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라는 책을 읽었다.
아홉 명의 작가들이 글을 쓰고 싶은 이유와 쓰고 싶지 않은 이유에 관하여 쓴 아홉 개의 짧은 글들을 모아서 펴낸 책인데 서로 다른 작가들의 서로 다른 이유와 서로 다른 문체들 덕에 소소하게 읽는 재미가 있었다.
여러 명의 작가들이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그것에 임하는 태도를 자신의 문체대로 풀어내어 나름 글쓰기의 생활화를 향해 가고 있는 나로서는 '글쓰기'라는 작업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작가들을 만나보는 즐거움도 있어 피식피식 웃어대며 술술 잘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바로...
그들은 모두 입금이 되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평범한 회사원이 '회사에 가고 싶다(이럴 일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가고 싶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할 수 있을까.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친한 친구나 직장 동료와 치맥에 곁들여진 안주거리로 삼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이나 맞은편 테이블에서 조기 축구 뒤풀이 3차로 입가심을 하러 온 한 무리의 아저씨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누가 신경이나 쓸까.
괜히 싸움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홉 명의 작가 중 한 명인 박정민 작가의 말대로 수요 없는 공급만큼 외로운 건 없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인, 어쩌면 아무에게도 도움 되는 구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게다가 선불로 입금까지 받아가며 쓸 수 있다니!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은 그걸 또 돈을 내고 사서 읽는다니! (물론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참으로 요상한 재주다.
아홉 명의 작가들에게 글을 쓰고 싶다가 쓰고 싶지 않은 것이 회사원들이 회사에 가고 싶다가(또다시 이럴 일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것이랑 뭐가 다를까.
작가들이 '나 일하기 싫어요' 했다가 '그래도 일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는 이야기가 돈벌이가 된다니 똑같이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 입장에선 세상 참 불공평하지 않은가.
내일 아침 출근해서 사장님께 '저 이래저래 해서 일하기 싫어요.'라고 한번 말해볼 용기는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에 빠져들기 직전의 침대 위에서는 유효하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면 다시 무효가 되지 않는가.
그런데,
다들 알고 있잖아.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거.
온갖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고 글을 쓰는 작가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에서 그들이 대고 있는 쓰기 싫은 이유는 뭐랄까, 전교 1등 하는 녀석이 나도 공부하기 싫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을 바라볼 때처럼 공감하기 힘들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지만 그 행위를 의무감 때문에 행해야 하는 순간들에 대한 압박감과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인지 확 와닿지는 않는다.
원래 남의 입장은 잘 이해가 안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출근하기 싫고, 가게 문 열러 나가기 싫고, 집안일하기 싫고, 누구나 다 싫은 건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감이 들고 때로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먹고살려면 별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키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회사 일도, 가게 일도, 집안 일도 결코 사랑하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전혀 사랑하지 않는 일이라 오늘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는데 또 그럴 수는 없는 현실.
똑같이 너무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그나마 사랑하는 일을 하는 편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쓰기 싫으면서, 또 쓰고 싶은 작가들이 부럽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 하고 싶지 않다'라는 명제를 매일 만나야 하는 우리들에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얄밉고도 부러운 재주다.
그런 재주를 가질 수만 있다면 압박감과 회의감쯤은 얼마든지 O.K.
아....
나도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라고 해보고 싶다.
#쓰고싶다쓰고싶지않다#작가#글쓰기#회의감#보통사람#부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