. 내가 봐오던 옆집 여자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에 안심을 했다. 그동안 나는 은근히 이 여자를 꽤 염두에 둔 모양이다. 마음이 쓰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난 그녀에게서 뭘 보고 연민을 품었던 걸까. 설마 그건 다… 내 것이었을까…!
사실 알고 보면 옆집 여자는 나보다 더 잘살고 있었다. 열심히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두 아들을 예민하게 살피고, 다양한 교육기관에 보내며, 신앙생활도 꾸준히 하면서 친목 모임도 가졌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남편을 매우 사랑했다. 언젠가 아파트 야시장에서 마주친 옆집 여자는 신혼부부처럼 남편의 팔짱을 꼭 낀 채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때 그녀는 순전히 행복해 보였다.
아무렴, 아침부터 감자탕 끓이는 여자는 예사롭지 않다. 그녀가 매달 그렇게 음식에 힘을 쏟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결국 인정하고 만다. 나는 곧 죽어도 그렇게 못한다. 그런 건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손이 크다는 건 그런 거였다.
저녁을 준비하는 찰나 전화가 왔다.
“언니, 저 뼈 네 대만 주세요”
“응? 뭐라고?”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감자탕 뼈 네 대가 필요해요.”
“아! 아침에 준 거??? 혹시, 지금 준 거 도로 뺏는 거 맞지?”
나는 실로 황당했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을 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지금 필요해서요.”
“응! 알았어! 아까 준 냄비 그대로 들고나갈게, 문 앞에서 만나자.”
이유야 궁금했지만 그걸 물어보는 건 꼭 염치없는 행동 같아서 우선 말을 거두고 전화부터 끊었다. 나는 냄비를 들고 옆집 여자는 국자와 그릇을 들고 대면했다. 오늘 만해도 벌써 세 번째다.
“아, 남편이 갑자기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해서요. 언니네 주고 손님들이랑 다 먹었거든요. 죄송해요!”
하며 뼈 세 대를 집었다. 필요하면 더 가져가도 된다고 거듭 권해도 그녀는 극구 사양하며 뼈 세 데만 챙겼다.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우리는 쩔쩔맸다. 누군가 그 장면을 영상화한다면 분명히 우리의 등 뒤와 머리 위로 땀방울을 삐질삐질 흐르게 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 할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아침에 신나서 감자탕을 받아 왔던, 조금도 거절하지 않았던 내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스치게 할 것이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히고 얼굴이 홧홧거렸다.
감자탕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켜는데 또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옆집 여자다.
“언니, 생각해 보니까 너무 미안해서요.
이거 딸기라도 드세요.”
“아니야…,
괜찮아…,
이러지 마… ,
주지 마…,
자꾸 이러면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나는 벽에 기댄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인 건지. 애초에 내가 감자탕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된다.
옆집 여자가 돌아가고 아들과 딸기를 먹어 치우며 나는 빈 접시를 떠올린다.
딸기를 입에 물고 뭐가 있으려나 냉장고 안을 뒤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