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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ug 24. 2015

‘한국 대표 뮤지컬’의 위엄

뮤지컬 <명성황후>와 <맨 오브 라만차>


7월 말에 나란히 개막해 8월부터 본격적인 공연에 돌입하는 뮤지컬 <명성황후>와 <맨 오브 라만차>가 각각 올해 20주년과 10주년(한국 초연)을 맞았다. 창작 뮤지컬, 라이선스 뮤지컬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국내 마니아 층을 형성한 라이선스 뮤지컬로서 국내 뮤지컬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공통적인 평을 받고 있다. 여러모로 흥미롭게 비교해볼 수 있는 지점이 많은 두 작품이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한 장면.


연출가의 힘 VS 프로듀서의 힘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상징과도 같다. ‘뮤지컬계의 대부’로 통하는 연출가 윤호진 에이콤 인터내셔날 대표(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원장)의 상징 작품으로 1995년 명성황후(1851~1895) 시해 100주기를 맞아 초연됐다. 이후 1997~98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2002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했고, 2007년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09년 12월에는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중 처음 1000회 공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는 윤 대표의 뚝심에 빚진 부분이 많다. 대중에게 뮤지컬이라는 개념조차 낯선 20년 전에 연출가로서 자존심을 걸고 ‘한국형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공연 문법을 새로 써왔다. 반면 2005년 국내 초연한 <맨 오브 라만차>는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 프로듀서의 콘텐츠 기획에 힘입어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2001년 설앤컴퍼니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초연이 크게 흥행하면서 국내 뮤지컬 산업의 기반이 닦였고 좋은 라이선스 뮤지컬이 잇따라 선보였다.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와 함께 프로듀서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신 대표는 ‘뮤지컬계 돈키호테’로 통한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주인공 ‘돈 키호테’처럼 꿈을 품고 저돌적으로 일을 밀어붙이기 때문에 붙은 별명인데 <맨 오브 라만차>는 세르반테스와 그의 ‘돈키호테’에서 모티프를 얻은 뮤지컬이다.



명성황후 역으로 명연이 기대되는 신영숙(사진2)과 김소현(사진3).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두 남자 배우, <맨 오브 라만차>의 류정한(사진4)과 조승우(사진5).


처음 주역 나서는 여자 주인공 VS 한국 프로덕션을 대표하는 남자 주인공



<명성황후>와 <맨 오브 라만차>에는 내로라하는 남녀 뮤지컬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특히 타이틀롤(‘맨 오브 라만차’ 자체가 돈키호테를 가리키는 말이니 타이틀롤로 통용하겠다)을 맡은 배우들 각자에게도 작품의 의미가 남다르다. 두 작품 모두 타이틀롤은 더블캐스팅이다. 명성황후 역은 김소현과 신영숙, 돈키호테 역은 류정한과 조승우가 번갈아 연기한다. 재미있는 지점은 김소현과 신영숙은 명성황후를 처음 연기하는 것이고, 류정한과 조승우는 과거 이 역을 맡아 스타성을 과시한 배우라는 점이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른 김소현은 이후 다양한 역을 맡아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뒤 연기가 깊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엄마, 여자, 국모 등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하는 명성황후는 김소현의 연기와 노래의 ‘종합선물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영숙에게도 <명성황후>가 특별하다. 성악가로 활동하던 그의 뮤지컬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1999년 이 작품에 앙상블로 출연했던 그는 당시 회식 자리에서 윤 연출에게 “나중에 명성황후를 연기”하겠다고 단언했고, 16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꿈을 이뤘다. 드라마틱한 가창과 발성이 장점이라 명성황후의 다양한 면모를 잘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소현, 신영숙 모두 성악 기반의 뮤지컬 배우라 오페라 분위기의 <명성황후> 넘버들은 한층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류정한과 조승우는 수많은 인기작에 출연했지만 <맨 오브 라만차>는 특히 이들을 스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킬 앤 하이드> <스위니 토드> <엘리자벳> <두 도시 이야기> <팬텀> 등 한국 라이선스 초연작에 잇따라 캐스팅되며 ‘초연 총알받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류정한은 2005년 역시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초연한 <맨 오브 라만차>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관록이 붙어 어느 때보다 노련한 돈키호테가 기대된다. <지킬 앤 하이드>로 더 유명하지만 뮤지컬 스타 조승우에게는 <맨 오브 라만차>가 더 각별한 작품이다. 계원예고 입학 전인 중학교 때 친누나(조서연)가 이 작품을 공연하는 것을 본 뒤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룰 수 없는 꿈’(<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곡)을 품고 뮤지컬 배우가 되고자 한 조승우는 2007년 마침내 돈키호테를 따냈다. 이후 이 역을 맡을 때마다 그가 혼신의 힘을 쏟아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별적으로 이런 차이점들이 있지만 두 뮤지컬 모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소설 속 캐릭터, 역사적인 인물(참고로 ‘명성황후’는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이 원작이다)을 한층 깊게 바라보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돈키호테는 허무맹랑한 몽상가가 아닌 ‘꿈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정치적인 악명으로 이름났지만 명성황후는 사실 ‘인간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인간’ 자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한국풍 오페라의 진수(<명성황후>), 플라멩코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이국적이면서도 웅장한 음악(<맨 오브 라만차>)은 그 생각에 방점을 찍는다.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에이콤인터내셔날, 오디뮤지컬컴퍼니



* 이 글은 「문화+서울」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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