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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신과 함께하는 꽃부채 만들기

#나의_수호신은_누구 #민화#꽃부채로 #올_여름_시원하게

by 서울문화재단

어느 새 올해도 반이 지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로 월력을 넘긴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요즘 거리에서는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휴대용 선풍기도 좋지만 이것이 개발되기 전에 부채를 들고 다녔던 여름을 떠올려보자.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부채도 좋고 문방구에서 파는 부채도 좋고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가 건네주셨던 시원한 부채도 좋다. 아무튼 우리 여름은 언제나 부채와 함께였다. 휴대용 선풍기에 자리를 내어준 부채만큼이나 민화와 12지신의 전통적인 의미도 옅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렴풋이 학창시절 미술책에서 배운 동양화의 ‘흰 것은 배경이고 검은 것은 붓이로다’ 하는 생각으로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본인이 무슨 띠인지는 알지만 그 의미와 가치를 깊게 생각해보려는 노력은 딱히 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그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2017년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창작채움공방 정규공방 프로그램인 < 12지신과 꽃부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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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연 작가는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에서 옅어져가는 것들을 한 데 모아 < 12지신과 꽃부채 >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반려동물을 주제로 하여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개를 중점적으로 그리되 판다와 공작 등 다양한 동물들도 의인화해서 그리고 있다. 개만큼 사람과 가깝고 친밀하게 지내는 동물이 없고 사람과 닮아있는 부분도 많아서 한 폭의 민화 위에 두고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곽수연 작가의 주요 작품으로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몽유’, ‘도원을 찾아서’, ‘낙원’ 등 모두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팝아트의 감각까지도 놓치지 않는 것들이다.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어릴 적으로 돌아가 놀이터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뛰놀고 싶은 유쾌한 마음이 새록새록 생긴다.

이러한 유쾌한 마음을 같이 나누고자 곽수연 작가와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를 방문해준 이들이 한데 뭉쳤다. 부모님과 어린이들은 직접 민화를 부채에 옮겨 그려보면서 우리나라 전통미술을 체험해볼 수 있다. 여기서 민화란 조선 후기 서민들 사이에서 즐겨 그린 그림으로, 집안의 평온과 화목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수업은 민화 중에서도 영모화, 즉 새와 동물 등을 소재로 그린 동양화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요즘의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낯설 수 있는, 민화와 더불어 행복을 기원하는 12지신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고 내가 태어난 해의 동물을 자신의 손끝으로 꽃부채에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20170727_140647.png 부채에 색동옷을 입히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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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꽃부채를 만들기에 앞서 12지신에 대해 간단히 되새김을 해보자. 먼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띠’는 태어난 시간에 따라 쥐(자), 소(축), 호랑이(인), 토끼(묘), 용(진), 뱀(사), 말(오), 양(미), 원숭이(신), 닭(유), 개(술), 돼지(해)로 나눠진다. 몇 가지 그 의미를 살펴보면 쥐는 풍요와 희망을 상징하며 식복이 많고, 호랑이는 땅의 지신이며 용감하고 토끼는 많은 설화에 등장해 알다시피 지혜롭고 똑똑하다. 호랑이가 땅의 수호신이라면, 하늘의 수호신은 용이고 절대 권력을 상징한다. 꼬꼬댁- 하고 아침을 여는 닭은 근면함을, 돼지는 재물과 복을 의미한다.

‘옛날 옛적 어느 한 마을에서..’로 시작하는 구연동화에 나올 법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오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쩌면 선조들은 동물의 특성에 맞게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전수하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꼭 본인의 띠대로 살아야한다는 충고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살아가다가 가끔 떠올려도 좋을 만한 삶의 가치들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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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연 작가의 간단한 이력 소개와 제작과정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창작 수업이 진행되었다. < 12지신과 꽃부채 > 창작체험과정은 이렇다. 내가 태어난 해의 동물과 배경을 구상해보고, 구상한 그림을 꽃부채에 연필로 스케치한 후 먹으로 그 연필의 발자취를 따라 그린다. 그 부분에 분채를 이용하여 색동옷을 입힌 뒤 색을 칠한 부분을 말리고 금분으로 마무리해주면 12지신 꽃부채 완성이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아교’라는 이름의 접착제였다. 지금처럼 풀이나 테이프가 없던 조선 시대에는 아교라는 동물의 가죽이나 뼈에서 나오는 진액을 고아 굳힌 뒤 접착제로 이용했다고 한다. 쓰지 않을 때는 굳혀두었다가 쓸 때는 다시 녹여 사용하는 영민한 지혜가 엿보인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어린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이 보다 공들이면서 하는 작업이 없다. 아이들은 수를 놓듯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그리고 그 위에 먹을 조심스레 덧칠한다. 조금이라도 검은 먹이 흰 부채에 튈까 조마조마하는 모습은 마냥 귀엽기만 하다. 혹여나 먹이 튀면 잽싸게 휴지를 구해 지그시 눌러가며 자국을 지우기 바쁘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스스로 밑그림부터 시작해 채색까지 할 수 있도록 함께 곁에서 도와주고 계셨다. 때로는 팔을 걷어붙이고 붓에 분채를 묻혀 덜어내거나 더하면서, 때로는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을 채워주면서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말이 안 나오는 수려한 장관을 담아낸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자그마한 부채에 직접 장관을 연출하는 것도 참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20170727_140824.png 여백의 미를 남겨두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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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분 동안 진행된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완성된 부채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 부모님 혹은 수업을 함께 들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만든 부채를 자랑스레 보여주면서 서로의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계획되어 있던 수업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마무리 못 한 아이들은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꽃부채 만들기에 열중이었다. 소소한 것을 하나 만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이 참 많았다. 본인은 어릴 적 바닷가에 놀러 갈 때면 작고 유약한 조개껍질이나 맨질맨질한 돌멩이를 주워 담아 보석을 쥐듯이 들고 갔더랬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12지신과 민화에 대해 배운 개념보다도 소중한, 어린 날 여름의 기억 조각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또, 아이들이 본인 수호신의 보살핌 아래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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