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어떤 토양인가?

by 시 선


어릴 때 나는 엄마를 늘 그리워하는 아이였다. 내가 말을 떼기도 전에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생계를 책임진 엄마는 멀리 일터로 떠나야 했기에 나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대체로 희미해졌지만,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감정만큼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일곱 살 무렵,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엄마를 맞이하러 기차역에 갔던 일, 벅차오르는 설렘으로 엄마가 탄 기차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일, 엄마가 떠나는 날이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 나누며 학교까지 함께 걸어갔던 일, 학교 앞에서 나를 데려다주고 점점 멀어져 가는 엄마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전송하던 일, 그리곤 교실에 들어가 엄마와의 이별이 못내 슬퍼 친구들 몰래 눈물을 훔치던 일, 그런 순간들이 모두 선명하게 떠오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아이에게 내가 너무도 크게 느꼈던 엄마의 빈자리를, 그 먹먹했던 가슴을 조금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할 틈도 없이, 곁에서 마치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이기를 바랐다. 더 나아가 ‘좋은 엄마’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엄마가 된 이상 그 외 다른 것은 내 삶에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건 이 세상에 ‘좋은 엄마’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엄마’는 당연히 ‘좋은 아이’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육아서대로 내가 좋은 엄마 역할을 한다 해도, 좋은 아이 역할까지 바랄 수 없었고, 그것이 과연 내 아이에게도 최선일지는 의문스러웠다. 더욱이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도 없었다. 한 지붕 아래, 같은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두 아이가 성격이나 행동이 그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타고난 그 천성은 쉬이 바뀌거나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인정하고 나부터 ‘좋은 엄마’라는 틀에서 벗어나 나의 욕심이나 기대를 내려놓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비로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내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너답게 사는 게 좋아. 네가 너다운 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200쪽



엄마의 자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며, 아이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건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엄마의 빈자리는 내 가슴속에 큰 구멍을 남겼던 것 같다. 그 구멍 때문에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구멍 때문에 나 자신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모든 걸 다 구멍 탓으로 돌렸었다. 그 구멍만 없었어도 나는 더없이 만족할 만한 내가 됐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렇게 그 구멍은 나로 하여금 엄마라는 자리에 대해 내가 겪어보지 않아 알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역할이나 비법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기대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그렇게나 ‘좋은 엄마’가 되고자 애썼던 게 아니었을까.

임신부터 육아 기간 내내 육아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았다. 육아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육아의 중심엔 바로 나, 엄마가 있었다. 육아 문제의 대부분은 엄마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었고, 육아를 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 혹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었다.



아이가 토양에 뿌려진 하나의 작은 씨앗이라면, 엄마는 그 씨앗을 감싸는 토양과도 같다. 토양이 비옥하고 씨앗을 적절히 보호하고 감싸주면, 씨앗은 새싹이 되어 토양 밖으로 뽁 하고 솟아오른다. 그때부터 토양은 새싹의 지지대가 된다. 이 지지대가 계속해서 비옥하고 건강하여 그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새싹은 곧 더 자라나 줄기가 굵어지고 꽃을 피우며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될 테다.


이렇게 씨앗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토양뿐 아니라 주변의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태양, 비, 바람 등 이 모든 것이 토양의 지지를 바탕으로 스스로 자라나는 새싹이 마주하고 적응해야 할 환경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토양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새싹은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가령 해충의 공격을 받을 때, 새싹은 토양과 환경에서 얻은 영양분으로 해충을 물리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발산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다. 토양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인 거다. 씨앗을 품어주고, 뿌리를 굳건히 지켜주고, 적절한 영양분을 공급하여 씨앗이 타고 난 대로 무사히 자라나 세상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밀어주는 것 말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엄마 자신이 좋은 토양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토양이 비옥하지 못하거나 오염되어 점점 가라앉는다면, 과연 씨앗과 새싹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종종 토양인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토양 밖의 외부 환경에서 ‘좋은 엄마’의 역할을 찾아 헤맨다. 그것이 진정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면서. 나도 그렇듯이.

그러나 새싹을 둘러싼 환경은 토양의 능력 밖의 일이며, 새싹 스스로가 맞서고 적응해야 할 몫이다. 토양은 그런 새싹을 믿어 주고, 자신을 비옥하고 단단하게 하여 굳건한 지지대로써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엄마이기 전에 나라는 토양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내가 나를 알고 나답게 살며 내 삶을 책임지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렇게 바로 설 수 있다면,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본받아 스스로 자기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기다움을 찾아서 자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keyword
이전 14화와일드 로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