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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ug 11. 2015

한강의 백사장을 기억하시나요

1950년대 여름, 서울시민의 ‘핫’한 피서지 한강

1950년대 여름, 서울시민의 ‘핫’한 피서지 한강

한강의 백사장을 기억하시나요



요즘은 여름 휴가철이 되면 바다와 계곡으로 피서를 떠나는 차량으로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습니다. 또 해외여행을 가는 인파로 공항도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만큼 삶에 여유가 생긴 거죠. 멀리 떠나지 못한 사람들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서울 근교 ‘워터파크’를 찾습니다. 다양한 물놀이 시설이 갖춰진 워터파크는 온 가족이 하루를 보내기 좋은 장소지만 오가는 길이 막혀 짜증 나기 일쑤고 돈도 많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피서(避暑)를 즐기기에는 옛날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부유층 사람들은 바다로 휴가를 갔지만 서울시민 대부분이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며 여름을 났으니까요. 강물이 지금처럼 오염되지 않아 깨끗했고, 수영장 입장료도 받지 않았습니다.물론 수영복을 갈아입고 몸을 씻기 위해 탈의장과 샤워장을 이용하고, 튜브 등 물놀이 기구를 빌리고, 냉차와 군것질거리를 사 먹으려면 돈이 들었겠지만 그리 많이 들진 않았을 겁니다.



<사진1> 1950년대 노들섬 근처 한강 백사장의 여름 풍경. 공원과 수영장으로 개발된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여름, 물놀이와 데이트의 중심지 ‘한강변’



지금은 광나루, 잠실, 뚝섬, 잠원, 여의도, 망원 등 한강시민공원에 수영장이 마련돼 있지만 1950년대에는 강에서 수영을 했습니다. 당시 노량진 건너편 제1한강교(현 한강대교) 아래쪽과 뚝섬, 광나루 등에 꽤 넓은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한강변 백사장은 약 800만였다고 합니다. 광나루와 양화 나루터, 용산, 마포 부근에 백사장이 펼쳐졌습니다. 또 지금 압구정도 당시는 온통 모래밭이었습니다.


<사진1>은 1950년대에 서울시민들이 제1한강교 아래 노들섬 근처 백사장에서 피서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많은 시민이 몰려들어 백사장이 복잡합니다. 대부분 수영복을 입고 있지만 옷을 입은 채 백사장을 거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네요. 


강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다리 쪽에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높은 망루가 설치돼 있습니다.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이 몰리다보니 사고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1955년 7월 31일자 한 신문에 “서울시 주변 한강에는 연일 물놀이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거니와 이번 여름 들어 무려 57명의 남녀가 수중사고로 익사했다. 7월 30일 현재 서울시경 통계에 의하면 익사자의 80% 이상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아동과 중·고교생이었다”는 기사가 나와 있습니다.으로 개발된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일부 학생들의 탈선도 주로 여름철 한강에서 일어났습니다. 또 다른 신문에는 “한강 수영장에서 반나체의 남녀 학생들이 쌍쌍이 모래사장에 뒹굴면서 불미스러운 교제의 찬스로 이용하고 있다” “건전한 오락을 즐기는 일부 학생까지 피해를 입게 하는 추잡한 남녀 학생의 한강 수영장 추태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등의 기사가 쓰여 있습니다. 기사를 보면 학생들의 비행이 극에 달한 것 같지만 그때는 남녀 학생이 수영복 차림으로 같이 앉아 있기만해도 ‘불미스러운 교제’로 봤을 겁니다. 요즘은 수영장에서 젊은 남녀가 끌어안고 있거나 지하철에서 입을 맞춰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니 격세지감이느껴집니다.


성인들의 풍기문란도 문제였나 봅니다. “한강의 풍기문란이 말이 아니다. 수일 전 백주 벌거숭이 수십 명이 유치장행을 했으며 매춘부들이 한강으로 집결, 심야의 뱃놀이를 했다. 한강의 밤 뱃놀이를 ‘유숙계(留宿屆) 없는호텔’이라고 한다. 이에 부근 주민들이 당국에 단속을 요청했다”는 기사를보면 당시 상황이 짐작됩니다.



<사진2> 한강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강과 삶이 더욱 가까웠던 시절의 풍경



또 한강에 배를 띄워 빨래터를 마련해놓고 사용료를 받기도 했답니다. 당시 한강 한복판 빨래터 사용료가 30환이었다고 합니다. 삶아주는 비용은 최고 700환이었고요. 이 사업은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하루에 5000환을 버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사진2>는 한강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서로 물을 튀기며 노는 모습입니다. 수영모까지 갖춰 쓴 얼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뒤쪽에 서 있는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챙기느라 한복에 양산을 쓴 채 발만 물에 담그고 있네요. 요즘 여성들은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고 자신의 몸매를 뽐내지만 당시 여성들은 몸을 최대한 가리는 게 미덕이었지요. 물 튀기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걸어오는 여성이 입은 수영복이 당시 표준이었을 것 같네요. 


한강에서 수영을 하던 풍경은 1960년대 중반 한강 개발이 시작된 이후 모두 사라졌습니다. 준설작업으로 수심이 깊어졌고, 백사장은 콘크리트로 덮였으니까요. 한강이 개발되며 공원과 운동시설도 생기고 자로 잰 듯 깔끔해졌지만, 주변 풍광은 자못 삭막해졌습니다. 인심도 환경만큼 많이 망가졌고요.


지금은 대부분 70세가 족히 넘었을 사진 속 피서객들은 그때가 정말 그리울 것 같습니다.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 이 글은 「문화+서울」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은 서울에 숨어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서울」에 실린 글과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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