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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루트다 Dec 18. 2016

뒤집어 엎다(2)

(배경화면: by Karol Franks, flickr(CC BY), https://flic.kr/p/aw63hj)

뒤집어 엎은 뒤 잠시동안은 후련했다. 그동안 머릿속을 꽉 채워왔던 것을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후련함일까. 하지만 이내 이도저도 진척이 없는 박사과정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3일도 채 지나지 않아 후련함은 사라지고 두려움과 걱정만이 남았다. 

"이대로 그냥 주저앉을거면 공부를 시작도 안했겠지..."

마음을 다시 다잡고 뒤집어 엎은 문제를 조금 tweak해 Daniel이 괜찮다고 했던 방향으로 틀어보기로 하고, 일을 다시 진행했다. Papers에 정리된 논문들을 다시 살펴보고, Trello를 정리했다. 다행히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기술적인 문제에서 겪은 어려움이 많았기에 이번에는 오픈소스의 힘을 빌려 기술적인 문제를 많은 부분 해결했다. Concept을 잡고, 페이퍼프로토타입을 만들었지만 뭐랄까 '감이 안온다'라고 할까. 연구를 감으로 한다는게 웃기는 소리지만 가끔은 그런게 있다. Gut이라고들 하던가.. 결국 랩미팅 시간에 동료들의 힘을 빌려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다. 친절하게도 다들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지만,  다른 문제를 발견했다.  브레인스토밍에서 던진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연한고로 아이디어 또한 새롭지는 않았다. (물론 브레인스토밍의 목적은 질보단 양이다) 

질문이 모호한가... 질문이 잘못되었나?

이거 설마 연구의 애초 출발이 잘못된건가? 연구노트를 펼쳐 꽤나 앞부분으로 돌아갔다. 

내 연구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나의 연구노트는 다른 과학자들처럼 깔끔하진 않다 - 혹자는 그런게 있는 것이 어디냐라고 한다지만, 확실히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때문에 시작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잘 서술하기 위해선 이런 노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과학자들처럼 매일매일이면 좋겠지만 그러하진 못했다 - 뒤죽박죽으로 섞인 메모들과 스케치들의 집합이고 다행인 것은 내가 날짜를 매번 기록해놓은 것.. 날짜를 따라서 노트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한 장, 한 장 노트를 넘기다가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 질문이 무척 모호했다는 것이다. '그냥 이거 괜찮겠는데' 에서 출발해버린... 보통은 이런 아이디어가 지도교수와의 미팅시간에서 무참히 박살나곤 하는데, 우연히도 내 지도교수를 설득했고, 내가 그 끈을 놓지않고 쥐고있었던 터라 지도교수도 딱히 Cut하진 않고 방향을 선회하는 선에서 계속 내가 연구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있었다. 

하 이거 어떻게 해야한다.. 

난감하다. 이미 서부 어드매의 연구실에선 비슷한 주제로 학생하나가 논문을 발표한 터이다. 이 분야에서 그와 계속 경쟁을 할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무엇때문에 연구를 해야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이런 고민의 연속속에 Daniel의  parental leave마져 겹치며, 사실 나태해져갔다. 처음맡는 TA는 내게서 시간을 앗아 갔고,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Computer Vision수업에 오랜만에 학부3학년의 기분을 만끽하며 (정확히는 이러한 핑계속에) 고민이 머릿속에서 멀어져 갈 때즘 Daniel에게서 메일이 왔다.

Seyong,
I will be on Friday. Let's  meet at my office
-Daniel

이런!! 해놓은게 없는데 뭐라고 말한다!... 

MJ가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 하나있다면 매사에 솔직하게 정면돌파를 하기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뒤집어 엎었고, 다시 연구의 시작상태가 되어버렸다. Daniel은 내가 고민하게 놔두었고, 적지않은 시간동안의 고민동안 내가 내린 결론을 그와 얘기했다. 우연히도 그와 중에 (항상 그렇듯이)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다행히도 이번엔 그가 Why, How, Have you, What 등의 질문 공세를 넣어가며 내 연구의 시작을 같이 고민했다. 그리곤 또 다시 Technical한 문제에 봉착했다. 시작도 전에... 하지만, 이게 된다면 이건 내 dissertation의 chap3정도를 차지할 수 있을만한 문제다. 연구자가 뭐 또 다른 선택이 있나. 또 다시 문제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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