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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ug 12. 2016

조형아트서울2016 (PLASTIC ART SEOUL)

국내 첫 조형아트페어에서 만난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

<사진1> Artist KHAN(정석준), 야외욕조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7월 한여름, 코엑스 전시장에 희한한 풀이 등장했다. 빨간 재규어 오픈카 좌석에 물이 가득 찰랑거리고 파라솔과 와인까지 완벽하다. 이보다 황홀한 피서지가 있을까? ‘조형아트서울2016’에 참여한 아티스트 KHAN(정석준)의 ‘야외욕조’ 설치 작품이다.      


청작아트가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조형아트서울2016(PLAS)’이 지난 7월 20일(수)부터 24일(일)까지 5일 동안 코엑스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조각과 설치, 조형물, 미디어아트 등 입체 예술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조형아트페어이다. 이번 기간에 총 34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13여 가지 특별 기획 전시가 이루어졌다. 중견 작가의 정통 조형과 유리 공예, 미디어 설치작품 등 해외 유명 작품을 포함해 150여 명의 작가, 4,000여 점이 전시에 참여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4명의 장애인 입주 작가(고홍석, 김명아, 이동엽, 전동민)가 막 첫걸음을 디딘 조형아트페어에 동참했다. 전시 현장에서 조형예술계의 새로운 화합을 보여준 이들을 만났다.       


‘조형아트서울 2016’의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전시 전경
‘조형아트서울 2016’의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전시 전경




예술로 소통하는 장애예술가의 창작아지트     


서울문화재단의 장애 예술가 대상 창작공간인 잠실창작스튜디오는 매년 입주 공모를 통해 장애예술가를 발굴 지원하고, <굿모닝스튜디오>, <프로젝트A>, <쁘띠 풀놀이야> 등 각종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입주 작가에게 무료 개인 작업 공간과 전시, 교육 및 기획 프로그램 참여 기회, 스튜디오 대관과 장비 대여 등 여러 혜택을 제공한다. 입주 작가 신청과 자세한 안내는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www.sfac.or.kr)에서 알아볼 수 있다.  

  

고홍석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왼쪽 위) 인간계, 2016/(오른쪽) 축제의 하모니, 2016




공기를 조각하는 고홍석 풍선 예술가      


잠실창작스튜디오 부스를 가득 채운 노란 풍선 설치작품은 이번 아트페어의 상징이었다. 고홍석 작가의 ‘축제의 하모니’는 새로 출발하는 조형미술시장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작가는 군악대 연주에서 얻은 영감으로 호른 형태의 작품을 만들었다. 높이 11m에 이르고, 작품 위 천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의미하는 별을 달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작가가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었을까? 그는 아내의 꼼꼼한 설명을 듣고 형태를 완성했다고 한다. 작가는 소재 코팅 처리로 작품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을 고안해 다양한 풍선 설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20여 년의 풍선 아트 경력을 지닌 고홍석 작가는 2015년 잠실창작공간 입주를 계기로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풍선을 장난감으로만 생각하는 주위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 주로 대형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는 잠실창작스튜디오의 넓은 작업 공간을 가장 큰 혜택으로 꼽았다. 그는 2016년 장애인창작아트페어에 우수작가로 참가하는 등 풍선 아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 11월에 현대인의 자화상을 주제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작가는 조형아트페어로 조형 작품 판로가 새로 열리기를 희망했다.      


명아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왼쪽) 자기방어, 2013/(오른쪽 위) 아파트, 2015/(오른쪽 아래) 좌절에 빠질 때, 2012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김명아 작가      


인체 하반신 위에 여러 갈래로 촉수가 뻗어 나온 설치작품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김명아 작가의 ‘자기방어’이다. 작가는 딱딱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부드러운 흰색 천을 작품 소재로 삼았다.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인간 내면을 표현한 것일까? 설치미술가는 또 다른 직함인 미술 심리치료사 활동으로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이날 작가에게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김명아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2015년도부터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소통의 불가능성이 몰고 오는 감정과 상호 교감에 대한 다양한 드로잉 작업을 해왔다. 좋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청각장애인 작가의 예술 세계를 이루는 화두이다.      


작품 ‘좌절에 빠질 때(2012)’가 보여주듯이 ‘관계의 불통’에 대해 다루어온 작가는 2015년 ‘세뇌하는 헬멧’에서 그 차원을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시켰다. 안소연 평론가는 작가의 최근 작품이 SNS와 문자메시지 등 관계 연결 방식을 통해 청각장애 작가가 겪었던 한계를 일반인에게 그대로 재현하는 상황으로 해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인 감상자는 청각장애 예술가의 경험으로부터 각자의 소통 불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올해 12월에 ‘소통, 관계의 장치(가칭)’를 주제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동엽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왼쪽) 발, 2013/(오른쪽) 유기체 드로잉, 2015




뼛조각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형상화하는 이동엽 작가     


‘유기체 드로잉’ 연작에서 예술가의 땀이 연상된다. 가만히 응시하면 캔버스 위로 재료의 질감이 도드라지게 올라오고, 정지된 그림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동엽 작가는 먹 또는 잉크를 사용해 인체 드로잉 배경에 세밀한 뼈를 채워 나간다. 그가 그리는 뼈는 작은 세포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이동엽 작가는 12살 때 소아골종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런던 예술 대학교, 첼시 아트디자인 칼리지(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Chelsea College of Art and Design)와 고려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회화와 미술교육을 수학했다. 그에게 예술은 떨어져 나간 몸 일부를 채우는 과정이다. 그의 첫 전시가 ‘내 오른 다리’를 주제로 했던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작가의 유기체에 대한 사고는 메를로 퐁티(M. Merleau Ponty)의 논리에 닿아있다. 메를로 퐁티에 의하면 세계는 몸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또 하나의 거대한 몸과 같다는 것이다. 인체 내면을 표현한 그의 작품 또한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사회의 유기적인 조직을 의미한다. 작가는 재료 자체가 지닌 물 번짐 현상을 이용해 자동기술적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과정에서 주제가 의미하는 유기체의 특성이 발현된다.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문화+서울’(2015년 3월호)에서도 그의 유기체 드로잉에 대한 기사를 만나볼 수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를 기반으로 국내외에서 사유 깊은 예술을 펼치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전동민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오른쪽 위) 서울 전경, 2015/(오른쪽 아래) LA DISTANCE, 2015년




색채로 한국화의 새 영역을 시도하는 전동민 작가      


전동민 작가는 서울의 도시 풍경과 뉴욕 거리를 그만의 기법으로 재현한 연작을 선보였다.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그는 이미지를 색으로 전환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작 세계를 탐색해왔다. 작가에게 색으로 변환한 풍경은 현실 세계의 재현이 아닌 심상의 표현이다. ‘서울 전경’은 중심부의 강렬한 파랑이 노랑과 초록 배경색과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며 감상자에게 치유의 의미를 전달한다. 작가는 자연스러운 발색과 강렬한 색채 효과를 의도해 한지와 일본 가루 물감을 사용했다. 또한, 색을 겹겹이 덧칠하고 말리는 작업 과정을 통해 평면에 입체 느낌을 주었다.      


2015년부터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잠실창작스튜디오 공간이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도시 야경’으로 색에 대한 연구를 심화할 계획이다. 그는 검은색이 낮의 색깔보다 민감하므로 더욱 세밀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와 같은 젊고 신선한 시각을 가진 작가들의 약진으로 미술 시장에서 한국화의 가치가 새롭게 평가될 미래가 곧 올 듯하다.      


‘조형아트서울 2016’ 김홍년 AURELIAN(나비) 특별전시관 전경
‘조형아트서울 2016’ 대표전, 이이남, 2016 문명전투도– 스타워즈




조형아트서울 2016(PLAS) 특별 기획전      


회화 위주의 기존 아트페어가 복잡한 시장을 연상시켰다면, 이번 행사는 더위를 피해 시원하고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입체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였다. 유리,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혼합재료 등 조형예술 분야의 대표 작품들이 흥미로운 소재와 독특한 표현방식으로 관람객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이남 작가의 ‘2016 문명전투도’는 전통 산수도에 우주 전쟁을 접목한 미디어 아트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새로운 도약(NEW LEAP) 선정 작품- 조덕래, Enclose animal- Rhino, 2016
중견작가 기획전(Advanced Wave) 선정 작품- 김태순, 얼(고서, 훈민정음), 2015
‘조형아트서울 2016’ 조혜윤 입체 소녀상 그리기 체험 코너


청작화랑의 새로운 도약(NEW LEAP) 전시는 젊은 조형작가들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 외 중견 및 신진작가 기획전을 통해 새로운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조혜윤 작가의 입체 소녀상을 직접 그리는 체험 전시관은 아티스트에 도전하는 이들의 발길로 붐볐다. 참여자에게 자신의 손끝으로 작품을 느끼면서 예술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미디어 월(Media Wall)’ 특별전- 홍성대, 말조로프, 2015-2016
김서량, ‘도시의 소리(Sounds of the City)’ 가변설치. 2015
14인의 원로조각특별전과 외국유리조형특별전


그 외에도 음향 예술가 김서량의 개인 전시 공간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13인의 작품을 나란히 전시한 40m가량의 미디어 월(Media Wall)에서 조형 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예감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이름난 원로조각가 14명의 작품도 함께 공개했다. 이일호 작가의 ‘가족’ 등 노회한 예술가의 손길에서 국내 조형 예술의 역사가 느껴졌다.     


관람객이 ‘조형아트서울 2016’ 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조형아트페어의 바람대로 국내조형예술계가 새로운 화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 기존의 조각미술 시장과 달리 이번 행사는 판매 주체인 갤러리가 컬렉터에게 작품을 보증하고, 작가는 합리적인 유통 플랫폼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입체예술의 앞날이 밝아 보인다. 조형아트서울(PLAS)의 활약으로 작가와 감상자 모두 활짝 웃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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