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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과의 대화

구은정 개인전 <떨어진 것과 빛나던 것과 잊혀진 것>

by 서울문화재단
찰칵! 우리는 어딜 가나 찰칵,
하고 사진을 찍어댄다.
군침이 돌 만큼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서, 이지러지는 태양
아래 빛나는 한 폭의 풍경
앞에서, 때로는 그냥 하늘빛이
예뻐서, 참 많이도 찍어댄다.
삶은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사라질 것들과
찰나의 순간을 보면서
우리도 모르게 무엇인가
기록을 남기려고 든다.
글을 쓰거나 수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행위들을 단순히
역사기록의 현장이라고
시시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사라질 것들에 대한
나름의 애정 어린
제의라고 해두자.
6월 18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예술치유허브’에
전시되는, 흩어지고 옅어지는
모든 것들을 설치예술로
표현하는 구은정 작가 개인전
<떨어진 것과 빛나던 것과
잊혀진 것>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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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부터 시작해, 한 달도 채 되지 않고 이내 흐드러져 버리는 벚꽃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일렁이다가도 씁쓸해지곤 한다. 이렇게 빨리 져버릴 거 왜 그리도 찬란하게 폈을까 하는 생각에 그 순간을 잡아두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게 나뿐 만은 아니었는지, 구은정 작가는 실에 벚꽃잎 물을 들인, 수양버들을 연상케 하는 ‘벚꽃이 진 자리’를 전시했다.


Q. 벚꽃잎으로 작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다른 꽃보다 유독 빨리지는 벚꽃을 주워서 몸에 새기듯 실에 물들여 봄날의 느낌을 그대로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을 정말 많이 (웃음) 주워 담아 염색했죠. 그런데 지금 이 색은 처음의 색이랑 많이 달라요. 처음에는 분홍색이 나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바래더라고요. 근데 오히려 이런 색감의 변화가 작품을 잘 드러내 주는 것 같아서 좋아요. 그것 역시 사라지는 거니까. 이 색감도 여러 번 시도 끝에 나타난 건데요, 백반으로도 염색해봤는데 그렇게 하니까 이상한 초록색으로 되더라고요. 그다음에 식초와 물을 1:1비율로 맞춰서 염색했더니 색이 예쁘게 잘 나왔어요.

Q. 벚꽃잎 물든 실을 이용해 다른 전시에서는 관객들에게 퍼포먼스를 하신다고요?
네, 작품과 연결해서 하나의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가방이나 천에 벚꽃잎을 수놓아드리고 있어요. 예전에는 혼자서 작업하는 걸 좋아했지만 지금은 관객들과 같이하고 싶어요. 제가 새겨준 자수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그것 자체로 참 즐거워요.


20170705_183314.png 소매나 가방에 자수를 놓아주는 구은정 작가의 퍼포먼스를 나도 받아보았다

구은정 작가님에게 가방을 내밀며 벚꽃잎 하나만 수놓아달라고 부탁을 드린 뒤, 보다 심도 있는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Q. 이렇게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서 설치미술 전시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특별한 계기는 따로 없는데 사라지는 것들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이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항상 어딘가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제가 예전에 망원동에 살았는데, 그때 재개발을 하던 시기여서 옆집 뒷집 다 헐고 있었어요. 근데 딱 하나 남은 빈집에서 어떤 분이 마당에서 포장마차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 곁에서 전시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친구와 함께 작업했던 적이 있어요. 별다른 주제는 없었고 그냥 주민분들과 함께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경험도 하나의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인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슬픈 감정은 아니었고, 그냥 이런 것들을 새겨놓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백광년의 별의 노래>작품 중 하나로, 100광년의 별의 위치가 점점이 박혀있는 종이다


벚나무 뒤에는 언뜻 오선지를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종이와 그 종이를 길게 이어 붙인 뒤 오르골에 연결해서 음악이 나오도록 한 <백광년의 별의 노래>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실제로 우주 속을 유영하면서 별들이 노래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잔잔하면서도 몽환적이었다.

Q. 이 작품은 되게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데,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혹시 하늘의 별을 휴대폰에 비추면 음악이 나오는 앱 알고 계신가요? 되게 신기하면서도 재밌어서 그 앱에서 착안했어요. 시장에 나와 있는 별자리 용품과 어떻게 차별성을 두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실제 데이터를 이용해보자 해서 100광년까지 육안으로 보이는 별들만 추려서 모았어요. 그리고 그 별들을 종이 위에 놓고 오르골 전용 펀치로 하나하나 구멍을 뚫었어요. 처음에는 마음대로 구멍을 뚫을까 했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로 뚫은 구멍 하나하나가 은은한 조명이랑 오르골에서 나오는 노래처럼 감성적인 무언가로 변하는 그 온도 차이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그대로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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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년의 별의 노래>작품 두 번째로, 별의 위치를 기록한 종이를 길게 이어 붙여 오르골에 연결한 설치미술 작품이다. 뒤에 비치는 작품의 그림자가 유유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주를 유영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Q. 오르골이나 모터, 조명도 직접 다 설치하신 거예요? 이러한 설치 미술을 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자잘 자잘한 기술들이 많이 늘어요.(웃음) 자수, 모터, 염색..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서 미술학원에 다니게 됐고 그 이후로도 예중, 예고를 나왔어요. 그래서 얼떨결에 혹은 자연스럽게 미대 조소과로 입학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작업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걸 왜 하는 거지? 라는 답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전시를 기획하더라도 완성된 구상을 갖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물론 기본적인 구상은 하지만, 기획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많기 때문에 저도 전시를 하고 난 뒤에 그때서야 완성된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설치미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상품으로 제작되어 있는 전시와 달리 설치전시는 그 공간, 그 시간 안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고유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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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너무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찬찬히 뜯어보아야 그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랑을 기억하는 방법’이라는 작품을 관람했다. 이것은 작고 흰 종이인데, 꾸겨질 대로 꾸겨지고 찢어질 대로 찢어져서 테이프로 힘겹게 붙여놓은,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종이다.

Q. 평범해 보이는 종이이긴 한데 뭔가 많이 꾸겨져 있네요? 이건 어떤 의미로 작업하셨나요?
사실, 실연했을 때 만들었는데요.(웃음) 많은 커플들이 사귈 때 종이학 천 개를 접어서 선물을 주곤 하잖아요, 요새는 그렇지도 않지만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종이학 천 개가 아니라 하나의 종이를 천 번 접은 거예요. 사랑도 처음과 끝이 한결같지 않고 계속해서 바뀌잖아요. 처음에는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그런 마음이었다가 갈수록 지치기도 하고 무난해져 버리는 느낌? 그래서 사랑도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이 종이로 작업하면서 뒤죽박죽 많은 감정이 생겼을 것 같아요.
네, 그렇기도 했지만, 신기하게 200번까지 접을 때는 ‘왜 그랬을까’, ‘왜 헤어졌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다음부터는 그냥 집착하듯이 의무감으로 접었습니다. ‘이것도 일이야’ 하면서.(웃음)

꽃, 별, 사랑 등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잡아 어딘가에 새겨 놓으려는 구은정 작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역사를 기록하듯이 단순히 시간을 배열하지 않는다. 보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손끝으로 시간을 늘리기도, 줄이기도 하면서 다채롭게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을의 찬바람에 못 이겨 붉게 물든 채 떨어진 단풍잎을 주워 책에 끼워 넣었던 것처럼, <떨어진 것과 빛나던 것과 잊혀진 것>을 통해 죽어가는 것들을 또 다른 삶의 순간에 새기는 건 어떨까.


구은정 개인전 '떨어진 것과 빛나던 것과 잊혀진 것' 영상 보기


- 전시 정보 -
<떨어진 것과 빛나던 것과 잊혀진 것> 구은정 개인전
2017. 6. 18(일) ~ 2017. 7. 2(일) 10:00 ~ 18:00
서울예술치유허브 갤러리 맺음



<후속 전시 소개 >

서울예술치유허브 갤러리 맺음에서는 구은정 개인전 <떨어진 것과 빛나던 것과 잊혀진 것>에 이어 이정희 개인전 <흩어진 말>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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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17. 7. 9(일) ~ 2017. 7. 22(토) 10:00 ~ 18:00
내용: 소통의 기본인 언어가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작용하며, 또 사람들을 이합집산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개인과 사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정희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미끄러진 대화'와 '생각의 길' 등 드로잉 연작을 선보인다.
장소: 서울예술치유허브 2층 갤러리 맺음 (성북구 회기로3길 17)
문의전화: 02 - 943 - 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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