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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Oct 20. 2016

국가의 눈에 비친 불쌍하고 불편한존재, 안티고네2016

달나라동백꽃 <안티고네 2016>



오래 전 안티고네 이야기에 왜 ‘2016’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까. 지금 당대의 이야기로 가치를 가지는 것일까. 안티고네를 여러 번 읽었고 다른 사람의 공연을 여러 번 봤지만 이번 작품은 다르다.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 오래된 <안티고네>를 꺼내든 '달나라동백꽃' 극단의 부새롬 연출의 해석이 새롭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주제가 '검열'인데. 


연출은 친절하다. 대체로 희랍비극의 맥락을 모르면 난감할 그 이야기를 오이디푸스 가문의 통사부터 설명해준다. 그런데 내가 알던 이야기랑 다르다. 멜로드라마인가?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남녀가 나온다. 물론 안티고네와 하이몬이다. 그 속삭임이 오늘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여자 안티고네에게는 고민이 있다. 덩어리. 형제간의 혈투로 목숨을 잃은 두 오빠, 그 중 한 오빠의 시체라고 생각하며 바라본 그 곳에 ‘덩어리’가 있었다. 오빠가 아닐 수도 있단 말에도 그 덩어리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안티고네가 무대의 주인공이다. 시체의 모습을 그저 덩어리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에 걸려든 한 사람이다. 

수많은 안티고네 공연이 '불의에 맞서는 전사 안티고네', '정의의 사도 안티고네', '천리를 따르는 안티고네' 정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트라우마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현대인 캐릭터다. 언제 우리가 트라우마를 깊게 성찰했던가. 사실 우리는 트라우마가 많은 민족/국가인데 마치 그런 건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산다. 6.25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명분 없이 적(敵)으로 지목되어 죽었고, 또 죽였던가. 이를 아직 치유하지 못한 나이 있는 세대의 논리가 지금도 횡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도 사실 트라우마의 당사자인데. 트라우마를 버텨보려는 어기짓인데...



이처럼 작품은 옛 이야기를 오늘 한국에 있는 현대인의 숙제로 바로 당겨온다. 트라우마에 걸린 안티고네를 어떻게 치유하겠냐고 묻는다. 우리는 과연 지금 이 시대에 치유될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서 연출은 이 작품을 '검열'이라는 페스티벌의 주제로 묶어 내려한다. 검열 이란 국가 이데올로기다. 그 안에 있으면 자유롭고, 밖에 있으면 불편해지게 만드는 커트라인(cut-line) 같은 존재다. 나가지 말라고, 행여 너의 자리가 밖이란 생각이 들면 돌아오라고 한다. 그리고 못 나가게 한다. 인간의 자유로운 생각은 필요 없다. 자유란 언제나 불편해야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자유 없이 살라는 것이 국가이데올로기니까.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예술가는 일상, 세계를 다르게 보기 때문에 예술가인 것을. 똑같이 보는 순간 예술가가 아닌 것을. 그렇기에 예술가의 감성과 표현을 기대하며 다른 세상을 함께 꿈꾸는 관객들이 있다는 것을. 그 분들도 알거라 생각한다. 예술가는 언제나 안티(anti)라는 걸. 또한 그 국가이데올로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지를.

부새롬 연출의 안티고네는 트라우마에 걸린 공주를 보여주고, 그녀가 커트라인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고, 그 과정이 곧 국가를 지키는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과는 엉뚱한 사람의 희생으로 비극이 된다. 안티고네, 하이몬, 에우리디케가 죽는 고전비극이 현대에 와서 일반인의 비극이 된다는 건 현대적이다. 물론 이는 고대 중국의 사마천 시대에도 있었던 '국가'의 방식으로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힘없는 깃털 자르기. 아, 이거로구나. 내가 함부로 꺾일 수 있는 깃털이란 존재임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로구나. 오, 정말 가벼운 나부터 깃털임을 알고 살아야지.



안티고네라는 작품을 단 네 명으로 무대화 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게다가 배우들이 훌륭하다. 누구 하나 뺄 수 없다. 마두영, 이지혜, 조재영, 노기용. 나이보다 더 많은 걸 표현할 줄 아는 젊은 배우들이다. 재주도 많다. 연기를 보고 그 노래를 듣는 게 즐겁다. 다음 세대 연극쟁이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지만 연극은 벌써 끝났다. 쉽게 만날 수없는 특별한 안티고네다. 조만간 더 다듬어서 무대에 올리리라 생각한다. 연출가 부새롬의 대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그 놈의 덩어리가 자꾸 내 맘에도 보이고, 눈 가리고 귀 막아도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말이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난 자유인이다.


[사진: 달나라동백꽃 제공]





박상준 영화감독

성북천변에서 막걸리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단편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최근에 만든 뮤지컬단편 <성북동막걸리>가 충무로 뮤지컬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페이스북에 연극 본 소감을 남긴다. 처음엔 어떤 작품을 봤는지 메모 남기는 수준이었는데, 글의 분량이 점점 늘고 있다. 연극을 보는 게 즐겁고, 연극평 쓰는 것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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