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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Jun 08. 2022

간절함 VS 간절함, 그리고 미안함

웨일스 VS  우크라이나

 일요일에서 현충일로 넘어가는 야심한 시간.

 이제서야 내 것이 된 TV 리모컨에게 지령을 내린다.

 TV 전방 1미터 앞 소파에 널브러진 나에게는 들리고 안방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와이프에게는 닿지 않을 정도의 볼륨으로 내 입맛에 딱 맞는 채널을 찾아내라. 3초 준다.


 힘숨찐의 압도적인 위세에 눌린 리모컨이 황급히 이리저리 동분서주한다.

 그러다 얻어걸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플레이오프 결승전.

 웨일스와 우크라이나가 월드컵 본선행을 위한 최후의 벼랑 끝 승부를 벌였다.

 일정 레벨 이상의 유럽 국가들의 A매치는 사실 우리나라 국대 경기보다 재미있다.

 웨일스와 우크라니아라면 브라질이나 프랑스에게 이긴다고 해도 그저 이변 정도로 여겨질 뿐, 우리가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겼을 때처럼 전 세계 미디어가 앞다투어 전할만한 큰 사건은 아니다.

 그만큼 탄탄한 전력의 두 팀이 평가전만 해도 스포츠 성애자인 나에게는 충분한 볼거리였을텐데 월드컵 티켓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니 재미없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에 스토리가 한 겹 더 얹힌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에 휩싸인 우크라이나는 이 한 판에 단순히 월드컵 본선만이 걸린 것이 아니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6805

 

 전쟁통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행이 어떤 의미일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들은 이미 준결승에서 스코틀랜드를 꺾으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했고 이제 더 큰 희망을 위한 마지막 한 걸음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나는 본래 '스포츠는 스포츠로만 봐야 한다.'는 주의지만 전쟁의 고통과 월드컵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우크라이나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고전적인 클리셰대로라면 웨일스는 우크라이나의 시련 극복 과정의 마지막 관문쯤이 되어야 맞는 거니까.


 그런데 저 쪽 스토리도 우크라이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꽤 밀도가 있다.

 웨일스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이라는 단일 국가로 묶이지만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개의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영어 외에 웨일스어를 사용하며 잉글랜드와는 별개의 문화를 형성했고 스포츠에 있어서는 별개의 국가로 참가하고 있다. 게다가 축구 열기도 대단하다.

 바로 인접한 잉글랜드는 전통적인 축구 강호이자 오래전 이기는 했지만 월드컵에서 우승한 기록도 있다. 직전에 열렸던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4강에 진출하는 등 월드컵의 단골손님이자 영원한 우승후보 중 한 나라이다.

 반면 웨일스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그렇다고 웨일스가 축구 변방인 것도 아니었다. 라이언 긱스, 가레스 베일 같은 빅스타는 말할 것도 없고 항상 국가대표 대부분이 PL 등 유럽 상위 리그에서 뛰는 수준 높은 팀이었으니 유럽 예선의 벽이 그만큼 높았다고 할 수 있다.  

 한 번만 더 이기면 월드컵 진출과 함께 그동안 잉글랜드에 품고 있던 열등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64년 만에 찾아온 것이었다.


 제삼자인 나에게는 우크라이나의 간절함이 더 크게 다가왔지만 경기를 뛰는 당사자들에게는 그 간절함의 경중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웨일스의 안방인 카디프시티에서 열린 경기는 처절하고 또 처절했다.

 처절함을 배가시키려는 듯 경기 내내 야속한 비가 쏟아지며 선수들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그래도 양 팀 선수들은 쉬지 않고 뛰고 또 뛰고 구르면서 피치 위에 자신들의 간절함을 쏟아냈다.


 90분간의 사투 끝에 웃은 쪽은 웨일스였다.

 무서운 기세로 똘똘 뭉친 우크라이나가 경기를 주도하며 끊임없이 웨일스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9개의 유효슈팅을 막아낸 헤네시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에 막혔고, 얄궂게도 프리킥을 헤딩으로 걷어내려던 주장 야르몰렌코의 자책골로 결승골을 내주며 1대 0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무 상관없는 나조차도 허탈했던 그 결과 앞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고개 숙인 야르몰렌코와 우크라이나 선수들 (연합뉴스)

 본래 모든 스포츠의 속성은 승자 독식이지만 이번 같은 경우를 대할 때마다 그러한 스포츠의 속성이 너무나도 비정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해피엔딩이 상대에게는 새드엔딩이지만 이번 경우는 그 쓰라림이 너무 크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지 못한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미안함.  

 주장으로 헌신적으로 팀을 이끌었지만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 야르몰렌코의 허망함과 미안함.

 결승골로 연결된 프리킥을 찼던 가레스 베일이 인터뷰에서 밝힐 수밖에 없었던 우크라이나 팀과 국민들에 대한 미안함.

 온통 미안함만 남았다.


 승리한 팀의 순수한 기쁨보다 여러 사람들의 미안함이 더욱 부각되는 이 아이러니한 결말을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스포츠 자체의 냉정함만으로도 패자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승자는 극한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당연하다.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감정을 온전히 분출시킬 수 없었던 웨일스 선수들 역시 지금 이 사태의 피해자이며 이러한 결과는 완전히 불합리하다.  

 그러니 당장 멈추라.

 스포츠의 냉정함에 잔인함까지 더하지는 말라.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일 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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