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란 뭘까? (feat. 유진목)

그나마 글이 쓸 만한 이유

by 시 선


항상 쓰는 것만 나에게 남는다.

저주 같다.

정말로 죽지 않을 만큼만 돈을 주고 살려두면서 다른 선택도 못 하게 하는 저주다.

내가 가진 재능은 이렇게 생겼다.”


(유진목, 『재능이란 뭘까?』 86쪽, 난다)



정말이지, 재능이란 뭘까?

재능이란 어떻게 생겨 먹은 걸까?

내게도 재능이란 것이 있긴 있는 걸까?

어쨌거나 쓰고 있다면 이게 내 재능일까?


이제 와서 재능을 키우려는 내가 좀 힘들고 버겁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인생에 글쓰기란 없었다. 보통 작가들이 그렇듯 어렸을 때부터 책을 쭉 읽은 것도 아니고(책 구경은 해보지도 못했다), 책이 좋아 도서 동아리나 편집부 뭐 이런 비슷한 활동을 한 적도 없다(지루하다 여겼다). 그야말로 글쓰기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느 날 보니 나는 쓰고 있었고(나름 진지하게), 퇴고를 거듭 거치며(나름 고민하여),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처럼 말이다. 이런 내가 좀 의아하기도 하고 가끔 웃기기도 하다.


나는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된 걸까? 읽는 사람은 언젠가 쓰게 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만큼 내가 많이 읽었던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첫째를 임신하면서부터였다. 그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것이 내겐 '자아'를 찾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주로 육아서나 심리, 요리와 살림, 취미활동을 위한 실용서와 에세이를 읽었다. 그때는 시나 소설, 문학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솔직히 나의 읽기는 10년 남짓, 글을 쓰기에는 턱없이 얕고 짧은 편이다.


다만 그 사이 나는 꽤 변화하고 성장했다고 자신한다. 그 기저에는 책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엄마가 되어 한 가정을 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책의 몫이 컸다. 언젠가부터 나는 완전히 책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만큼 책이 좋았고 책을 점점 가까이하고 싶었다. 그러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내 인생 첫 책 쓰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단순히 ‘책’ 때문에 끌렸다), 그 결실로 문집을 내는 과정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따라서 이 예상치도 못한 나의 글쓰기는 매번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다.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되는데, 하나는 어휘와 필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내 글은 읽기 쉽다는 칭찬을 곧잘 듣는데, 그건 내가 쓰는 단어나 문장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고 평이하기 때문일 수 있다. 독자를 상정한 명문을 쓰고 싶은 나로서는 욕심을 낸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한 번 정도는 검색하고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새롭고도 정확한, 아름다운 어휘를 구사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의 글쓰기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어떤 작가들은 단 하루 만에 꽤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내기도 한다. 난 절대 그럴 수 없는 케이스다. 고백하자면 내 초고는 어디 내놓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단어 선택이나 문장 배열 등 오합지졸이다. 그나마 내가 남들에게 선보일 만한 글을 써낸다는 건 그만큼 오래 공들인 글이다. 나조차도 마주하기 싫은 초라한 내 글을 보고 또 보고 고쳐서 겨우 올리는 글이다. 글쓰기를 늦게 시작한 만큼 속도를 내고 싶지만, 이 또한 마음만 앞선다.


그럼에도 꾸준히 해 나아가고 있다. 별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저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고, 쓰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건 그런 것이다. 시간을 더 할애할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두세 배는 더 들여다봐야 한다. 그 결과 지난 1년 동안 내 브런치 스토리엔 72개의 글이 모였고, ‘브런치 북 출판프로젝트’ 외에도 몇몇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했다. 모두 떨어졌지만, 그 과정과 용기는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이런 건 진짜 처음이다. '뭔가 생산적이면서 스스로 상향되는 느낌' 말이다. 전에도 꿈이 있었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주체적으로 꿈을 이끈 것이 아니라 내가 꿈에 끌려다녔던 것 같다. 내가 쓰는 에너지가 모이는 게 아니라 다 새 나갔다. 그러니 계속해서 꿈을 이끌어갈 힘이 없었다. 내 꿈은 자아 없이 그저 세상에 휘둘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끝내 닳고 말았다.


게다가 뭐 하나 하려면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시간과 에너지는 기본이고 배울 것도 준비할 것도 특히,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본은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가진 게 없는 자가 시도하기 어려운 일을 꿈꿨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로지 내 감각과 열정만을 의지했다가, 그것만으로는 재능을 키워갈 수 없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러나 이 글쓰기는 다르다. 딱히 필요한 게 없다. 나로 충분하다. 나와 노트와 펜 또는 나와 컴퓨터, 아니면 핸드폰만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특별한 교육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누구라도 당장 쓰고자 원한다면 쓸 수 있는 게 바로 ‘글’이다. 내 경우엔 조용한 곳에서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 단지 쓰는 시간만 내면 된다.


이렇게 글쓰기가 수월하다는 장점 외에도 이만하면 내 적성에 맞지 싶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 적성이 언제까지 갈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이보다 더 적성에 맞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미련 없이 떠날 수도 있다. 혹은 아무도 나의 글쓰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제 풀에 꺾일지도 모를 일이다. 재능이란 것이 아무리 자신의 의지와 노력, 역량에 달렸다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하려면 어쨌든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법이다. 자기만족에 그칠 일이라면 취미이지 재능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재능이라면 적어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이왕이면 밥벌이까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288쪽, 문학동네)





어느 날엔 도서관을 나서다,

“이렇게 매일 읽고 쓰고 사는데,

이러다 내가 작가밖에 더 되겠어?”

혼자 중얼거렸다. 그날도 별 볼 일 없는 글을 쓰고 나온 길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게 농을 치며 웃었다. 들어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순간 누가 들었을까 주변을 살폈다. 혹시 누군가 들었다면 너무 창피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재능은 이렇게 생겨나 보다. 스스로 그저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문하고 주입하여 북돋우는 것. ‘여봐라 넌 계속 쓰고 있으니 어찌 됐든 작가가 되지 않겠느냐, 그냥 쓰기나 해라, 쓰면 언젠가는 이뤄질지니.’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다 이것마저 지치게 되면 나의 글쓰기는 재능은 아니었다 그냥 취미였노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앞으로 내가 작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잠깐 영어 강사는 될 수도 있겠다. 소실 적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가르칠 수준은 되겠다. 몇 달 전에도 그랬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면 아마 영어 강사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돈벌이를 위한 일이지, 내 영혼을 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평생 할 일은 더더욱 아닐 테고. 영어는 나보다 잘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세상에 널렸으니 말이다.


글쓰기 역시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탁월하고 훌륭한 작가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알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할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온 우주를 통틀어. 그러므로 이 글쓰기가 그나마 좀 할 만해진다. '나'라는 고유함이 내 글의 고유함을 보장해 준다. 물론 어딘가 비슷한 글도 있겠지만 비슷할 뿐 내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이것저것 묻고 따져봐도 내 글이나 당신의 글은 유일하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언제나 유일무이한 새로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난 그걸 믿고 쓴다. 언젠가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이들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 믿음은 씀으로써 더욱 확고해진다.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쓴다. 쓰고 또 쓴다. 마침내 『수요일엔 뭐라도』 세상에 내놓고자 한다. ‘제 글 한 번 읽어보세요.’ 발행을 누른다.


내게 글쓰기란 재능이 ‘있다’ ‘없다’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재능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다’ ‘안 하다’의 문제다. 어찌 보면 선택의 영역인 것이다. 내가 무언가 ‘하다’를 선택한다면 그건 내 재능이 될 수 있다. 선택하지 않은 모든 것은 당연히 내 재능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재능이란 ‘있다’ ‘없다’의 완료형이 아니라, ‘하다’ 또는 ‘하는 중이다’라는 현재진행형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그리고 지금 당신이

잘하고자 시간을 들여 애쓰는 중인 그것.

그게 바로 재능이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 볼 만하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289쪽,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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