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어가는 이야기 마당
공연자와 관객이 나뉜 무대, ‘보여 지는’ 공연을 보러 ‘찾아가야 하는’ 극장에 익숙하다면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의 <예술로 상상극장>은 조금 다를 것이다. “어린이가 있는 곳 어디나 극장이 된다.”는 슬로건 하에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예술로 상상극장>은 어린이 특화 소규모극으로 제작되어 여름방학 기간 동안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에서 공연된다. 또한 프로그램 기간 종료 후에는 <예술로 상상극장>에서 창작된 다양한 작품들이 직접 어린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공연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찾아간 그곳이 현재 진행형인 무대가 되어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낸다.
작년 <예술로 상상극장>에서 창작 개발되어 공연된 5개의 작품은 성공적으로 그 역할을 하여 어린이기관, 학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약 2,000여 명의 어린이 관람객을 만났다. 그리고 올해 새롭게 어린이들을 찾아갈 작품 개발·제작 작업이 6월 초부터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올해는 총 4개의 공연이 선정되어 개발되는 중인데 일인극, 2인 혹은 3인의 소규모 팀으로 이루어진 공연들이었다. 이는 찾아가는 공연에 적합한 규모와 40분 내외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을 고려한 것이다.
6월에는 주 1회, 7월에는 주 2회의 작품개발·제작 워크숍을 통해 ‘극’이 완성될 예정이었고 취재를 간 날은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는 날이었다. 워크숍 초반이라 요리로 치면 아직 재료를 이것저것 늘어놓고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는 시간 같은, 요리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궁금증이 증폭되는 시간이었다.
워크숍은 각 팀의 한 주간의 고민을 담은 구체적인 장면이나 아이디어, 테크닉적인 부분을 예술 감독에게 보여주고 함께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워크숍 초반이다 보니 대부분 오프닝이나 극 형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워크숍 시간보다 삼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한 이혜진, 김현진 씨는 한 주간의 고민을 보여줄 짧은 공연을 리허설해 보고 있었다. 이들이 준비 중인 작품은 소리가 가득한 박물관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메인 스토리에 앞서 ‘소리박물관’이라는 장소를 채울 종이, 부채, 컵, 젓가락, 숟가락 등 소리가 나는 다양한 물건들의 소리와 진행 방식으로 구성된 오프닝을 보여주었다.
‘시르릉 비쭉 할라뽕’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옛이야기를 모티브로 극을 준비 중인 엄문용, 김예지, 임영준 팀 역시 바닥에 주섬주섬 다양한 소품들을 꺼내놓았다. 극 안에 들어갈 효과음들을 만들 소리 들을 찾아보았다며 각 소품의 소리를 선보였다. 스스로 소리를 내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흥겨움, ‘이 소리는 어때요?’, ‘이렇게 조금 더 움직이면 소리가 달라져요’ 등 소리를 내면서 즉석에서 다시 다른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계속되었다.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는 오프닝을 배경 음악과 함께 보여준 일인극을 준비 중인 윤푸빗 배우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이야기에 어린이들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였고, 팀원 한 명이 빠져 구체적인 신을 보여주지 않은 마지막 팀의 고민정 씨 역시 구체적인 이야기보다는 그것을 담을 전체적인 틀에 대한 한 주간의 고민 내용을 풀어놓았다.
각 팀의 고민에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역할을 담당하는 세 명의 예술 감독 및 교육 감독들의 조언은 굉장히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소리와 촉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며 ‘촉감은 불 꺼진 상태에서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하면 어떨까?’ 라는 참가자의 아이디어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음을 두려워한다.’는 놓칠 수도 있었던 현실적인 의견을 내어주기도 했고, 캐릭터에 대한 고민에는 반가면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조언도 해주었다.
“볼을 두드리며 입을 벌리면 이런 소리가 나죠.”라며 직접 시범을 보이며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보태주기도 했다.
모든 극들에 가장 포커스가 맞추어진 부분은 ‘어떻게 어린이들이 참여하게 할 것인가?’였다. 4팀 모두에게 동일하게 던져지는 질문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예술 감독을 맞고 있는 임도완 감독은 “작년에도 ‘참여’가 강조되었고, 비교적 잘 만들어졌지만, 올해는 더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라며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가 가장 좋은 콘텐츠”라고 답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적인 낯섦’이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에 <예술로 상상극장>의 ‘찾아가는’ 극장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막연함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조금씩 구체화되며 함께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혼자면 생길 수밖에 없는 빈틈들을 여럿이 메워 주는 느낌이라 든든합니다.” 피드백을 마치고 개별 연습 중이던 이혜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몇 달간 고민하여 만들어 내게 될 공연이 최종적으로 어떤 공연이 만들어지길 바라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현실 속의 공간이 상상력의 공간으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연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아이들이 ‘공연을 봤다’가 아니라 ‘오늘 소리 만들었어요.’, ‘공연했어요.’라고 말하는 공연이길 바란다.”고 함께 극을 준비 중인 김현진 씨는 덧붙였다.
7월까지 워크숍을 통해 탄생한 공연들은 8월 8일-8월 20일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에서 첫 공연을 시작해 이후 ‘찾아가는 공연’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을 만날 예정이다.
오늘 살짝 맛본 네 개의 이야기들은 두 달여의 시간이 지나고 무대에 오를 때면 내가 오늘 보고 예측하고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어떤 재료가 선택될지,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할지, 어떤 그릇에 담아낼지 그 모든 과정은 상상 속에 남는다. 분명 저마다 다른 맛과 개성의 맛있는 공연들이 되어 어린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그 맛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