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끝자락에서
마침표가 찍혔는데도 실감 나지 않는 글이 있듯이, 분명 끝났을텐데 끝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일도 종종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대개 여운 탓이다. 당신의 서사에 온몸이 저리도록 힘주어 응원했기에 이대로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워서이다. 혹은 섭섭하거나 무서워서이다.
여운은 제대로 음미할수록 창발적이다. 모르던 영역에서 딸려온 응분의 감정과 사고는 좀처럼 가만히 있을 줄 모르고 저마다의 세상을 자라나게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끝을 잘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난 줄 몰랐거나, 알아차리는 데까지 오래 걸린다거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한번 끝난 사실을 체감했다면 끝을 끝으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러지 않았다. 끝나버린 나에게 주어진 것은 정말 끝이 맞는지에 대한 조그마한 의문감과, 그렇다면 당분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주한 고민거리였다.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있는 동안 여러 권의 책을 폈다가 접었고, 영화를 몇 편 보다가 껐고, 글을 쓰다가 동력을 잃었고, 그림을 그리다가 황급히 끝냈다. 잘 쉬어야 혁신이라던데, 어떻게 하면 잘 쉬는 건지 고민하느라 온갖 비혁신적인 일을 벌여놓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고 앉아있는 거니?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래.
더 밑으로 내려가 보았다.
불안해서 그래.
괜히 입안이 공허했다.
사람을 만나 음식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종류의 허기였다.
그래서 나흘간 골똘히 생각한 다음 대답해주었다.
이미 네 손을 떠난 일들이라면 잘 굴러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동안 너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도닥여줄 수 있는 아량과, 그간 메말라버린 어떠한 영역을 살뜰히 돌볼 수 있는 애정 어린 시선이야. 제대로 끝을 마주하는 자세로 지내다 보면 언젠가의 새로운 시작도 어렵지 않은 법이지.
그렇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비로소 끝이다.
수고 많았어. 행복을 기원해. 안녕, 그리고 안녕!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