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센터 <PLAY UP 아카데미> 현장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 자리한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 룸에서는 하나둘 도착한 연극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이들은 연극인 재교육의 장인 ‘PLAY UP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연극인들이다. 몸을 푸는 연극인들 사이에는 이날의 강사인 고재경 마임이스트도 있었다.
<PLAY UP 아카데미>는 올해로 6년째이며, 4월 17일을 시작으로 9월까지 총 10개의 정규, 심화 과정이 주제별로 진행되고 있다. 첫 강의는 ‘움직임의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주제로 8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필자가 방문한 날은 강의의 두 번째 세션인 ‘중력의 이해와 몸의 조정’ 시간이었다. 다양한 움직임의 호흡으로 채워진 세 시간의 여정을 고스란히 따라가 보았다.
사람들이 만국 공통어가 마임이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몸 자체가 만국 공통어에요.
동작의 흉내가 아닌 움직임의 본질을
찾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이야기와 함께 첫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몸을 한껏 말아서 구르며 도는 동작이었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쿵’ 없이.”라고 반복되는 마임이스트의 주문에 따라 몸의 흐름을 이해하며 동작을 이어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사뭇 진지했다. 끊임없이 구르는 몸의 흐름, 이어서 주어진 미션은 ‘원심력을 기준으로 도는 것’. 몸을 움츠린 상태에서 원심력을 찾는 것은 경력 5년 이상인 베테랑 배우들에게도 쉽지 않아 보였다.
다음으로 주어진 움직임의 신호는 “일어나세요.” “세우세요.” 와 “무너지세요.” “쓰러지세요.” “넘어지세요.” 였다. 얼핏 동작만 보면 유사할 것 같은 것이 동사에 따라 그 주체와 흐름이 변화한다는 인식을 부여하는 순간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은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어나는 것과 세우는 것은 다르죠.
무너지는 것과 넘어지는 것 역시 달라요.
주체의 감정과 동기가 다르기 때문이죠.
일어섬과 무너짐의 움직임
일어섬과 무너짐의 움직임은 몸의 중심을 말고 펴는 동작으로 표현되어졌다. “바닥에 껌딱지처럼 ‘철썩’ 붙어라.”는 말과 함께 고재경 마임이스트는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듯 먼저 시범을 보였고, 강사의 주문인 ‘철썩’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움직임의 느낌을 따라 배우들 역시 움직였다. 이와 같은 동작을 바닥이 나를 끌어당기듯이, 바닥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듯이 표현해보고 팔과 다리를 누군가 끌어당기듯이, 혹은 내부의 어떤 광선이 밀어내듯이 움직여보며 밀고 당기는 방향성에 따라 같은 동작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한 움직임
첫 움직임 후 잠깐의 쉬는 시간에 연극 경력 5년차 배우 이가연 씨는 “동작 자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의 성격과 원리를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아 좋아요. '밀당' 의 원리를 몸으로 이해해보는 시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짧은 휴식 후 두 번째 움직임은 보다 부드럽고 연결적인 느낌으로 시작되었다. ‘가져오다, 뿌리다, 보내다, 감싸다’라는 연결의 의미를 가진 동사들과, 앞서 했던 동작들이 같이 섞으니 마치 춤을 추는 동작이 완성되었다.
모든 춤은 일상의 행동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고스톱을 칠 때도
패를 모으고, 다시 나눠주고,
거두고 하잖아요.
설거지할 때도 마찬가지죠.
그릇을 가져오고, 감싸듯 씻고,
다시 물로 내어놓지요.
이런 일상 동작을 연결하면
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말을 들으니 스페인에 살 때 플라멩고 춤의 손동작을 설명하면서 “사과를 나무에서 따고, 입으로 먹고, 버리는 동작의 연결”이라고 설명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전 보다 자유로워진 움직임 이후, 마무리 움직임은 이날의 주제인 ‘중력의 이해와 몸의 조정’을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중력을 믿고 흘러가기’라는 미션은 단순히 보면 그저 바닥을 굴러가는 것이지만, ‘꿈꾸지 말고, 의미부여 없이 동작 자체와 중력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라는 전제조건을 통해 움직임의 무게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고재경 마임이스트는 매 순간 참여자들이 그 조건을 놓치지 않도록 문장을 반복했다.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단순한 동작 같지만,
호흡이 살아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움직임이 될 수 있어요.
최대한 중력을 받아들이며 흘러가는 동작과 중력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흐름으로 나아가는 동작을 통해 그 둘 사이의 차이를 몸에 새기는 것으로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중력을 거부하는 동작에서 손과 발을 바닥에서 떼고 최대한 몸의 적은 부위만을 바닥에 붙어 흐르는 움직임을 힘겹게 보여주었던 배우 장영철 씨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감정과 형태가 아닌
운동성과 호흡이 상황을 만든다는 자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같은 중력대에 배우나 관객이 있기 때문에 중력의 흐름에 따른 움직임을 제대로
표현할 때 관객도 정확하게
그 움직임을 이해한다는 것이죠.
고재경 마임이스트는 ‘움직임은 꿈틀거림’이라고 정의했다. “살아있다는 것이죠. 죽었나? 살았나? 를 확인할 때 우리는 움직임을 보잖아요. 모든 순간은 움직임이고, 그 움직임의 원리를 아는 것이 특정 동작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배우 최희진씨는 학교에서 졸업한 이후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에요. 나의 움직임이나 연기의 매 순간을 인식하던 때로 돌아가는 듯해서 힘들지만, 기분 좋은 경험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연극인 재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PLAY UP 아카데미>는 올해 연출 분야를 넘어 극단에 실질적 액팅 코칭까지 포함하여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앞으로 다양한 주제 안에서 참여하게 될 연극인들에게 교육뿐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는 재창조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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