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엔 뭐라도

브런치북이라는 형식과 틀 속에서 안온한 구속을 택했다

by 시 선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알았고 어제 자기 전에도 생각했고, 실은 지난주부터 내내 수요일을 의식하며 지냈다. 수요일은 바로, 내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느슨하고 하릴없는 나의 일상에 팽팽하게 날을 세우는 작가의 마감 일인 것이다.


원래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그럴싸하게 서평 에세이를 올리고 싶었으나, 아들이 독감에 걸려 꼼짝없이 집에 묶여 도서관에도 가지 못한 데다 왠지 모르게 차일피일 미루다 수요일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오전에는 아들의 과잉치 발치 시술까지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도무지 글을 쓸 시간이 나지 않았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올해는 브런치북을 만들어 주 1회 공개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브런치북의 제목은 급기야 ‘수요일엔 뭐라도’이다. 제목 그대로 수요일엔 뭐라도 발행하겠다는 취지를 담았는데, 정말이지…, 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게 될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그러니까 지금 난 마감의 문턱 앞에서 뭐라도 발행해야겠다며 임기응변으로 우왕좌왕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연재를 시작한 지 단 3회 만에 말이다.


스스로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3회 만은 아니라는 것에 작게나마 위안을 삼는다. 작년부터 매주 수요일에 글을 발행했으니, 실상 3회(세 번째)가 아니라 56회(쉰여섯 번째) 글이라는 거다. 살다 보면 총 쉰여섯 편의 글 중 한 편 정도는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그렇지…) 이러다 취지만 살린 글로 그치는 건 아닐지… 내 안에 우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미지의 독자가 떠오른다.


그래도 ‘뭐라도’ 했다는데 무게를 싣고자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뭐라도’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대범하고 중요하고 결정적인 일은 아닐지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일은 세상에 극소수다. 대부분은 ‘뭐라도’에 속하는 일들일 것이다. 그저 그런, 어쩌면 하찮을지도 모르는,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평범하고 작고 사소한 일들이 천지라는 거다. 그런 자잘한 일들이 모여 이 세상을 이루고 그 안에서 '뭐라도'가 아닌 ‘특별한 큰 일’이 어쩌다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뭐라도 쓰다 보면 비비안 고닉(Vivian Gornick)이 전하는 '자신의 사소한 관심사를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초연안 이야기로 바꾸어, 무관심한 독자에게도 가치 있는 글'을 써내는 날도 올 있지 않을까.


또는 뭐라도 올리는 이 글에 영감을 받아 누군가 식은 죽 먹듯이 '000엔 뭐라도' 행동하게 되면 어떨까 제멋대로 상상해 본다. '뭐라도'엔 분명히 힘이 있다. 가볍고 만만한 뉘앙스 덕분에 쉽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니 말이다. 몇 년 전 집안일 말고 다른 거 뭐라도 하고 싶다던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뭐라도’ 하는 행동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뭐라도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남인숙의 책『마음을 가지런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무언가를 한다'가 '무언가가 된다'로 변하는 과정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의 복잡성이 없다. 하다 보면 덜컥 되어 버리는 일이 꽤 자주 벌어진다. 누구나가 되도록 많이 ‘000엔 뭐라도’ 하면 좋겠다. 뭐라도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자주자주 실행하며 살면 좋겠다.


솔직히 브런치북의 제목을 두고 이렇게나 멀리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나는 그런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앞으로 반복해서 돌아오는 이 수요일을 무사히 넘기고만 싶다.


이번에 내가 연재 브런치북을 만들면서 허심탄회하게 말해보고 싶은 것은 이렇게 대놓고 연재하는 행위에 관해서다. 전엔 매주 연재를 하면서도 브런치북으로 발행하지 않았다. 티 내지 않았다. 수요일이라는 마감은 단지 나 자신과의 암묵적인 약속일 뿐이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작가 소개 글에 ‘매주 수요일마다 한 편의 글을 올립니다’ 공개적으로 발행일을 밝혔다가, 그걸 누가 궁금해할까 하면서 '당신이 쓰는 삶을 응원한다'라고 고쳤더랬다. 이제 보니 그건 내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만의 약속이라는 건 얼마나 쉽고 편리한가. 언제든 원한다면 그 약속을 깨도 되니 말이다. 나는 그 여지를 남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나.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다 끝이다. 나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버렸다.


언젠가 글 쓰는 친구 J와 대화 나눈 적이 있다. 둘 다 수요일에 글을 발행했고 J는 브런치북에 연재 중이었다.

“브런치북이니까 매번 같은 주제로 글을 써야 하잖아. 톤을 유지하면서 매주 글 한 편씩 올리는 게 정말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그러면서 J는 어쨌든 이 연재 브런치북이라는 형식과 틀 덕분에 주기적으로 글을 올릴 수 있다고 대놓고 연재하는 장점에 대해 어필했다.


“그래서 난 정확히 그 부분 때문에 브런치북으로 만들지 않았어!”


그렇다. 나는 그 브런치북이라는 형식과 틀에 큰 압박과 부담을 느꼈던 거다. 느려도 너무 느린 내 글쓰기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고, 공공연한 독자와의 약속이라는 무게 또한 버거웠다. 집에서 위에 속옷 하나를 입지 않은 것처럼 나를 그 어떤 조임도 없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둬야 했다. 그래야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만큼 글 쓰는 일 자체가 내게는 아주 '커다란' '특별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J와 나는 이렇게 같은 상황과 조건을 완전히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J가 생각하는 장점은 돌연 내겐 단점이 되었다. J는 연재를 마치고 보기 좋게 브런치북을 완성했고, 나는 별다른 완성 없이 53편의 조각난 글들을 남겼다. 매번 다른 주제와 톤을 가진 글들. 각기 다른 자아를 지닌 듯한 글들.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글들. 아직도 세상 어딘가를 유영 중인 글들. 그래서 자유로운 동시에 불안한 영혼의 내 글들은 어쩐지 나의 자아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2026년엔 이 연재 브런치북이라는 형식과 틀 속에서 '안온한 구속'택했다. 조금만 더 나를 조여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난 이렇게 뭐라도 쓰고 있다. J가 말했던 브런치북의 장점을 내 것처럼 소화하고자 한다. 지난 1년간 나름 꾸준히 연습하고 단련한 시간들에 의지해 본다. 마감이라는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스스로 나를 내던진다.


나 자신을 믿어본다.




수요일 연재
이전 02화마후라가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