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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Oct 18. 2016

엉뚱해도 괜찮아, 엉뚱해서 좋아~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 <가족보관함> 전시를 보고 엉뚱함에 빠지다.


평일 저녁에도 발 디딜 틈 없는 홍대 앞은 가족보다는 친구와 연인들로 북적인다. 그 인파 한가운데 가족을 주제를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프닝을 보러 사람들을 헤치고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찾았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전시 중인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 <가족보관함>은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 올림푸스 한국(주)의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다.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되면 금전적 지원(1,500만 원)과 올림푸스 카메라 1대(E-M5 Mark II 12~50mm EZ Kit -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필요시 올림푸스 카메라 최대 4대까지 대여 지원 가능)를 지원받을 수 있다. 기획이 좋다면 심사를 거쳐 지원금도 받고 카메라도 상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 게다가 두 번의 전시 기회까지!     


이 프로젝트는 작년에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구직을 원하는 청년들의 뒷모습 증명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고 전시로 선보이는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 <3×4cm: 우리들의 초상>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아 올해도 기대됐다. 이력서에 자신의 뒷모습의 사진을 붙이다니 기발하지 않는가?! 뭔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 같기도 한 신선한 발상에 많이 사람들이 호평을 보낸듯하다. 구직자의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에서는 분명 뜨끔했을 것이다(!)     


올해로 두 번째 진행하는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는 작년에 이어 등록금, 취업, 주거 등 ‘청년’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지난 6월 기획 공모를 열고 시각예술가 3명(김진의, 이현우, 조혜영)으로 구성된 ‘생색’팀을 선발했다. ‘생색’팀은 <가족보관함>이라는 전시와 <가족사진관>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청년들과 사진을 매개로 가족과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밖은 전시와 이벤트를 알리는 알록달록한 설치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필자가 전시장을 들어갈 무렵에도 한 무리 학생들이 안에서 진행되는 이벤트에 참여해 찍은 사진을 보며 웃으면서 나오고 있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오프닝 날이라 그런지 간단한 음식이 준비돼 있었고 사람들은 붐볐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두운 톤으로 작품에만 조명을 비춰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본격적인 작품 감상에 앞서 기획자들의 전시 서문을 읽어봤다.



우리는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삶을 시작하기 위해 대부분 우리는 가장 먼저 가족으로부터 떠나와야 했다. 떠나왔지만 변함없이 나의 가족인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왜 이렇게 없는 걸까? <가족보관함> 프로젝트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유롭지만 고된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물건들을 통해 가족을 떠올렸다. 내 가족이 이렇게 존재하고 기억되고 있었던가 싶을 만큼 사소한 물건들도 있었고, 너무나 익숙하게 집안을 채우고 있어 언제나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물건들도 있었다. 그렇게 꺼낸 물건들을 통해 각자가 가진 작고 큰 기억을 볼 수 있었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또다시 혼자만의 시간이 돌아올 것이고, 그럴싸한 모습이나 사연이 없어도 가족들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의 독립생활의 공간에 존재할 것이다. 그 흔적들을 모아 새로운 가족사진이자 나만의 가족사진으로 남겨본다.


- 생색




작가 노트를 보니 <가족보관함>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하는데 인물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족보관함> 전시는 청년들의 개인적 공간에서 가족을 떠올릴 수 있는 물건들을 모아 정물화-가족사진을 촬영해 그 안에 담긴 물건들에 얽힌 이야기들로 혼자 사는 삶과 독립, 가족의 의미에 관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가족과 얽힌 사연들을 사물에 투사, 전치 시킨 후 그 기억을 다시 불러들여 촬영한 것 같았다. 한참 보고 있으니 가장 개인적인 물건들이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비슷한 상상을 하게 되는 신기한 공감대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 관해 더 깊게 알고 싶어 전시장에서 작가와 대화를 나눴다.     


작가는 “각자 1인 가구로 살아가고 있는 미술, 촬영, 다큐멘터리를 전공한 작가들이 가족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양한 말이 오갔다”라고 했다.



‘1인 가구들은 왜 가족사진이 없을까? 우리에게 가족들은 어떤 의미일까?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것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며 가족사진의 엄숙함을 정물로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상적인 소소한 배경에 고전 정물화같이 찍어보면 블랙코미디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과 같은 형식의 사진이 됐다고 했다.      



또한 “물품보관함에 대한 아이디어는 미술관 물품보관함에서 아메리카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보고 이게 버리는 건지 소중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있다가 우리에게도 가족이 어쩌면 이런 의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가족보관함> 작품에 대해서도 작가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다양한 물건이 들어있는 가족보관함은 꽉 차있기도 했고, 불이 켜지거나 꺼져있기도 했다. 

누구는 항상 기억할 테고 누구는 기억에서 가물거릴 테고 누구는 그냥 두고 싶을 것이다. 보관함 찾는 열쇠를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로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짠해지기도 했다.

비어있는 보관함은 관람객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게 아닐까.



‘당신은 무엇을 넣겠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23명의 물건 중 일부를 추려 전시장 한쪽에 설치한 작품이다. 파노라마 사진과 청년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물건들과 마주하니 요즘 청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작가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촬영하는 집 대부분의 형태나 (경제적인)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참가한 사람들의 날 것의 삶을 들여다보니 문득 이 작가들의 팀 명인 ‘생색’에 대해 궁금해졌다.     



“청년 문제가 주제이다 보니 너무 우울해지지 말고 생색 좀 내고 살자고 날 생(生), 빛 색(色)을 합한 ‘진짜 색을 찾자’라는 팀 명을 지었다.”       




23명 자취인들의 공통점에 관해 물어봤다. 예상대로 혼자 사니 편하다는 것과 동시에 외롭다는 것. 또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지 물어보니 대부분 앞으로도 혼자 살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혼자 사는 비율이 늘어난다는 통계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최근 혼자 사는 프로그램이 인기라더니 다 이유 있는 공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쪽지에 적힌 말들은 가족과 소통하지 못(안)한 말들이 아닐까. 전시장에 그들의 말이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참가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인터뷰했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솔직한 말들에 20~30세대들은 많이 공감할 것 같았다. 대부분 혼자 사는 게 불안하지만 작게라도 만족하는 거 같았다.

전시장 중앙에 인터뷰 전문이 프린트되어 천천히 읽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도 들었다.     


전시장에서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과 잠깐 이야기 나눴다. 참가자는 대학교 4학년 학생으로 취업정보를 알아보다가 올림푸스 홈페이지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고, 이런 전시는 처음이라 낯설고 색다른 느낌이라며 일상적인 것이 작품이 되니 신기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재밌고 좋았다고 했다. 



전시장 안쪽에서는 전시와 연계해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가족사진관>은 전시장을 찾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 사진관이다. 온 가족이 함께 찍는 사진, 가장 아끼는 물건이나 소중한 친구, 반려동물과 찍는 가족사진, 그리고 1인 가족사진도 촬영할 수 있다. 전시장에 온 대부분 사람이 사진을 찍고 바로 인화해서 가져갔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이것 때문이었으리라. 

찍힌 사진은 추후 2차 전시(11월경, 올림푸스 펜 갤러리)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참가비는 무료.   

   

오늘날 젊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시대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의할 것이다. 이 전시는 가족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장(場)이 아니다. 질문을 통해 소통하는 생각의 플랫폼(platform)에 가까울 게다. 

소비가 미덕이기까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의 (버리지 못한) 사소한 물건들은 묘한 역설로도 읽혔다. 가격을 뛰어넘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과 관계가 아닐까.      


끝으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 중의 한 구절로 마무리한다.



인간과 사물은 우애 있는 ‘그리고’를 통해 서로 결부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트게는 이러한 개별적 공동체, 개별자들의 공동체가 네덜란드의 정물화 속에 예고되어 있다고 본다. “나는 ‘하나 속의 모두’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보면 실물과 똑같은 꽃들 곁에 여기는 딱정벌레, 여기는 달팽이, 저기는 벌, 저기는 나비가 앉아 있다. 비록 이들 중 그 누구도 다른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나는 순간 속에만큼은, 모두가 나란히 함께 있는 것이다.     






전시 정보

○ 참여작가 : 생색(김진의, 이현우, 조혜영)

○ 장소 :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6길 33) 

○ 시간 : 10.11(화)~10.23(일), 11시~20시.  촬영이벤트 14시~16시 ※월요일 휴무

○ 2차 전시 : 삼성동 올림푸스 갤러리 펜(PEN)(11월 11일(금)~26일(토)

○ 가족사진 무료 촬영 이벤트 온라인 신청 https://goo.gl/q3XHVr (당일 현장 접수 가능)

○ 기타문의 : 류재연 담당자 02-333-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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