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한방의 추억_94 한국시리즈 #3

by 김팀장

겨우겨우 7회초를 넘긴 후 맞이한 7회말 LG의 공격은 별 일없이 그냥 순삭.


그리고 맞이한 8회초.

이상훈은 첫 타자인 유이 아버지 김성갑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bandicam 2022-05-18 16-09-51-936.jpg 태평양의 리드오프 '유이 아버지' 김성갑

그리고 보내기 번트에 이은 LG 출신 윤덕규의 빗맞은 바가지 안타가 이어지며 1사 1,3루 위기에 몰렸다.


이미 7회부터 힘겨운 기색이 보였던 이상훈은 8회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물러났고 LG 벤치의 선택은 베테랑 차동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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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넘겨준 상황에서 노련한 셋업맨 차동철 기용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 해 2승 5패 7세이브 ERA 2.59를 기록한 차동철이 그 위기를 넘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지켜봤지만 그는 태평양의 4번 타자인 김경기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불을 지르고 내려가고 말았다.


아, 망했다... 오늘 김홍집 던지는 걸 봐서는 여기서 역전당하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 하필 다음 타자는 7회초에 말도 안 되는 2루타로 우주의 기운을 불러온 김동기였다.


8회초 1사 만루에 타석에는 그날의 운을 몰고 온 타자가 들어선 절체절명의 순간.

LG의 선택지는 이미 전해져 있었다.


그건 바로 노송. 김. 용.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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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 몸을 푼 김용수가 숨을 고르고 초구를 던졌다.


초구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하고 타자는 당연히 노려야 하는 상황.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소파에서 엉덩이를 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의 손을 떠난 공을 지켜봤다.

몸 쪽으로 향한 그의 138km짜리 직구에 김동기도 반응했다.

있는 힘껏 휘두른 그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며 헛스윙.

기선 제압에 성공한 김용수. 불끈 쥐는 나의 주먹. 나도 모르게 터진 예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김동기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타자와 투수, 그리고 포수와의 머리싸움 끝에 승부는 풀카운트.

숨이 막혔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힘겨루기를 하던 투수는 벼랑 끝에 몰렸고 LG 역시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찰나.

양 팀 벤치도, 잠실의 모든 관중도, TV로 지켜보던 진학 스트레스에 찌든 고2 학생도, 모두가 숨죽이던 그 순간 김용수가 마지막 공을 던졌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의 투구에 김동기 역시 역전타를 위한 혼신의 스윙으로 맞섰다.


딱!!


파열음과 함께 배트를 떠난 날카로운 타구가 향한 곳은 3루수 한대화의 글러브였다.

한대화 - 박종호 - 서용빈으로 이어지는 더블 플레이.

마지막으로 공을 잡은 서용빈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김용수는 그 흔한 포효 따위 없이 묵묵히 마운드를 걸어 내려갔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모두가 터질 듯 흥분한 그 순간에도 홀로 냉정했던 클로저.

그게 바로 노송이었다.

벼랑 끝 병살 유도.


벼랑 끝 위기를 넘겼으니 이제 분위기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차례였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겨드랑이가 축축한 채로 따서 마신 맥콜 맛이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청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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