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를 읽고
이것은 어느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인 소년이 남들과 다르다는 데 있다. 남들이 아이에서 소년을 거처 어른이 되는 것이 성장이라면 소년의 것은 괴물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알렉시티 마아, 감정 표현 불능증이 있다.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것이 그 원인인데 바로 여기서 이 소설의 제목이 등장한다. 소년은 말한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손원평, 《아몬드》, 29쪽)
그러니까 제목, 아몬드는 편도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목이 되기에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식탁 위엔 삼시 세끼 아몬드가 올랐다. 피할 길은 없었다. 그러므로 먹는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 엄마는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내 머릿속의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했다. 그게 엄마가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였다."
(손원평, 《아몬드》, 28쪽)
그렇다. 아몬드는 이 모든 것을 상징한다. 문제의 편도체로부터 피할 길 없었던 자신에 대한 직시, 끼니처럼 건네받았던 엄마의 지극 정성과 사랑 그리고 희망 전부를 포함한다. 그제야 나는 아몬드 이상 더 좋은 제목은 없겠다고 완전히 납득했다.
소년은 그저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일까. 그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흔한 자격지심도 자기 연민도 없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초연할 뿐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소년의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이 목소리야말로 이야기 자체이기도 하다. 감히 이런 목소리를 지닐 수 있었기에 이 이야기는 가능해진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해내는 일 말이다.
소년 곁에는 엄마와 할머니가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할 수 있었다. 그건 엄마가 건네주는 아몬드를 버리지 않고 받아먹었던 것이나 할머니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애칭으로 받아들인 것과 같다. 스스로를 피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 힘이 그의 성장에 뿌리가 되었다면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은 새싹을 틔우게 했을 거였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분이다. "
(손원평, 《아몬드》, 171쪽)
두 사람은 끝까지 소년을 놓지 않았고 지켜줬다. 그러나 소년이 진정 성장하게 된 계기는 엄마와 할머니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이후다. 돌이킬 수 없는 참극에 휘말려 절망하고 좌절하는 대신 소년은 '살아남아야 했다'라며 강한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더 이상 보호막이 없기에 소년은 자신의 의지를 믿고 세상으로 점점 나아간다. 도전한다.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곤이가 필요했다."
소년의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괴물이 있다. 소년의 친구가 되는 곤이.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가엾은 아이.
소설의 포커스는 당연히 소년의 성장에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곤이가 그렇게나 괴롭히던 소년을 자꾸 찾아갔던 이유를 말할 때였다. 곤이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입을 뗐다.
"어땠어? 그 여자."
질문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너 만나 봤잖아. 한 번 뿐이지만.
기억을 되짚었다. 꽃으로 가득한 방과 회색빛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얼굴 안에 담겨 있던 곤이의 모습도.
-너랑 닮았어.
-사진 봐도 난 모르겠던데.
곤이가 쳇,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또 묻는다.
-어디가 닮았는데?"
(손원평, 《아몬드》, 169쪽)
소년은 곤이 대신 곤이 엄마의 임종을 지켜봤다. 비뚤어진 생각과 비행을 일삼는 곤이에게도 가장 궁금했던 건 엄마라는 존재였다. 그게 사무치도록 가슴이 아팠다. '어땠어? 그 여자'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덜컹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소년을 자꾸 찾아오던 곤이가 늘 그 질문을 자기 가슴에 품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 내가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까, 이상하리만치 미안함을 느꼈다. 소년에게 감정이나 두려움을 못 느끼는 게 어떤 건지 자주 묻고 또 물었던 곤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짓눌려 그토록 두렵고 무서웠나 보다. 그래서 스스로 강해지기를 원했었나 보다. 그러다 비극을 자처했나 보다.
"피가 튄다. 할멈의 피다. 눈앞이 붉어진다. 할멈은 아팠을까. 지금의 나처럼. 그러면서도 그 아픔을 겪는 게 내가 아니고 자신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손원평, 《아몬드》, 247쪽)
그렇게 소년은 자기 방식으로 곤이에게 세상에게 다가간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
(손원평, 《아몬드》, 244쪽)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바로 위 발췌문에 있을 것이다. 소년의 말이 맞다. 느끼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것은 진짜가 아닐 수 있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나는 소년에게 변명하고 싶어진다. 나 역시 그 대부분의 사람들 중 하나니까.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행동하지 못했을 테니까.
누구든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힌다면 쉽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시하는 게 있다면 그걸 이겨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걸 사랑 아니면 용기라고 부른다. 할머니가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괴한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은 행동은 바로 그런 것이다. 소년 역시 곤이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진 것과도 같다. 그렇기에 그 순간 소년은 할머니의 행동을 떠올린다. 그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가슴이 뇌를 깨운다. 아몬드에 불을 밝힌다.
우리가 누군가의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서도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건 살아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소년이 엄마와 할머니를 잃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소년, 윤재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살기 위해 행동하지 못했던 거라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너 또한 앞으로 다시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 처한다면 도망가고 피하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모두에게 사랑과 용기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네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 자기 몫의 삶과 사랑을 지고, 지키고 수호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그게 우리에게 아몬드가 필요한 이유라고. 그것도 진짜라고. 너에게 얘기해주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