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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Sep 14. 2022

그놈의 CPI가 뭐라고...

비이성이 지배하는 주식 시장을 보며

<EP.1>


 내 나이도 서른 중반을 넘었다.

 이제 내 한 몸은 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은 안정감이 생겼지만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성화다.

 왜들 그러나 짜증은 나지만 한편으론 50년쯤 후에 고독사 하는 상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해져 얼마 전부터 지인들에게 소개를 받고 있다.


 지난달에 소개받은 사람은 그 전달에 소개받았던 사람보다는 괜찮았다.

 올해 초에 소개받았던 사람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갈수록 점점 괜찮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아 이번 달에 소개받을 사람도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내 맘에 쏙 드는 완전 괜찮은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조금씩 설렜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란 말인가!


 소개해주는 선배도 그 사람 정말 괜찮다고, 너한테 소개해주긴 좀 아깝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그 사람, 그리고 선배와 대학 동문인 이제 하나 남은 회사 동기도 그 사람은 찐이라고 거든다.

 미리 전해받은 연락처를 저장하고 나서 뜬 그의 카톡 프사도 훈훈함이 넘쳤다.

 '와, 나 이번 소개팅하고 나면 이제 솔로 탈출하는 거 아냐?'

 부푼 가슴을 안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은 그 사람은 그래 뭐,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지난달에 만났던 사람보다는 분명히 나아 보였지만 내 기대가 너무 컸었나?

 착한 사람 같았지만 생각보다 연봉도 별로고 말주변도 없어 노잼이었다.

 카톡 프사는 사기였나 보다. 이 정도면 구속시켜야 한다.

 이게 뭐야, 며칠 전부터 설레서 추석 핑계 대면서 새 옷도 사고 머리도 새로 하고 나왔는데 이게 뭐냐고!

 멘붕이다. 집에 가서 혼술이나 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야 하나...



<EP. 2>


 나도 이제 40대다.

 월급쟁이 생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불안하고 앞으로 애들 크면서 돈 나갈 데는 점점 늘어날 텐데 지금 받는 월급만으로는 감당이 안될 듯하다.

 주변 지인들도 요즘은 모두들 주식이다, 부동산이다, 코인이다 하며 투자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불안한 마음에 얼마 전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7월에 발표된 미국의 6월 CPI는 정말 최악이었다.

 9.1%라니 머리털 나고 이런 수치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7월 CPI는 8.5%로 많이 떨어졌다.

 여전히 인플레는 심하지만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으니 머지않아 잡힐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고 그 기대감으로 8월 한 달 내내 주식 시장은 랠리를 벌였다.


 너무 신나 있는 것 같았는지 파월 형님이 8월 말에 찬물을 한 드럼 퍼부어 주셨다.

 잭슨홀 미팅에서 입에 매 주둥이를 달고 나오신 듯 계속 이렇게 외치셨다.

 "나는 매다. 나는 매다. 너희들 긴장해라. 난 끝까지 너희들 잡을 거다!"

 

 화들짝 놀란 시장은 2주 동안 쫄아서 지냈다.

 그동안에도 파월 형님은 계속 외치셨다.

 "나는 매다. 나는 매다. 너희들 긴장해라. 난 끝까지 너희들 잡을 거다!"


 너무 자주 그러시니까 슬슬 내성이 생겼다.

 '형이 아무리 그래도 우린 이미 다 반영했어요.'

 거기에 더해 설레발 성 전망이 이어졌다.

 8월 CPI는 8.0~8.1% 정도일 거고, 잘하면 7% 대도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그래서 며칠 전부터 설렜다.

 그리고 시장은 꿈틀댔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대망의 8월 CPI 발표.

 결과는 8.3%.

 시장은 멘붕.

 미국장 3대 지수는 장이 열리자마자 급락.

 

 아, 다 갖다 팔아버려야 하나...

 그냥 적금이나 할까...




 8월 미국 CPI(소비자 물가지수)는 일종의 분수령이었다.

 시장의 예상대로 나오면 상승 랠리가 시작될 것이고, 의외로 나쁜 수치가 발표되면 시장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결과는 예상외의 수치, 8.3%였다.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CPI 발표를 지켜보던 투자자들은 멘붕에 빠졌고 댓글 창도 난리가 났다.


 그리고 미국 장이 열리자마자 3대 지수는 모조리 급락하며 출발했다.

 이 정도면 거의 패닉에 가깝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수는 계속 빠지고 있고, 이대로 간다면 아마도 오늘 미국장은 곡소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내일 날이 밝으면 우리 주식 시장도 초토화될 확률 99.99999%이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지난달보다 수치가 더 나빠진 건가?

미국 CPI 추이 (5월~9월)

 8월에 발표된 7월 CPI는 8.5%였고, 오늘 발표된 8월 CPI는 8.3%이다.

 지난달보다 0.2% 포인트 개선됐고 지난 5월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 추세는 지속적으로 꺾이고 있는 것이 확인됐는데 왜 시장은 엄청난 악재를 만난 듯 패닉 장세를 나타내는 걸까?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가 전달보다 상승했다, 임대료 상승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같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게 아닐까 싶다.


시장의 기대에 어긋났다.


 "주식 시장을 가장 힘들게 만들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는 건 인정. 근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만큼은 아니잖아. 이제 어쩌냐, 망했네."


 "소개팅에 점점 괜찮은 사람이 나오고 있다는 건 인정. 근데 내 기대만큼은 아니잖아.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신경 쓰고 나간 줄 알아? 이게 뭐냐고!"


 기대치, 예상치, 컨센서스...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들에 이렇게 휘둘리는 곳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주식시장이다.

 지금 내 조건에 어느 정도 걸맞은 사람이 나왔지만 한껏 높아진 눈높이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개팅 당사자의 심리와 주식시장에 참전한 투자자의 심리가 뭐가 다를까?


 확실한 근거도 없는 장밋빛 전망에 설레 하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을 때 투자자는 멘붕에 빠진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자산 시장이 사실은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면에 휘둘리는 이 아이러니를 어찌하나.

 CPI 기대감에 레버리지 당긴 사람들은 어찌하나.

 낙관적인 전망으로 투자자들 펌프질 했던 애널리스트들은 어찌하나.

 그리고,

 우리들 계좌는 어찌하나.  


 주식시장이나 사람 간의 관계나 1+1=2가 아니다.

 1+1이 0이 될 수도 있고, 10이나 100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어려운가 보다. 

 주식도, 사람도...



 역시 설레발은 필패다.



#CPI#인플레이션#주식#기대#설레발#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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