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사체를 내게 선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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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여서 그럴까. 나는 종종 보리의 엄마를 생각한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고양이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리가 태어나는 순간을 떠올린다. 보리가 어쩌다 사람에게 잡힌 건지 나는 잘 모른다. 우리 가족은 2021년 11월 3일 동물병원에서 보호 중이던 새끼 고양이 보리를 입양했다. 그저 보리가 고양이 특유의 습성이 매우 잘 잡혀 있는 걸로 봐서 유기묘보다는 엄마에게 고양이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 뒤 독립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보리가 사람의 음식에는 전혀 입을 대지 않고 길가에 강아지풀을 먹을 줄 알고 물을 자주 마시고 배변을 잘 가리고, 털을 부지런히 고르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만약 길에서 태어났을 새끼 고양이 보리가 사람에게 잡히지 않고 계속 길 생활을 했다면 보리는 지금 어떤 묘생을 살고 있을까?
녀석이 현관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호시탐탐 바깥세상을 노릴 때, 외출하고 돌아온 아이들의 신발 냄새를 샅샅이 수색할 때, 옥상에 올라가 햇볕에 뜨겁게 데워진 바닥에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과 콧수염으로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낄 때, 창밖에 소란스럽게 날아다니는 까치들을 보며 혼자 사냥 모드가 되어 긴장하며 *채터링할 때, 나는 우리와 가족이 아닌 보리의 다른 묘생을 상상하게 된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안타깝고 아쉬워하는 것은 ‘보리가 새끼를 낳는다면 그 새끼들이 얼마나 이쁠까?’ 하는 상상이다. ‘보리가 나처럼 엄마가 된다면 어떨까?’ 왠지 모성애가 강하고 새끼들을 잘 돌봐주는 좋은 엄마 고양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이 되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보리의 자궁을 적출해 낸 것은 못내 미안하고 늘 죄스럽다.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보리의 타고난 생을 거스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스스로 합리화하려 든다. 보리는 이미 동물병원에 보호 중이었고, 우리가 아니었다면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었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안락사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 다른 가족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이만하면 보리에게 충분히 좋은 묘생을 주고 있다고, 이 정도면 고양이가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 내 좋을 대로 생각해 버린다. 그리곤 곧바로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 요즘 보리에게 소홀했던 순간들—특히 언젠가부터 피곤하다는 이유로 보리를 놀아주지 않게 된 것, 귀찮다는 이유로 털 빗기기를 미루고, 보리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양치질을 시키지 않고 스케일링이나 하려 했던 것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런저런 생각들보다 정작 중요한 건 내가 보리에게 할애하는 시간이나 행동일 텐데… 말이다.
"졸리면 자고, 배가 고프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면서 보내는 집안에서의 하루는 너무나 만족스러운 생이다. 자신의 영역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다. 고양이의 뇌에는 신피질이 없기에 과거와 미래에 대한 개념이 없어 오직 현재만을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욕구를 충실히 해결하며 오롯이 오늘에 집중해 사는 고양이는 평생 집 안에서 지내도 괜찮다고 한다."
(애숭, 『고양이 생활』, 190쪽)
보리가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부러운 게 사실이지만, 나는 오히려 신피질이 없는 우리 고양이가 안쓰럽다. 이 세상이 이렇게나 광활한데 우리 집이 온 세상인 줄 알고 사는 우리 고양이가 우물 안 개구리 같아서다. 햇살 좋은 날 넓은 들판이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무성한 숲에 가게 되면 ‘보리도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내겐 그곳에 보리를 풀어줄 용기도 없는걸… 그러다 보리가 어딘가 가 버리면, 우리 곁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고양이는 우리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갈 테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보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걱정하고 또 보리가 너무 보고 싶어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 뻔하다. 나는 그걸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 그러니 품 안에 고양이를 끼고 살 수밖에 없다. 적어도 고양이가 우리와 사는 동안 불편하거나 불행하지는 않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랑한다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보리와 사는 동안 우리가 전원주택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간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가기를 꿈꾼다. 그런 곳이라면 마음 놓고 우리 고양이를 풀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탁 트인 하늘 아래 우리 고양이를 상상한다. 흙을 밟고 파헤치고 나무를 오르고 꽃내음을 맡고 좋아하는 강아지풀을 실컷 뜯어먹으며 고양이답게 놀 것이다. 보리는 어느 날 쥐의 사체를 내게 선물할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몇 배는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안다. 보리는 우리보다 먼저 늙고 약해질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보리가 고양이 별로 떠나기 전에 한 번은 보리에게 온전한 자유를 맛보게 하고 싶다.
집너머 세상을, 온 우주를 너에게 선사하고 싶다.
*채터링: 고양이가 사냥감을 보고 흥분, 좌절, 사냥 준비, 먹잇감 모방 등 본능적 반응으로 입을 빠르게 여닫으며 내는 특이한 소리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