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보다 좋은 일!

by 시 선


도서관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사람, 별게 다 웃긴 사람, 그래서 내가 뭘 해도 까르륵 웃어 주는 사람, 도통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 사람.


도서관 입장과 동시에 나는 입구 좌측에 있는 안내 데스크를 살핀다. 그 사람이 있는지를 본다. 월요일이 휴관 일인 여기 도서관 사람들은 화요일이면 월요일처럼 다들 바삐 움직이는데 오늘 그 사람은 거기 없다. 그 사람은 주로 2층 열람실 데스크에서 근무를 한다. 전에 1층에서 일하다가 앞으로 2층에서 일하게 됐다며 무척 반가운 소식인 양 내게 전했다.


2층 열람실에 올라가니 정면으로 데스크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초집중하고 있는 그 사람이 보인다. 역시 화요일은 바쁜 거야. 바로 옆에 내가 애용하는 컴퓨터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봤지만, 나는 그곳을 지나쳐 그 사람에게 간다. 그런 나를 알아보고는 그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흔들며 환대한다. 나는 지금 가장 반가운 소식을 그 사람에게 알린다.

“드디어 개학했어요!!!”


“네? 진짜요??? 개학했어요???

정말요? 와!!! 정말 너무 축하드려요!!!”

그 사람이 물개박수를 치며 콩콩 뛴다. 꼭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어라? 좀 이상한데! 뭔가 과하다. 지나치다 싶다.


원체 리액션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게 이럴 일인가? 이 정도로 흥분할 만한 일인가? 이렇게까지 축하할 일인가? 물론 나 같은 보통 엄마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아이의 개학 소식에 그토록 기뻐할 일인가 싶은 거다.

어찌 됐든 열렬한 축하를 받고 자리를 잡는데 불현듯 감이 온다. 다시 그 사람에게 갔다.

“어머! 미안해요!

'계약' 아니고 ‘개학’했어요!!!

아이들 개학이요!”


아이들이란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아! 벙찐 표정으로 뒤로 한 발 물러나더니 그제야 알았는지 고개를 연실 끄덕이면서 웃겨 죽겠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별수 없이 나도 따라 웃었다. 우린 서로 말없이 웃고 있었다.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짐을 풀고 도로 그 사람에게 다가가,

그런데, 이것도 진짜 좋아요! 고마워요!”

했다.


애써 마음을 달랜다.


생각해 보면 좋은 일이 어디 개학뿐일까. 오늘은 둘째 꼬맹이의 생일날이다. 어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신나는 생일 파티를 치러 냈고 아침엔 우리 네 식구 모두 모여 미역국을 먹으며 꼬맹이 생일을 기념했다. 까칠한 사춘기 딸아이도 현관문을 나서면서 동생에게 "생일 축하해" 한 마디를 남겼다. 내가 꼬맹이를 축하해 주는 것보다 딸이 축하해 주는 것에, 나는 왜 더 들뜨던지! 그뿐일까. 오늘이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인 옆집 엄마에게는 잘 다녀오라며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또 옆 동에 사는 친한 동생과는 내일부터 함께 새벽 운동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제 새롭게 태어나자며 서로를 한껏 응원했더랬다.


아무렴, 좋고 말고!


게다가 도서관 오는 길은 얼마나 좋았게!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새로 넣었더니 어찌나 가볍고 시원하게 달려왔던지! 단골 카페에서 내린 커피는 또 얼마나 맛있을지!


그런데!


그 사람이 개학을 계약이라고 알아들은 것처럼, 실제로 내가 출간 계약을 했더라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솔직히 상상은 잘 안 가지만, 모르긴 몰라도 아까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콩콩 뛰고 눈알이 튀어나오겠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진장 기뻐하겠지. 혹시 그 사람은 나의 출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실망했으려나, 기대에 못 미친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쓰인다. 줄곧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우리는 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가끔씩 점심을 함께 하기도 한다. 소녀 같은 그 사람은 밥을 먹을 때도 수줍음을 탄다. 앞에 내가 있어서 미안해질 만큼. 그래도 내가 앞에 있어도 될 만큼. 그게 불편하지는 않다. 그냥 그 사람 자체의 성향이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며 나는 그 사람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올해도 우리 다정하게 지내요!”


사실 우리에겐 딱히 공유할 만한 무언가가 없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우린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을 서로 공유할 뿐이다. 그저 그 느낌에 기대고 있다. 잘 모르지만, 내가 받아들여지는 느낌, 나의 그 어떤 이야기도 들어줄 것 같은 느낌, 헤아려 줄 것 같은 느낌. 이게 다 무슨 느낌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에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 사람은 오늘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알 없는 안경 뒤로 큰 눈은 더 거대해졌다.

“무슨 일 있어요?”

“어제 <왕과 사는 남자> 영화 보고 펑펑 울었어요!”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나도 예전엔 그랬는데. 영화 본 다음 날 눈이 안 떠질 만큼 울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자주, 훨씬, 종종 눈물을 훔치게 되지만 그 정도로 울지는 않는다. 금세 내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그게 아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한데, 그 사람의 부은 두 눈은 참으로 예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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