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스러운 영국 언론들은 손흥민의 부진(?)을 연일 대서특필 하며 그를 스타팅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콘테 감독을 압박했고, 결국 콘테 감독은 지난 주말 8라운드 레스터 시티 전에서 손흥민을 벤치에 앉힌 채 경기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7라운드는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
손흥민의 영혼의 단짝인 해리 케인도 작년 시즌 초반 이적 무산에 따른 부진이 이어져 리그 7라운드까지 무득점으로 부진했지만 올해 손흥민만큼 언론에서 흔들지는 않았다. (영혼의 짝은 영혼의 짝 맞나 보다. 이런 것까지 닮다니...)
역시 아무리 팀의 에이스니 월클이니 해도 영국 언론의 눈에는 그저 용병에 불과했던 것일까.
잉글랜드 출신인 케인이 극심하게 부진했던 때와 비교해서 손흥민에 대한 비판은 다소 가혹하게 느껴졌다.
국뽕을 걷어내더라도 시즌 초반 그의 부진은 팀의 구성과 전술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라 공격적인 면에서 그의 역할이 지난 시즌에 비해 감소한 부분에서 기인한 면도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과한 면이 있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들어간 토트넘은 이적 시장에서 페리시치, 히샬리송 같은 자원들을 영입하며 스쿼드를 두텁게 했고, 시즌 초반 손흥민과 페리시치가 같은 방향에서 출전하며 공격적 성향을 지닌 페리시치가 그의 뒤에 위치함으로써 지난 시즌에 비해 손흥민의 수비 가담이 늘어나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시즌 스리톱의 한 축으로 사이드를 따라 들어가다 동료의 패스를 받아 중앙으로 파고들던 역할에서 이번 시즌에는 상대 수비수 한 두 명을 달고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동료들에게 사이드 쪽 공간을 만들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그가 지난 시즌처럼 골을 펑펑 터뜨려 줄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렇게 수비 부담이 늘어나고 공격에서의 지분이 줄어든 상황에서 주로 손흥민과 교체 출전한 이적생 히샬리송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자 상대적으로 손흥민의 부진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 면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런 벤트 같은 전문가는 "손흥민은 득점왕 2연패에 눈이 멀었다.", "SON은 콘테 감독에게 감사해야 한다."와 같은 독설을 날리며 그를 선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여론 몰이에 나서기까지 했다. (너무 미워하지는 마시라. 과거에는 우호적인 발언도 많이 했던 사람이니까.)
그 결과, 지난 주말 경기에는 히샬리송이 손흥민의 자리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고, 늦은 시간 손흥민의 경기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한국 팬들은 허탈감에 빠져야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선발 라인업에 손흥민의 이름이 빠진 것을 보니 허전함을 넘어 허탈함과 약간의 분노마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접전 양상으로 이어지던 그 경기에서 손흥민은 60분경 히샬리송과 교체되며 다시 자신의 자리에 들어갔고,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그동안 그에게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데에는 14분이면 충분했다.
그는 첫 골을 넣고는 특유의 '찰칵' 없이 그저 가만히 서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듯 보였다.
단짝 케인을 시작으로 동료들이 몰려와 그를 포옹하며 '그래, 네 맘 다 알아.' 하는 듯한 단체 셀레브레이션을 보여줄 때는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손흥민은 경기가 끝난 후 토트넘 구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그날 경기에 임했던 자세에 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동안 침묵했던 득점과 그로 인한 비난 때문에 상당히 괴로웠음을 밝혔고,
표정만 봐도 알겠다.
선발에서 제외된 솔직한 심경을 이야기했고,
괜히 성질이나 내는 녀석들은 보고 본받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자신감까지 보여주었다.
나는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날 해트트릭을 기록하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겸손한 그의 평소 성향을 생각해보면 저렇게 자신 있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완벽한 준비를 했을까 싶다.
토트넘 구단 역사상 최초로 교체 투입되어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라는 기록도, 14분 만에 폭풍처럼 3골을 몰아넣었다는 사실도, 첫 번째 골과 두 번째 골의 기대 득점 확률이 각각 5%와 4%에 지나지 않았던 원더골이라는 점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건 완벽한 준비로 자신이 생각한 바를 경기장에서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이 아닐까.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선발로 출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이나 분노는 게임에서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고 그 실망과 분노를 14분 만의 해트트릭으로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현실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완벽한 준비였다.
준비된 자에게도 불운이나 일시적인 어려움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불운이 그들의 노력과 준비를 언제까지나 덮고 있을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주머니에서 송곳이 튀어나오듯 터지게 되어 있다.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그 진리를 지난 주말의 손흥민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