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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의 커밍아웃!

by 시 선






토끼야, 나는 네가 부러워

언제고 나를 치고 나갈 수 있는 네가, 나는 두려워

너는 거기 나무 그늘 아래 잠들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어

너와 나는 태생부터 다르니까

너는 나보다 빠르게 태어났으니까

너처럼 빠르게 사는 세상은 어떨까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곤 해, 궁금하기도 해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네가 되어 보고 싶어


나는 좀처럼 빠르게 나아갈 수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힘들고 지쳐도

그저, 꾸준히, 쉬지 않고 가는 거야

그게 다야!

그런데 생각해 봐 토끼야, 그건 너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것도 훨씬 빠르게 잘할 수 있겠지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이 달리기 시합에서

평생 너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너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네가 거기서 쉬고 있을 때 혹은 잠들었을 때

조용히, 아주 조심히 지나가는 것뿐이야

네가 깨지 않도록, 네가 깨기 전에

저 결승선까지 서둘러 가는 거야

하지만 너는 곧 깨어나겠지

나는 너를 힘껏 부를 거니까

순식간에 너는, 나를 앞지르겠지

결코 너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결국 나는 지게 될 거야


나도 알아! 이기고 지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

꾸준히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지! 안 그래?

다들 말해, 나도 내게 말하곤 하지


그런데 알고 있니?

그건 패자를 위한 위로일 뿐이라고

승자도 얼마든지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고,

네가 풀 위를 튀어 오를 때 햇살이 네 털끝에 부서지고 바람이 귀를 흔들겠지

네 수염이 떨리고, 콧잔등이 아주 미세하게 춤을 추겠지

너의 심장이 세상의 박동과 맞물려 신나게 뛰어다니겠지




토끼야,

난 이제는,

내게 좀 더 솔직해지고 싶어!

나도 승자가 돼 보고 싶어

1등을 해보고 싶어

한 번은 너를 꼭 이겨보고 싶어



이거 욕심일까?





(이미지 출처: 스튜던트 비, 토끼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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