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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pr 19. 2017

내가 고른 서치라이트

‘극장’에 던지는 물음표

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2017(Search Wright)는
지난 3월 14일부터 8일간
모든 창작 전 단계,
제작 과정에 있는 미완,
미확정의 무대를 선보였다.     

나의 삶은 ‘공간’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곤 했다. 많은 설명을 하진 않아도, 묵묵하고 묵직하게 무언가를 선택하도록 도왔고, 방향을 제시했다. 난 그런 방식이 좋았다. 우린 끝없이 상호작용 했다. 그래서 그 어떤 공간이든, 모든 공간은 나에게 소중하다. 그렇게 문득 집어 든 ‘극장’에 관한 서치라이트, ‘Big Democracy Project : 민주주의의 극장, 극장의 민주주의’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 남산’ 그리고 ‘Turn Leap : 극장을 측정하는 작가들’를 공유하고자 한다.  

그보다 앞서, 당신에게 극장은 어떤 곳인가? 당신은 극장에 왜 가는가? 당신은 어떤 극장을 꿈꾸는가?   


① ‘없다’ 가도 ‘있는’ 극장, NTW(National Theatre Wales


어디든 극장이 될 수 있는 NTW, 숲속에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도 예외는 아니다.(출처: 사이먼 코츠의 유투브 영상  중)


“물리적인 극장은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죠.”  

나이트클럽, 버스정류장, 기차역 등 마을의 구석구석이 극장인 곳. 그리고 ‘나’와 ‘이웃’, ‘공동체’가 고민하는 모든 것들이 무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고 소품이고 관객이 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영국 남서부의 웨일즈의 극장 없는 국립극장(NTW, National Theater Wales) 이다.


웨일즈 국립극장이 그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극장에 대해 발표 하는 사이먼 코츠 (출처: 남산예술센터)


‘진짜’ 웨일즈의 풍광이 담긴 무대를 꿈꾸다


NTW의 수석 프로듀서 사이먼 코츠(Simon Coates)는 설레는 표정으로 NTW를 기반으로 시작된 작지만 큰 움직임, ‘Big Democracy Project’ (이하 BDP)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웨일즈의 지역주민들은 지역 현안과 지역 내 발생하는 문제들을 바탕으로 무대를 만들어 나간다. 정치가 자연스레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는 모습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SNS를 활용하기도 한다. 검열은? 없다. 주민들과 전문 배우는 카페에서, 해변에서 함께 의회(Assembly)를 형성해 지역 현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는 지역주민의 목소리가 오고 가는 중요한 소통의 장이 된다. 


의회를 거쳐 완성되는 무대 (출처: 사이먼 코츠의 유투브 영상  중)


2011년, 의회를 거쳐 NTW의 대표적인 거리공연 <The Passion>이 탄생했다. 웨일즈 탈보트 지역을 배경으로 한 <The Passion> 에는 Local Performers 라 불리는 지역주민 1000여 명이 참여했다. 또한 항구도시 탈보트가 철강 산업으로 부흥할 당시 오염, 미관 문제에 관한 주민들의 고민도 녹여냈다.


예술을 통해 새로운 ‘행위’를 불러일으키다


BDP와 가장 중요한 참여주체인 지역주민들(Local Performers) 은 현재 웨일즈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슈와 문제, 즉 ‘동시대성’을 반영한 예술을 창조했다. 


소말리아 난민 출신인 ‘알리’ 또한
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웨일즈 카디프 지역에서
자신과 친구들이 겪는 일들을
이야기 한 <I’ll Belong There>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해적이 아닌 시인이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난민 출신 알리의  , 그리고 이에 참여하는 지역 주민들 (출처: 사이먼 코츠의 유투브 영상  중)


지역 주민들은 공연예술을 통해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게 됐다. 내 집 마당에서 나의 이웃과 함께 말이다.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부터 주민들은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실현할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삶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극장 없는 극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주민들의 또 다른 경험을 기대해본다.


                                        무대를 직접 기획하고 준비하는 지역주민들


② ‘있다’ 가도 ‘없는’ 극장  

선풍기를 쓰러트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극장의 '판타지성' 을 이야기 하고 있는 정세영 안무가 (출처: 남산예술센터)


“이것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안무가 정세영은 활발히 날개 짓을 하고 있는 선풍기를 차례대로 쓰러트린다. 선풍기들은 하나 둘 제각기 다른 리듬과 파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작가는 내려놓은 선풍기의 전원을 뽑는다. 날개의 미세한 바람도 공기도 소리도 이내 차분해진다. 정세영 작가는 극장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연구했다. 극장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즉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 ‘신의 기계적 출현’을 뜻하는 라틴어로 극 중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종결짓기 위해 외부의 초월적인 힘을 빌려 이야기를 종결하는 것을 뜻함.


여기는 Classic Jazz Rock,
CJR 극장입니다.
극장에 오신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극장 밖으로
나가 알약을 드시고 오시면 됩니다. 

이어서 깜깜한 스피커에서 유유히 들려오는 낯선 이의 지시. 어리둥절해하며 인파 속에 몸을 실었다. 알약이라니, 비타민인가? 하며 호기심과 의심 섞인 표정으로 알약을 물에 꿀떡 삼켰다. 의문의 알약을 복용하며 십 여분이 흐르고 다시 CJR 극장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불이 꺼지고 큰 화면 속 3D 영상이 펼쳐졌다. 이 영상은 안무가 차지량 작가의 내레이션과 함께 공공극장으로써의 남산예술극장에 질문을 던진다. 남산 전체가 극장이 되는 장면도 있었다. 이는 양은혜 기획자와 5명의 작가가 올해 하반기 선보일 ‘극장 리서치’의 일환으로 진행된 퍼포먼스였다.


'Classic Jazz Rock 극장' 에 대해 관객들에게 설명중인 차지량 작가 (출처: 남산예술센터)


당연하고 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저희가 극장에 주목한 이유는, 극장이 어떤 껍데기 같다고 생각했어요. 국내에서 예술을 접하다 보면 예술가 위주가 아닌 공간 위주인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갤러리, 미술관, 극장 같은 공간에 ‘들어가야’ 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에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극장에 대한 불만을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싶어요. 관객은 극장에 어떤 생각으로 찾아오는지, 극장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것을 잘 성취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극장을 아카이빙 하다


이들은 극장의 물리적인 형태 그리고 극장이 주는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평면의 무대가 알게 모르게 예술가들로 하여금 정면 성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그들의 ‘뒤’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극장을 보다 입체적으로 활용해보고자 시작된 ‘극장 리서치’는 공공극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기록하고 남김으로써 재사용되기를 희망한다. 
  
한 시간 여 짧고 굵게 극장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한 관객은 “낯설게 잘 봤어요. 저 또한 극장에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극장 밖에서 알약을 복용하고 결국 다시 극장 안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좀 의아했어요. 이 공간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나? 꼭 관객이 공간으로 들어와야 하는 건가, 예술가들이 직접 관객을 찾아갈 수는 없나? 싶었어요.” 라며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공감한다. 그럴수록 하반기에 완성될 ‘극장 리서치’ 가 궁금해진다. 


<서치라이트2017> 포스터


서치라이트가 비출 내일의 ‘극장’


웨일즈의 NTW처럼 극장은 있다가도 없이, 우리 주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기도 하고, 반대로 논의가 펼쳐졌던 공공극장, 남산예술센터처럼 눈에 보이는 물리적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미완성된 형태로 존재한다.

지난겨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볼 수 있었던 블랙텐트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이해성 극장장은 BDP의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블랙텐트는 두 달여 동안 정부에서 제외된 공연을 선보이며 고민을 나누고 정권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동시대의 ‘사회’와 ‘인간’을 묻지 않는 공공극장의 대안으로 추운 겨울 내내 시민들과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존재했다. 

두둥실 떠다니는 극장? 누워서 볼 수 있는 극장? 거꾸로 서있는 극장? 무엇을 상상하든 좋다. 그러나 극장은 이와 같은 ‘형태’의 문제를 뛰어넘어 어떤 가치를 전달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마주해야 한다. 스산한 바람이 볼을 스치더니 어느새 포근한 햇살이 반기는 ‘봄’ 이 왔다. 여전히 마주하고 풀어야 할 숙제들, 들어야 할 목소리가 많다. 미완의 서치라이트가 이야기 한 미완의 극장,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 발돋움에 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퍼포먼스를 행하고 지켜보고 기록한, 오늘의 우리가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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