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에 반응하기창조경제_공공극장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앞마당에서는 확대된 정산표를 앞에 두고 한 배우가 정산표 항목에 대한 설명을 한창 하는 중이었다. 제작지원금 200만 원과 자부담금 250여만 원 규모의 정산서였고, 이는 2015년 ‘혜화동1번지 가을페스티벌-상업극’에서 공연되었던, 연극 < 창조경제 >의 정산서였다.
“나의 창조 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을 화두로 극단 앤드씨어터 단원들이 상금 200만 원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경쟁 오디션 극이었던 이 연극은 현재 7월 6일부터 16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 중인 <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의 전신이다. 총 4개의 극단이 참여하고 이를 전체 총괄하는 한 극단이 연극 <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 서바이벌을 통해 1800만 원의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리얼리티와 연극, 다큐 그 경계들의 교집합에 있는 극으로, 450여만 원 정산서의 2년 전 규모에 비해서는 많은 부분 확장되어 선보이게 되었다.
연극의 시작을 기다리며 아직은 어수선한 극장 안, 한 배우가 관객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듣건 말건 상관없는 듯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가고, 어학연수를 가고, 요구에 의해 충실히 살아온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혼잣말처럼 늘어놓는다. 이것은 연극 안인 듯 밖인 듯, 마치 공연장 밖의 정산서 브리핑만큼이나 느닷없이 연극의 서두에 놓여있다. 이처럼 이 연극은 시작 전부터 열린 대화와 같다. 극장 안과 무대에 머무는 연극이라기보다는 무대가 세상과의 경계에서 하나의 논쟁의 장이 되는 느낌이다.
이들은 무엇에 대해서 대화하고 싶어 하는가? 연극 <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은 서바이벌 형식을 빌린 공연에 경쟁 팀으로 참가한 4개의 극단은 10여 분 동안 ‘나의 창작 활동이 경제 활동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문장을 화두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경연의 미션이다. 첫 팀 ‘불의 전차’는 출연부터 다소 연극계의 아이돌을 떠오르게 했다. 군무와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무대는 빠르게 몇 개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들은 그동안 무대에 올리고 싶었지만 올리지 못했던 세 개 작품의 장면들을 재구성하여 만든 작품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올려볼 기회조차 얻기 힘든 ‘창조 활동이 경제 활동으로 이어질’ 기회조차 얻기 힘든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묵혀두었던 원고를 끄집어내어 스팟처럼 선보이는 재기발랄함이 있었다.
두 번째 팀 ‘신야’는 실제 본격판매연극을 표방하며 ‘한 달간 해변에서 연극으로 먹고살기’라는 모토로 진행되었던 ‘돌고돌아 양양판 버스킹’이라는 그들의 프로젝트를 극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한 달 동안 오지 않는 관객, 상실감과 갈등을 연극 속에 담았다. 특히, 당시 해변의 무대 세트를 고스란히 연극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잣 프로젝트팀의 공연은 조금 결이 달랐다. 어쩌면 우리가 이 프로젝트 연극을 보며 한 번쯤은 파생하여 물어봤을 법한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이 극의 중심에 있다. “창작은 경제적이어야 하는가?” “공공재로 만들어진 작품을 개인의 흥미를 위해 쓸 수 있는가?” “1800만 원은 많은가?” 등의 질문들 사이에 배우들은 몸짓으로 그것에 대한 답과 반응을 이야기한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을 향한 답인지 알지 못하지만, 나처럼 다른 관객들 역시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907팀은 다른 팀에 비해 적은 단 두 명의 배우가 극을 이끌어 간다. 어느 공터에 주저앉아 소주를 들이켜는, 뭔가에 고단한 한 젊은 여성과 허름한 행색의 여인과의 만남을 그렸다. 사과를 매개로 시작되는 ‘씨앗을 심고 키우는 일’이 연극의 주제이다. ‘심어야 뭔가가 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심어도 10년이 걸려야 그 나무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단 10분이 주어져 있다’는 말은 이 서바이벌을 풍자함과 동시에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보여주고 평가받고, 기다려 주지 않는 현대사회의 경쟁 구도를 표현하는 듯하다.
4팀의 공연 후 바로 연극은 관객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연극 <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은 서바이벌 경쟁 구도에 대한 완벽한 합의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공연되는 상태여서 그 규칙까지도 관객에게 열어 놓았다. 본래 기획과 같이 관객투표를 통해 한 팀에서 상금을 몰아주는 방식에 동의하면 선호하는 팀에, 그렇지 않다면 순위별 차등지급, 똑같이 분배, 입장료까지 포함하여 분배, 제작사가 추가 예산 마련을 하여 각 팀에 1800만 원씩 분배 등 매회 관객이 제안하는 다른 제안들과 함께 옵션은 계속 확장되어 선택하게 되며 최종 결과는 9회 공연 이후 발표될 예정이었다. 관객들은 그 어디 즈음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줄을 서며 연극의 남은 이야기의 한 부분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창의성을 가지고 있고,
창의성을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며
자유를 위해서는 시장이 필요하다.
나는 연극 내내 사회자가 반복적으로 외친 서바이벌 오프닝 멘트가 마지막까지도 왠지 머리에 논리적으로와 닿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이 이 연극의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창의성과 자유 그리고 시장’, ‘창작 활동과 경제 활동’이라는 개념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매끄럽지 않은 교집합 때문에 연극 <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이 취한 서바이벌이라는 역동적 발랄함의 틀 속에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바로 이 연극이 관객에게 주는 화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연극만의 문제가 아닌, 혹은 예술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의 인생 서바이벌 무대 안에 어떤 규칙들이 과연 합리적인지, 실제로 그런 서바이벌이 필요하긴 한 것인지, 나는 그 무대의 어디 즈음에 서 있는지. 이런 다양한 질문들을 하며 연극 <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을 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문답 공연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