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겨우 7회초를 넘긴 후 맞이한 7회말 LG의 공격은 별 일없이 그냥 순삭.
그리고 맞이한 8회초.
이상훈은 첫 타자인 유이 아버지 김성갑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보내기 번트에 이은 LG 출신 윤덕규의 빗맞은 바가지 안타가 이어지며 1사 1,3루 위기에 몰렸다.
이미 7회부터 힘겨운 기색이 보였던 이상훈은 8회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물러났고 LG 벤치의 선택은 베테랑 차동철이었다.
분위기를 넘겨준 상황에서 노련한 셋업맨 차동철 기용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 해 2승 5패 7세이브 ERA 2.59를 기록한 차동철이 그 위기를 넘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지켜봤지만 그는 태평양의 4번 타자인 김경기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불을 지르고 내려가고 말았다.
아, 망했다... 오늘 김홍집 던지는 걸 봐서는 여기서 역전당하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 하필 다음 타자는 7회초에 말도 안 되는 2루타로 우주의 기운을 불러온 김동기였다.
8회초 1사 만루에 타석에는 그날의 운을 몰고 온 타자가 들어선 절체절명의 순간.
LG의 선택지는 이미 전해져 있었다.
그건 바로 노송. 김. 용. 수.
언제나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 몸을 푼 김용수가 숨을 고르고 초구를 던졌다.
초구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하고 타자는 당연히 노려야 하는 상황.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소파에서 엉덩이를 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의 손을 떠난 공을 지켜봤다.
몸 쪽으로 향한 그의 138km짜리 직구에 김동기도 반응했다.
있는 힘껏 휘두른 그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며 헛스윙.
기선 제압에 성공한 김용수. 불끈 쥐는 나의 주먹. 나도 모르게 터진 예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김동기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타자와 투수, 그리고 포수와의 머리싸움 끝에 승부는 풀카운트.
숨이 막혔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힘겨루기를 하던 투수는 벼랑 끝에 몰렸고 LG 역시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찰나.
양 팀 벤치도, 잠실의 모든 관중도, TV로 지켜보던 진학 스트레스에 찌든 고2 학생도, 모두가 숨죽이던 그 순간 김용수가 마지막 공을 던졌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의 투구에 김동기 역시 역전타를 위한 혼신의 스윙으로 맞섰다.
딱!!
파열음과 함께 배트를 떠난 날카로운 타구가 향한 곳은 3루수 한대화의 글러브였다.
한대화 - 박종호 - 서용빈으로 이어지는 더블 플레이.
마지막으로 공을 잡은 서용빈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김용수는 그 흔한 포효 따위 없이 묵묵히 마운드를 걸어 내려갔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모두가 터질 듯 흥분한 그 순간에도 홀로 냉정했던 클로저.
그게 바로 노송이었다.
벼랑 끝 위기를 넘겼으니 이제 분위기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차례였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겨드랑이가 축축한 채로 따서 마신 맥콜 맛이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청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