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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Jul 25. 2022

나는 시원한 마트에 가고 싶다.

시장은 자율에 맡기면 된다.

 덥다. 여름이니까.

 가고 싶다. 마트에. 더우니까.

 별로 안 가고 싶다. 전통시장에. 더우니까.


 날이 더워 살짝 정신 나간 듯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았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이다.

 더우면 시원한 곳으로 피하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아가는 게 사람이다.

 편한 것을 찾아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 편안함을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불편함을 감수하면 나에게 이익이 생기는 경우.

 둘째, 누군가가 그 불편함을 강요하고 다른 대안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 


 5~6년 전쯤인가 <터닝 메카드>라는 애니메니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가 있었다.

 평소에는 미니카였다가 변신하면 전투로봇이 되는 '메카니멀'이 등장했던 그 작품은 당시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 이상의 존재였고 그중에서도 주인공격인 '에반'과 '타나토스'는 메카니멀계의 BTS였다.

 그 '에반'과 '타나토스'를 마트 지점당 5개 한정으로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놓쳐선 안돼!' 하는 마음의 소리에 응답한 나는 주말 아침 6시부터 마트 정문 앞에 줄을 서러 갔고... 


 '당연히 내가 1등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달려왔을 나보다 앞선, 좋은 아빠를 꿈꾸는 3인방과 그 어렵다는 '처음 보는 남자들끼리 말 트기'를 시전 하며 약 4시간가량의 토크 후에 마침내 '에반'과 '타나토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3년쯤 전인가 우리 중대에 예비군 아저씨들이 입소한 적이 있었다.

 엄청 더운 여름날 우리는 막사 일부를 아저씨들에게 내어주어야 했지만 그건 참을만했다.

 하지만 실내 화장실과 세면실을 예비군 아저씨들에게 통으로 내어주고 우리는 실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과 수도를 이용하라는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의 지시에는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들이 훈련을 받는 며칠 동안 우리는 웬만하면 화장실은 참아야 했고, 종일 땀에 절은 몸을 씻기 위해 어쩔 수없이 부대 내에 누드비치를 열어야만 했다.

 온통 남자들만 있는 곳이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부대 정문을 함께 쓰던 죄 없는 옆 부대 아저씨들까지 눈이 썩는 경험을 해야만 했고 예비군 아저씨들도 괜히 미안해하며 중대장과 행보관을 대신해 상처받은 현역들을 위로하느라 밤마다 많은 지출을 하게 됐으니 모두가 피해자였다.


 첫 번째 경험은 지금도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지는 경험담으로 남아있다.

 그 몇 시간의 불편함을 감수한 결실로 아이들은 에반과 타나토스 보유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인싸가 될 수 있었고, 나는 나대로 좋은 아빠 노릇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침부터 애썼네, 잘했다는 아내의 칭찬은 덤이었고.


 반면에 두 번째 경험은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불쾌하고 불편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내가 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예비군 아저씨들이 편하게 훈련받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실체 없고 측정 불가능한 목표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봤으니 말이다.


 이득을 보고 피해를 봤다는 차이도 있지만 두 경우의 더욱 큰 차이는 자율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에반과 타나토스를 위해 줄을 섰던 그날, 내 앞에 더 많은 아빠들이 있어 득템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아쉬움은 남았겠지만 그 경험이 불쾌함으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한 행동이었으니까.

 실내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내 의사는 단 일프로도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행동과는 애초에 출발선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에 대형마트는 문을 열지 않는다.

 2012년부터 시작된 규제이니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가끔 깜빡하고 허탕 치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대형마트의 영업 규제는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명분 하에 시작되었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행정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기각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5년 11월, 대법원은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영업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으며, 공익이 더욱 중요하다는 논리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문에서 내세운 논리는 아래와 같다. 

대법원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및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발전 등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은 중대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며 "소비자 이용 빈도가 비교적 낮은 심야나 새벽시간 영업만을 제한하는 것이고 의무휴업일도 한 달에 이틀이어서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애초에 전통시장이 쇠퇴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때문에 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인 전통시장이 죽어간다는 논리로 시작된 규제였다.

 대형마트를 못 가게 막으면 전통시장으로 갈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에 더해 대기업은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영업 안 해도 괜찮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작된 걸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대법관들이 전원 적법 판결을 내리며 힘을 실어줬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던 판결이었다.



 서민 계층인 인력거꾼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은 대형 버스 회사의 버스 운행을 금지하자.
 영세한 규모의 옛날 목욕탕을 살리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은 대형 찜질방의 영업을 중단하자. 


 이게 이성적으로 느껴지는가?

 대형마트의 휴일 영업 규제는 위의 버스 운행 금지나 찜질방 영업 중단과 전혀 다른 경우인가?

 버스 회사에서 인력거를 못 타게 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강요하거나, 찜질방 사장님이 동네 목욕탕 문 앞에서 손님들을 막으며 우리 찜질방으로 오라고 해서 우리가 버스를 타고 찜질방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 버스와 찜질방과 마트를 택한 것이지 그들의 강요에 의해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대상을 선택한 것 뿐이다.

 세상의 변화 속에 도태되는 부분은 나오기 마련이고 당연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와 혁신이 지금까지 우리들의 역사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편안함, 편리성, 효율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우리를 돌도끼를 사용하던 존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존재로 변모시킨 것이고 사회주의와 같이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고 통제하려던 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난 10년간의 규제의 결과 전통시장이 활성화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전통시장에 갔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쿠팡에 주문하거나 그럼 그냥 다음 주에 사자하고 넘어가면 넘어갔지 당장 내일 먹을 우유와 씨리얼을 사기 위해 전통시장으로 차를 돌리지는 않았단 말이다.


 내가 전통시장에 갔던 경우는 생필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곳만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을 때였다.

 죽 늘어선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떡볶이 한 접시를 먹고, 입가심으로 차가운 식혜 한 병 사 마시고(비락식혜 아님) 집에 가서 꿀에 찍어먹을 요량으로 갓 나온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사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의 대체재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통시장을 살리는 방법은 대형마트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만의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불편한 점을 개선시켜 나가는 데 있지 않을까.


 예전부터 전통시장에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사 왔기 때문에 계속 그곳에서 사려는 사려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전통시장만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마트를 가려다가 마트 문이 닫혀 있어 그곳으로 차를 돌리는 사람이 많을지 앞서 말한 두 가지 이유로 가는 사람들이 많을지 생각해보자.

 국민의 68%가 규제 완화를 원하는 마당에 애초에 내세웠던 이유인 공익성도 그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런 규제를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반대 의견도 물론 있을 테지만 이번에는 이 무의미한 규제가 꼭 폐지되기를 바란다.

 때마침 대통령실에서 진행 중인 '국민제안 TOP10' 투표에서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1위에 올라있으니 여론은 확실하게 형성되어 있다.

https://www.epeople.go.kr/nep/withpeople/presExcltPrpl.npaid 


 시장은 자율에 맡기면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고 내가 도태될 위기라고 느껴지면 스스로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들의 본성이다.

 우리들의 본성을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내가 옳으니 너희들은 그저 따르라던 전제 군주는 이미 사라진 지 수백 년이 지났다.


 나는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마트에 가고 싶고 시장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는 전통시장에 가고 싶다.

 내가 원해서 갈 때는 주차의 불편함도, 화장실의 불편함도, 이동의 불편함도 모두 다 감수할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그 선택권을 나에게 돌려달라.


#대형마트#전통시장#국민제안#선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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