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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Aug 29. 2022

도서 리뷰 <하얼빈>

역사 속에서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온 안중근.

 김훈 작가님의 <하얼빈> 리뷰.


 요즘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는 거장 김훈 작가님의 신간 <하얼빈>을 읽었다.

 본래 실용서 위주로 편식을 하고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 편이라 내 돈으로 소설책을 산 것은 아마도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싶다.

 책 표지에 "<칼의 노래>를 넘어서는 김훈의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홍보 문구가 있는데 나는 <칼의 노래>도 읽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나에게 김훈 작가님의 대표작은 <하얼빈>이다.

 아니, 김훈 작가님뿐만 아니라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이 새로 나오더라도 나에게 대표 소설은 <하얼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른한 살 청년의 처연함


 알려진 대로 이 소설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예전 AOA의 참사는 잊자...)

  

평생 고통받는 중...


 역사책과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안중근은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바친 '의인' 그 자체였다.

 나와 같은 보통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용기의 화신, 일제의 서슬 퍼런 공권력 앞에서도 굽힐 줄 몰랐던 곧은 절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약지를 잘라 조국에 충성을 서약하는 혈서를 썼던 우국충정...

 나에게 안중근의 이미지는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얼빈>은 이렇게 누구나 아는 역사의 인물이지만 아무도 알 수 없던 서른한 살 청년 안중근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거사를 치를 당시 안중근은 서른한 살이었다.

 서른 하나.

 그 나이 때 나는 어떻게 살았었는지 뒤돌아 볼 필요도 없이 서른 하나라는 나이는 너무나도 꽃답고 혈기 왕성하지만 미성숙한 나이가 아니었나.

 나라는커녕 내 가정, 아니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버거운 때가 아니었을까.

 <하얼빈>의 안중근이라고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큰 뜻을 품었지만 그 역시도 미성숙하고 혈기 왕성한 청년이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하얼빈>에서의 안중근은 나에게 위인이나 의인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고통을 감내해가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제 아무리 조국의 독립에 내 한 몸 바칠 각오를 했다고 한들 거사를 치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두려움에 고통받았을지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그의 처연함이 느껴져 슬펐다.

 결말을 알고 있기에 그 결말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서른한 살 청년이 느꼈을 엄청난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안중근은 지역의 명망 있는 가문의 아들이었지만 거사를 치를 자금이 없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같은 조선인인 이석산을 위협하여 백 루블을 강취했어야 할 정도로 곤궁했다.

 거사를 치르기 위해 짊어진 마음의 무게뿐만 아니라 현실의 무게 역시 그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터.

 거기에 더해 거사 이후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안중근은 아내와 아이들을 하얼빈으로 불렀으나 거사를 치른 다음날 도착하여 끝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는데, 수감된 이후 동생과의 면회 자리에서 오히려 가족들이 늦게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제 때 도착해서 만났다면 아마도 이토를 쏘지 못했을 거라며 말이다.

 의인이기 이전에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서른한 살의 청년이자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꼈을 법한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져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하얼빈>은 비록 자신이 선택하긴 했지만 홀로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 했던 청년 안중근에 관한 기록이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거장의 노련하고 사려 깊은 문장들 속에서 역사 속의 위인이었던 안중근은 비로소 서른한 살의 청년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청년을 맞는 것은 반갑지만 고통스러웠다.

 작가의 말에서 이 이야기를 쓰던 작가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중략)
나는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면서 보냈다. 변명하자면, 게으름을 부린 것이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뭉개고 있었다.



고통스럽지만 응답해야 할 그의 말


 안중근은 김훈 작가의 손을 거쳐 <하얼빈>을 통해 역사 속에서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그의 말들은 우리에게 고통스럽게 다가오지만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 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와는 다른 '초인'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던 안중근은 그 처연한 무게를 홀로 감당해내며 대업을 이루었고 그는 그 대업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좇으며 어떤 대의를 위해 살아갈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르는 무게를 감당하며 걸어가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다.


 <하얼빈>의 안중근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찾고 그가 걸어오는 말에 나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온갖 무게를 감당해가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https://naver.me/xCiLwB6T


 1946년 7월 효창공원 이봉창 열사의 묘 옆자리에 안중근의 가묘가 마련되었으나 여전히 가묘 상태로 있다.

 속히 유해 송환이 이루어지길 빈다.   



◈ 한 줄 리뷰

    "거장의 손을 통해 역사 속 위인에서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온 청년 안중근 "



#하얼빈#김훈#안중근#이토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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