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기다려주는 지혜
올여름 첫 물놀이는 외갓집의 프라이빗 풀에서 일백 프로 쌩노가다 시스템으로 즐겼다.
그래, 나도 즐긴 게 맞다.
응, 정말로.
물론 진정으로 즐기고 왔지만 어찌 사람이 문명의 혜택을 멀리하며 살 수 있겠는가 싶어 두 번째 물놀이는 찬란한 여름 문명의 상징인 워터파크로 향했다.
장소는 휘닉스 평창의 <블루 캐니언>.
물론 혈기 왕성하긴 하지만 아직 아들 1, 2호가 캐리비안베이 같은 어른용 워터파크는 조금 버겁다는 생각에 선택한 곳이었다.
작년 여름 캐리비안베이에 갔을 때 엄청난 파도풀에서 짜릿함을 맛보긴 했지만 그 짜릿함이 녀석들 입장에서, 특히 둘째 입장에서는 거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이었으니 올해는 참기로 했다.
더군다나 7월 초에 새로 리모델링한 휘닉스 평창의 스카이 로열 객실 패키지로 묶여 40평대 객실에 4인 가족 워터파크와 조식, 그리고 관광 곤돌라까지 30만 원대에 나온 상품이 오픈되었으니..
"어머, 이건 사야 해!"라는 마음의 소리에 응답하여 바로 결제를 했고,
우리 가족은 기분 좋게 평창으로 향했다.
아, 곁다리로 아빠 생일 기념이라는 타이틀도 붙여서.
용인에서 아침 7시 출발.
휘닉스 파크에 도착하니 8시 40분.
차 안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티켓팅을 하고 9시에 워터파크에 입성하여 신나게 놀고 컵라면도 먹으면서 5시까지 거의 풀타임으로 놀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워터 슬라이드도 재미있고 어린이 파도풀도 재미있었지만 두 녀석들이 가장 신나 했던 공간은 유수풀이었다.
수심 120cm 정도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깊이에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스윽 나가니 안도감을 느꼈는지 점점 과감하게 놀기 시작하던 아들 1, 2호.
구명조끼를 입고 몇 시간을 둥둥 떠다니며 깔깔대기를 몇 시간.
어느 포인트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자신감이 생겼는지 구명조끼를 벗고 놀기 시작하는 두 녀석들.
처음에는 몇 초 동안 잠수하다 어푸푸 하며 나오더니 몇 번 하고 나니 수영장 바닥을 짚고 나오고, 급기야 수영 선수들이 턴 하듯 물속에서 360도 회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팔다리를 젓고 물장구를 치며 어설픈 폼이지만 헤엄을 치게 된 건 덤.
그 모든 행동들이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으니 뭐 이런 발전 속도가...
스스로도 놀랍고 신기했는지 눈이 휘둥그레진 녀석들을 놓칠세라 연거푸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5시까지 원 없이 놀고 나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워터파크에서 나온 두 녀석들에게는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소나기도 그저 즐거운 경험이었는지 쉴 새 없이 깔깔거리며 숙소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쉬는 동안에도 두 녀석들은 구명조끼나 튜브의 도움 없이 물에 떠서 놀았다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녹초가 된 몸으로 12시가 다 될 때까지 저 세상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미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던 엄마와 아빠는 결국 녀석들이 잠드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기절했다.
아마도 엄마, 아빠가 잠든 후에도 녀석들은 그날의 신기하고 신났던 물놀이 얘기를 계속했겠지.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다.
첫째가 말이 너무 느려서 걱정하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말문이 트인 녀석은 띄엄띄엄 단어를 말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완성된 문장을 구사해서 엄마, 아빠를 놀라게 했다.
네 살 때 사준 자전거를 계속 못 배워서 '우리 애는 왜 이렇게 느릴까' 하고 있던 열한 살이 된 해의 어느 날, 30분 만에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7년 만의 결실을 맺기도 했다.
형아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둘째도 곧바로 아빠의 도움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항상 해왔다.
매년 물놀이를 하면서 물장구를 시켜봐도 몇 번 하고 그만두던 녀석들을 보며 '아, 오래 걸리겠네. 다른 집 애들은 잘들 하는데 왜 이럴까.' 하며 내 아이들을 의심했었다.
말을 배울 때도, 자전거를 배울 때도, 수영을 배울 때도 아빠는 의심하고 아이들은 자신의 '때'가 오면 항상 증명해왔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기다려주면 된다.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지만 그 기회를 살리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오롯이 아이들의 몫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부모가 할 일은 기회를 주고 믿고 기다려주는 것뿐이지 않을까.
물론 기다려주는 건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내 아이들을 의심하지는 말아야지 않을까.
오늘은 어질러진 녀석들의 책상을 봐도 잔소리하고 '왜 저럴까' 하지 말아야지.
언젠가는 스스로 책상 정리를 할 그 '때'가 올 테니 말이다.
물론 그전에 엄마, 아빠의 몸에 사리가 한 근은 쌓이겠지만.
#육아#물놀이#수영#자전거#기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