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진로

by 시 선

차례 음식을 마친 여자들이 식탁에 모였다. 명절마다 어김없이 치러지는 네다섯 시간의 고된 노동이 끝난 직후였다. 이제는 거의 자동으로 각자 맡은 일들을 한다—전을 부치고, 나물을 하고, 편육을 삶고 설거지와 뒷정리까지—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달한 믹스 커피 6잔을 타 거실에 있는 남자들에게도 나눠준 뒤, 세 여자는 비로소 자리에 앉았다.


늘 그렇듯, 요양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가 먼저 입을 뗐다.

“전 나중에 가정 돌봄 지도사나 할까 봐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힘을 덜 들이는 일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학교나 기관에서 하는 돌봄 같은 거야?”

“네, 이건 집으로 방문해서 아이들을 돌봐 주는 거예요. 정말 별일이 없어요. 애만 봐주면 되거든요. 우리 애도 방학 때 쓰는데, 애 몇 시까지 학원 보내고 퇴근하시면 돼요, 이런 식이에요.”

“차라리 학교 돌봄 교사는 어때?”

10년 넘게 집에서 아이 둘을 돌보던 전업주부 여자는 어느 집엔가 들어가서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그 직업에 절로 거부감이 든다. 전에 둘째 어린이집 원장이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며 보육교사를 권했을 때도 그랬다. 더 이상 아이들 똥 기저귀 갈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챗지피티를 켜 학교 돌봄 교사나 방과 후 교사가 되는 방법을 물어본다.

“특별한 자격증은 필요 없데, 관련 전공자나 교원자격증 소지자, 관련 자격증은 우대사항이래, 필수는 아니지만 있으면 유리하다는 거지.”

정작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여자가 남의 얘기하듯 전한다. 여자도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어떤 준비 과정이 필요할 것이므로 그 시간을 뺄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저 가까운 동네 영어학원에서 알바나 할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혜원이는 요양 보호사나 따는 게 어떻겠니? 네 시아버지가 나보고 자꾸 따라고 하더라.”

옆에 요양 병원 여자도 그게 꿀 보직이라며 맞장구를 친다. 사실 시어머니가 혜원에게 요양 보호사를 권하는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진작에 둘째가 크면서 몇 년 전부터 권했던 자격증이었다. 그때마다 혜원은 말끝을 흐렸다. ‘한번 생각해 볼게요’하고 마무리를 짓곤 했다.

“그래서 어머님 따시게요?”

이번엔 혜원이 되물었지만, 시어머니는 대답이 없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 굳이 자격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일이 본인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혜원은 고개를 돌려 거실에 두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훌라를 치는 시아버지에게 청한다.

“아버님, 이제 고스톱 치시면 어때요? 어머님도 함께 치시면 좋잖아요.”

시아버지 또한 대답이 없다. 혜원은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까? 영어학원에서 알바할 수는 있는 걸까?’ 한 달 전 동네 학원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아무 연락도 없었던 일이 떠올랐다. 옆에 동서가 말하기를 요즘엔 초등영어 강사도 원어민처럼 유창해야 한다고 하니 점점 자신감도 떨어진다.


그리고 보니 지난번에도 이런 비슷한 자리가 있었다. 그때도 여자 셋이 이 식탁에 모여 앉았다. 단지 옆에 요양 병원 여자가 아니라, 전직 간호장교였던 현직 중학교 보건 교사 여자가 함께였다는 것이 달랐다. 그 여자는 혜원에게 간호조무사를 권했었다.

“혜원이는 인성이 되니까 그런 일이 잘 맞을 거 같아.”

그러니까 인성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 여자는 평소 온순하고 착해 보이는 혜원의 성품을 높이 산 것이 분명했다.

네, 한번 생각해 볼게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혜원은 알고 있었다. 그 직종은 두 번 다시 생각지 않을 것이고 관심도 없거니와 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그 순간 돌연, 혜원이 대담하게 자기 얘기를 한다.

“어머님,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어요! 저는 그걸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매일매일 노력하는 중이에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당장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잘될 거라고 확실한 보장도 없지만, 저는 꿈이 있어요! 그 꿈을 위해서 다른 데 쓸 시간이 없어요, 뒤늦게 시작한 데다, 지금도 시간이 한참 부족한걸요!”


그렇게 혜원은 속으로만 외쳤다. 드러낼 순 없었다. 왠지 부끄러웠다. 어떻게든 돈벌이하고 있는 이 여자들 앞에서 14년 차 주부인 혜원이 이루려는 꿈은 너무도 사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중 두 여자는 혜원의 꿈을 얼핏 알고 있을 텐데 그에 대한 언급은 일 채 없었다.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 될 리 없다고 일찌감치 판단한 걸까. 아니면 혜원이 벌써 포기한 것으로 지레 짐작한 걸까. 그리하여 혜원의 과거 이력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관심사와도 동떨어진 직종을 인성과 적성을 이유로 자꾸 권유하려는 걸까?


그도 그럴 만한 게 혜원은 두 달 전부터 스무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있으나, 아직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또 언제까지 이렇게 투고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녀 역시 자신의 꿈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터놓고 말할 수 없었다.


솔직하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혜원은 생각해 보겠다며 말을 맺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 믿었고 자신의 진로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혜원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쏙 빠진 대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잘 모르면서 하는 예의와 형식만 갖춘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은 시간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혜원은 틈틈이 그 시간을 곱씹었다. 자신은 왜 주위에서 권하는 그 직종들이 그렇게나 마음에 안 드는지, 왜 절로 거부감이 드는 건지, 진저리가 나는 건지.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잡지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했다.

“감정 노동이라는 용어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가 《관리된 마음》이라는 획기적인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최근 들어서는 주로 여성이 짊어지는 모든 유형의 정신적 부담을 통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혹실드는 표면상 소관 업무가 아니지만, 심리적 노력이 요구되고 진가를 인정받기 어려운 무임금 무보수 노동을 특별히 감정 노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순응적이고 공손하며 미소를 짓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고객이 느닷없이 무례하게 굴어도 참아야 했다. 예를 들어, 간호사는 한 시간에 열다섯 장씩 침대보를 갈고, 배변기를 비우고, 열두 명의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동안 고맙다는 인사를 못 들어도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

(마리나 벤저민,『인정받을 곳 없는 감정 노동』)

혜원은 생각한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적어도 돈벌이가 되었다는 것을.


또한, 자신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당연시되고 스스로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그 모든 성역할은 감정 노동의 표상이었음을 모를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주부의 일은 정식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며(마르크스주의에서 규정한 '사용 가치'가 없어서), 결정적으로 금전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돈벌이가 되지 못했다.


다른 가족들이 돈벌이로 자신을 내세울 때 혜원은 저만치 물러나 돈벌이하는 그들을 찬양하고 추켜세웠다. 자신이 하는 일은 좀처럼 인식되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러나 분명히 자신이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나름 믿으면서 참고, 버티고 기다리며 힘써왔지만, 그 누구도 전업 주부의 일은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되려 남편 잘 만나 집에서 편하게 애들만 키우며 산다고, ‘너는 참 복도 많다는 소리’를 거듭 들을 뿐이었다. 혜원은 내심 석연치 않았지만, 뭐라 대꾸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선택했으므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 북돋우면서 만족하려 애썼다. 혜원은 줄곧 그렇게 ‘제 일’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였다!


앞으로 돈벌이마저 ‘항상 친절해야 하고 이해심과 공감력을 발휘하며 자신을 혹사’시켜야 하는, 감정 노동을 주로 요구하는 그 어떤 종류의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똥 기저귀 갈기 싫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감정 노동은 이미 가정 안에서 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미경이 아버지, 카드 그만하고 이제 고스톱 쳐요, 나도 같이하게!”

시어머니가 세 번째로 청했다.

“에잇! 잇 싸람이!!!”

시아버지의 고함에 여자들이 놀란다. 아니 놀란 척한다. 그는 두 아들을 이기고, 이기는 재미를 맛보고 싶었건만 눈치 없는 큰아들이 계속 아버지의 돈을 따고 선도 놓지 않았기에 잔뜩 화가 난듯했다. 세 여자가 일제히 큰아들을 쏘아보자, 큰아들은 멋쩍은 듯 말했다. “난 뭐, 한 거 없어” 여자들은 알았다. 그게 문제였다. 결국 시아버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가 서너 장 정도 더 나오고 나서야 카드 게임은 끝났고, 시어머니가 고스톱판에 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며느리에게는 자유 시간이 찾아왔다.


이제 아이들의 긴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혜원이 알바 앱을 연다. 아까 커피에 곁들었던 고구마 전이 목에 콱 막힌 듯 답답함을 느꼈다. 아이스 식혜 한 잔을 냅다 들이켰다. 머릿속이 얼어붙을 것처럼 시원하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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