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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순 진짜 참기름처럼 고소한 그림’

해남 ‘농부 화가 김순복 할머니’의 고소한 삶의 냄새가 나는 그림 전시회

by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청 시민청’에 멀리 전남 해남에서 올라온 특별한 그림들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순 진짜 참기름처럼’이라는 '참‘이 유난히 강조된 제목의 전시회 작품들은 전라남도 해남 행촌미술관에서 지난 5월 12일부터 29일까지 ‘2017년 풍류남도 아트프로젝로 전시되었던 농부 '화가 김순복' 할머니의 그림들이다. 참기름 냄새 솔솔 풍기며 먼 길 온 이 그림들은 7월 25일까지 시민들을 만날 예정이다.

1.PNG 김순복 할머니의 그림은 서울 시민청 갤러리에서 7월 25일까지 전시




색연필로 시작된 새로운 이야기


충북 청주 아가씨였던 ‘김순복 할머니’는 25살에 전남 해남 남자와 결혼하여 해남의 농부의 아내이자 농부가 되었다. 처음에는 2년만 살아보자고 내려온 것이 자연이 좋아 34년이 되었다. 도시의 삶에서 남쪽 시골의 삶으로의 변화가 낯설었을 텐데 지금은 “어딜 가도 해남만 한 데가 없다”고 할 만큼 해남을 사랑한다.

12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농사지으며 아이들을 키우는 삶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다섯 아이들 키워내며 ‘김순복 할머니’는 시간으로 삶을 지어왔다. 그런 할머니에게 그림이 선물처럼 온 것은 3년 전 서울 사는 두 딸이 생신 선물로 준 75색 전문가용 색연필과 스케치북으로부터였다.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농사짓고 하면서 잊고 있었던 소녀시절 꿈이 있을 것이다. ‘김순복 할머니’에게 그것은 화가였고, 색연필의 알록달록한 색은 옛 꿈을 현실로 빼꼼히 끌어올려 ‘김순복 할머니’의 손끝을 움직이게 했다.



일, 일상, 사람-삶이 고스란히 담기다.


‘시간이 되면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워야지’ 하며 혼자서 잡지 그림부터 손자 낱말카드, 옛이야기를 따라 그리다가 주변 풍경을 그리게 되었고, 풍경 속에 이웃을 담다 보니 그림은 100여 점이 훌쩍 넘어 점점 그림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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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 허리 한 번 펴다 만난 산 너머 지는 해, 할머니들의 수다보다 더 시끄럽게 앵두나무 위에서 울어대는 뻐꾹새와 담장 아래 웅크린 동네 고양이 같은, 일상에서 지나치면 흔하지만 그림 안에 담기면 더없이 특별해지는 순간들을 그렸다.

쌀값 걱정, 날씨 걱정에 한숨 끊이지 않는 농부들의 넋두리와 그럼에도 일하다 나누는 이웃과의 정겨운 한마디, 자연에 대한 고마움들 또한 할머니의 그림 안에서 만날 수 있다.

할머니의 그림에 고소함을 더하는 것은 그림과 함께 담은 할머니의 짧은 이야기 들이다. 그림뿐 아니라 어릴 때 글쓰기도 좋아했다는 할머니는 한 인터뷰 기사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작가 펄벅의 < 대지 >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농촌의 정서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농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글을 읽으며 지금의 할머니는 어릴 적 < 대지 >를 읽는 문학소녀, 화가가 되고 싶던 소녀, 그리고 농촌을 좋아하던 소녀의 모습을 모두 고스란히 현실 안에 담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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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그리는 ‘김순복 할머니’의 그림에는 자연스럽게 사계절의 농사풍경이 담겨있다. 한살림 소식지에 연재한 ‘김순복 할머니’의 그림을 모아 < 2017 한살림 ‘생산지에서 온 열두 달 그림 달력’ >을 만들기도 했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 보름 만에 800부가 다 팔릴 정도였다고 한다.



참기름처럼 고소한 생활 예술가


‘김순복 할머니’는 낮의 농사일이 힘들지만, 밤에는 항상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김순복 할머니’에게는 휴식이기 때문이다. 삼 년째 그림을 그리며 색연필 중 어느 색이 가장 많이 닳았나 보니 녹색과 갈색이라고, 한 인터뷰 기사에서 말했다. 그만큼 할머니는 자연을 좋아하고 그림 안에 자연이 많이 담긴다는 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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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이 감나무 아래서 하는 생각 “아~ 가을이다. 생선 달리는 나무는 어디에?”, “소 닭 보듯 한다고? 그랑께 천생연분이제””라고 쓰인 그림 안에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소와 닭의 표정을 보노라면 할머니의 삶 안에서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고스란히 배어난 유머와 삶의 낙천성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 그것이 할머니 그림의 또 하나의 ‘순 진짜 참기름 같은’ 고소함일 것이다.

언젠가 어른들도 좋아하는 흙과 자연을 담은 그림 동화책을 만드는 것이 꿈이시라는 할머니의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그림 전시가 바로 전시된 그림 동화책과 같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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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전시를 보다 보니 얼마 전 읽은 글 하나가 생각났다.

삶의 예술가는 자신의 삶 전체를 창조적으로 만드는 사람이자,
하루하루의 일상을 통해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 정은혜 저]

‘일상 예술’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는 요즘. 아쉬운 것은 일상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닌 여전히 예술의 소비자로 남는 개인들이다. 일상 예술이라는 말이 의미 있으려면 누구나 자신의 창조성 안에 있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김순복 할머니’처럼 말이다.

전시를 보고 ‘와! 좋네’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오늘은 한번 책상에 앉아 뭐라도 끄적끄적 나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그려보는 일을 하게 된다면 혹시 알까? 언제쯤 나에게도 그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 있을지도, 나의 삶에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기 시작할지 말이다.


전시 : ‘순 진짜 참기름처럼 고소한 그림’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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