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작가가 발견한 공간, 관계, 치유
사람은 공간과 관계하며 살아간다. 물리적인 외부 공간과 관계하지만, 정신적인 내면의 공간과도 소통하며 삶을 형성한다. 당연한 말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그것은 각각의 특별함이 된다. 여기 작가 6명이 모여 각자의 공간, 관계, 치유를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곳이 있다. 4월 12일부터 29일까지 기획전 <마주한 공간>을 선보이는 서울예술치유허브(이하 ‘허브’)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봄은 그 자체로 지구가 ‘선물하고 있는 강력한 치유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허브’ 건물 앞에 와 있었다. ‘허브’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 창작 공간 중 하나로, 이름처럼 ‘예술치유’에 중점을 두고 여러 가지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창 진행 중에 있는 전시인 <마주한 공간>을 관람하러 2층에 있는 전시관 ‘갤러리 맺음’으로 올라갔다.
마음속 상처가 생겼다.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평범한 풍경들이 특별하게 다가와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아물게 하였다.
손효일 작가는 여행 중에 뜻밖의 풍경을 보며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을 치유한 풍경 앞에 마치 유령처럼 투명하게 서 있다. 왜일까. 우리는 한 번쯤 손효일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절친한 지인보다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했을 때 응고된 상처가 녹아내리는 뜻밖의 순간을 경험한다. 때론 다시는 안 봐도 될 사람, 안 가도 될 공간, 자신이 끊임없이 관계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 우리는 부담 없이 마음을 연다.
하염없이 걸으며 잔잔해진 거리를 스스로 반성하며 반영된 이 강가를 걷는다.
황필주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도시를 걷는다. 그리고 특정 공간에서 마음이 동요되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작가가 표현한 강가에 비친 도시와 하늘을 집중적으로 바라봤다. 그 풍경에 매혹되는 것을 넘어서 작가는 ‘스스로 반성’까지 했다고 한다. 말 없는 공간과 풍경이 한 사람을 저절로 반성에 이르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공간의 힘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상상이 공간을 ‘나’라는 사람에게 맞게 변형시킨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걷고 있으면, 눈앞의 모든 공간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자체 편집되는 순간이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는 그 순간에 굉장한 위로를 받는다. 단, 마음과 풍경이 공명할 때에만 그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정작 빛나야 할 곳에는 적막이 돌았다. 그곳에 존재하며 가상의 벽화를 그려내는 작업을 했다.
조혜우 작가는 이화마을을 탐방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거리를 걷다가 조금만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적막한 분위기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 사진을 찍고, 크레파스로 자신만의 벽화를 그려냈다. 그 적막함이 작가의 마음과 닿아서였을까? 작가는 화려한 색으로 가상의 벽화를 칠했지만, 결코 그 적막을 가릴 수는 없었다.
장소 혹은 공간에 대해 흐려지거나 잊어버렸던 지난 기억의 장소를 재현하였다.
흡사 인상파가 그린 그림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사진이었다. 작가는 카메라 앞에 물을 흐르게 한 다음 셔터를 눌렀다. 마치 비 오는 날, 자동차 안에서 창밖으로 풍경을 볼 때처럼 박경태 작가의 사진은 윤곽선의 경계가 사라지고 오로지 감각에 의존한 자연만이 남아있었다. 같은 장소라도 경험의 무게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작가는 내면에 존재하는 기억의 장소와 현재의 장소 간의 시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표현 방법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보게 된다.
마음 그윽이 깊은 곳에 있는 동경이 마치 벽에 투영되는 것 같다.
찢기고 허물어지고 덧대진 오래된 벽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스토리가 되고, 훌륭한 구성의 미술작품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김지영 작가는 이러한 오래된 벽에 주목했다. 소재는 낡은 것을 선택했지만, 그 표현 방법은 굉장히 화려했다. 마치 백 년 동안의 봉인을 풀고 승천하기 직전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벽 같았다. 작가는 벽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는데, 그것은 보는 이마다 각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보이는가.
바다는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하며, 우리 인간의 삶을 대변하듯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준다.
바다의 바위를 찍은 작품인데, 마치 구름 위에 검은 새가 있는 것 같다. 무언가 현실의 구체적인 공간보다는 초월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한 것 같았다.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감정이 자꾸 막연하고 아득해진다. 바위가 내면의 상처처럼 보이기도 하고 고독한 외딴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상처는 겉으로 드러내는 그 자체만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그렇게 바위는 묵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 전시 <마주한 공간>은 2017 서울예술치유허브 갤러리 맺음 후원 공모에 선정된 전시다.
서울예술치유허브 <마주한 공간> 展
- 김지영, 박경태, 손효일, 조혜우, 최수정, 황필주
2017.4.12.(수)~4.29.(토) 10:00~18:00
서울예술치유허브 2층 갤러리 맺음(성북구 회기로3길 17)
02-943-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