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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효(孝)

엄마의 얼굴에서 고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by 시 선

"딸아, 할머니 생신 선물 준비했니?"


어머님 생신이 곧 다가온다. 이번 주말, 온 가족이 춘천 시부모님 댁에 모이기로 했다. 시댁에선 이렇게 매년 부모님 생신 때마다 전 주말에 삼 남매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 자리를 마련한다. 며느리들이 정성껏 차린 음식을 대접하고, 케이크에 초를 켜며 노래를 부르고 두 부모님과 손자 손녀들은 다정하게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생신선물을 드리는데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건만 마치 공식적인 행사가 된 지 오래다. 남편은 지금 딸과 아들에게 그때 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묻고 있다. 지난주부터 벌써 여러 차례 확인하던 참이다. 그가 어머님 생신에 그토록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속엔 괜스레 서운함이 일렁인다.


"장모님 생신은 관심도 없더니, 어머님 생신은 꽤 챙기네!"


공연한 말을 한다. 나도 안다. 딸의 말대로 그는 자기 엄마니까 더 챙기는 거다. 그게 당연한 거다.




우리 엄마 생신은 음력 1월 10일이다. 친정 식구들은 엄마의 생신에 따로 모이지 않고 음력 설날 1월 1일 친정에 모여 엄마 혼자서 며칠간 준비한 음식을 되려 대접받고,

케이크 하나로 간단하게 축하 자리를 마련한다. 엄마 칠순 때를 제외하곤 늘 설날 방문으로 생신 축하를 대신했기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친할머니 생신과 달리 그 특별함이 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 역시 설날을 앞두고 엄마의 생신 준비보다는 명절 전 증후군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다. 또 시댁에서 차례를 지낸 후 친정에 방문하게 되니 나는 항상 기진맥진한 상태로 도착하게 되고, 가는 길에 겨우 케이크만 사들고 가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 번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시부모님 생신과 달리 우리 엄마 생신은 소홀히 대하게 된다.


시부모님께는 생신 때마다 따로 찾아뵙고 음식과 미역국을 직접 준비하면서도, 친정엄마께는 그러지 못했다. 시집온 후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려 단 한 번 엄마 생신에 직접 불고기를 재고 미역국을 끓여드린 바 있다. 딸인 내가 이런데 어찌 내 아이들이, 내 남편이 우리 엄마를 신경 쓰기를 바랄 수 있을까.


내가 아까 그에게 내뱉은 말은 과연 그를 향한 것일까, 나 자신을 향한 것일까.


솔직히 나는 불효녀다. 시댁과 친정에 대한 태도 차이는 우리나라 며느리들에게 있어 흔한 일이라 위안 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엄마에게 연락조차 자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엄마도 내게 자주 전화하지 않으셨다는 핑계를 대보았지만, 그것이 변명에 불과함을 지금은 안다. 자식이라면 멀리 계신 어머니를 자주 살피고 안부 전화도 드려야 마땅하다. 나도 효녀가 되고자 노력해 보았으나 결국 포기했다. 그저 스스로 불효녀이기를 자처하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주위엔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위로받고 싶을 때면 엄마에게 일일이 전화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내 모든 것을 다 들어주고 안아주고 품어주는 엄마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기분일까. 나는 원래 내 속내를 잘 말하는 성격도 아니지만 엄마에게만은 일부러 더 피하고자 한다. 내 눈에 엄마는 엄마의 삶의 무게만으로도 힘겹고 버거워 보여서 과연 엄마가 내 삶의 무게까지 들어줄 수 있을까, 혹여 내 무게가 엄마를 더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엄마와의 대화는 일방적일 때가 많다. 엄마는 종종 엄마 주변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시시콜콜 내게 모두 말하려 할 때가 있다. 마치 누군가 엄마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듯이. 엄마 앞에선 애써 눈을 마주치고 엄마의 말을 경청하고, 맞장구도 쳐가며 리액션을 취해 보이지만 사실 나는 대화 내용 대부분이 궁금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나는 두렵다. 엄마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또 얼마나 죽지 못해 사는지를 내 귓전에 들려줄 때마다 내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워지고 숨이 턱 막혀온다. 그만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진다. 엄마는 내게 왜 그리 연락이 뜸한지를 날짜를 세가며 서운함을 표하지만, 나는 그 진짜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엄마가 말하는 그 불행하고도 외로운 인생을 내가 마주하기 싫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엄마는 얼마나 더 깊은 서운함으로 비통해할까. 그것을 감추기 위해 나의 연락이 뜸한 것이요. 나의 방문이 1년에 고작 두세 번 뿐이라는 걸 엄마는 아실까.


이런 나의 불효를 한 달에 한, 두 번 연락으로,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소소한 선물로 위장해 보지만 다 소용없다.




"어머니가 내 집에 오셔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계신 걸 보는 것은 슬프다. 어머니가 보고 계신 건 창밖의 풍경일까? 당신의 지난날일까? 창밖의 풍경도 지난날도 하염없이 흐르고 차디찬 죽음의 예감이 우울하게 서린 어머니의 노안은 크나큰 비애다. 나의 어머니가 보기 좋을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행복해 보일 적의 어머니가 제일 보기 좋다."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154쪽-


나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행복해 보일 적의 엄마'가 제일 좋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엄마도 이제 어느덧 많이 늙으셨다. 홀로 할머니와 세 자매를 부양하며 힘겹게 살아온 엄마는 평생 화장 한 번 하지 않았어도 어느 부잣집 마나님 못지않게 피부가 하얗고 맑아 부티가 났다.


"엄마는 여전히 참 곱고 예뻐!"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며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곤 했다. 그게 사실이기도 해 감탄해 마지않았는데, 언젠가부터는 엄마의 얼굴에서 엄마의 고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탁해진 피부에서, 깊게 파인 주름에서,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의 눈빛 속에서 외롭고 지난했던 엄마의 인생이 드러난다. 이를 마주하는 것이 나는 편치 않다. 최대한 이런 나의 속마음을 엄마에게 숨기려 한다. '들키지 않으리, 드러내지 않으리.'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孝)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속 씁쓸함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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